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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영수증의 비밀

미스테리한 타오르미나 미식 여행

by 애들 빙자 여행러

비수기 썰렁한 타오르미나


시칠리아의 둘째날이 밝았다. 어제는 새벽에 도착하여 긴하루를 보냈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밤새 내리던 비도 얼추 멈추면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2월의 비가 그친 시칠리아 아침은 약 10도 정도로 가벼운 옷차림은 피해야했다.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주변도 돌아볼겸 이 도시를 어찌 공략해야 할지 전체적인 구도를 파악해 볼 필요도 있고. 참, 새벽 에스프레소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어제 호스트는 타오르미나의 공원(Villa Comunale di Taormina)을 추천했고 레스토랑도 추천했다. 레스토랑은 워크인은 안되고 예약이 필요한데 필요하면 예약을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굳이 내가 이미 체크해 놓았던 곳도 많았기에 건조한 답변만을 했었다. 오전 7시전에 집을 나갔다. 타오르미나란 도시는 언덕위에 작은 성처럼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지도를 보면서 우리가 낮에 가야할 장소들을 머리에 그리면서 다녔다. 아직은 문을 연 카페는 보이지 않았고 이곳에서 그리니따로 가장 유명한 Bam Bar는 문이 굳게 다쳐있었다.

비수기에 장기 여행을 떠난 아쉬운 장소들. 니들도 살아야겠지.

그렇다. 비수기 시칠리아 아침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는데. 생각해 보면 1년내내 365일 미어 터지는 손님을 상대하긴 힘들께다. 이들도 휴가가 필요할 것이다. 휴가는 최소 1~2달은 가는듯 싶었다. 꼭 사보고 싶었던 치즈가게(La Bottega del Formaggio)도 문을 닫았다. 이곳은 구글지도에서는 영업을 한다고 했는데 장기휴가를 떠나 있었다. 한국인 리뷰도 좋고 비싼 레스토랑에 지칠 때 동네 반찬가게에서 이것저것 샐러드나 플레이트 등을 사다 먹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아쉬움이컸다. 정원도 7시쯤엔 문이 닫혀있는데 근처에서 구수한 커피향이 났다. 7시가 넘으니 이른 카페가 문을 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근처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보다 위보호를 위해 카푸치노와 간단한 빵을 먹었다. 주변 노동자(?)들이 가볍게 와서 커피 한 잔씩하고 가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타오르미나하면 하면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은 Osteria da Rita일 것이다. 구글리뷰도 훌륭하고 한국 유튜버들의 필수코스이자 현장 예약만 가능하여 긴 대기를 해야한다는 전설의 식당. 다행히 비수기에도 열심히 영업중이었다. 일단 위치를 파악하고 이따 점심에 올려고 했는데 바로 옆 뭔가 포스가 느껴지는 식당을 발견하다. 매우 모던하고 품위있어 보이고 격식을 차려서 가야하는 곳으로 보였는데 갑자기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만 먹기는 아쉬울 듯하여 이곳에 꽂히고 말았다. 이름은 Bistrot du Monde. 근데 자세히보니 이곳은 호스트가 추천한 곳이 아닌가! 우리가 바로 예약해도 될 듯한데 지인찬스를 쓰면 더 잘해주지 않을까해서. 당일이었지만 이곳에 가기로 하고 숙소에 들어와 호스트에게 예약을 부탁했다. 이게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 동네 가장 핫하다는 식당. 비수기에도 문을 열었지만 대기가 길지는 않았다.

미스터리 영수증

본 식당의 야외 좌석. 밤엔 더욱 운치있어 보인다. 계산하는 법만 빼면 말이다.

오후 12시 오픈시간에 맞춰 찾아갔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야외에서 먹고 싶었지만 약간은 추위가 있어 안쪽으로 안내받았다. 들어가는데 직원들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우리를 끌고 주방으로 갔다. 오늘 방금 도착한 생선들을 보여주겠다고 아우성이다. 너무 먹음직스럽지 않냐고. 사실 생선을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저리 열심이니 안 먹을 수도 없었다. 메뉴판을 보니 오늘의 생선은 킬로당 90유로. 몇 킬로인지는 모르겠지만 5명이 먹을 수 있냐고 하니 가능할 수 있다고. 어차피 애덜은 스테이크랑 파스타를 시켜줄 생각이니 어른 3명이 먹기엔 충분하다고 한다. 어떻게 나오는지는 몰랐다. 점심이니 가볍게 화이트 와인을 추천받았다. 60유로짜리로 선택했는데 맛은 깔끔하니 생선이랑 잘 어울릴 듯 싶었다.

주방까지 끌고 들어가 보여준 생선. 이중에 뭘 먹었는지도 모르긴하다. 지금보니 민어?

아이들은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2개로 나워달라고 했고 안티파스타로 앤쵸비샐러드를 시켰다. 짜지 않고 상큼하니 입맛을 돋구었다. 갑자기 주방장이 헐레벌떡 나오더니 생선에 엄청난 생선알이 있다고 난리가 났다. 혹시 이걸로 파스타 먹을래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우린 당연히 좋다고 했는데. 이게 가격에 포함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1개만 주문해서 나눠먹겠다고 했다. 근데 생선알 파스타도 두 접시가 나왔다. 이것도 나눠주는 건지 두 접시 양은 상당했다. 성게알 파스타처럼 약간 비린 맛이 있었지만 걸쭉하니 먹을만했다.


이제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첫번째 요리는 세비체처럼 올리브유에 듬북담겨 채소랑 같이 나왔는데 상큼하니 깔끔했다. 이후 생선이 통째로 나오더니 살을 바르기 시작했고 5 접시로 나눠 담아 그위에 구운 감자, 시금치빵? 두부? 등을 올린 후 소스를 뿌려서 주었다. 소스는 생선알 파스타처럼 생선알, 올리브, 과일 등을 넣고 푹 끓인 것으로 담백하고 달짝지근해서 텁텁한 생선의 맛을 잘 잡아주었다.

앤쵸비 셀러드와 파스타 그리고. 이날 이후로 시칠리아에서 파스타를 먹지 않았다.

파스타의 양이 대단했던지 5명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었다. 빵으로 소스 마지막까지 잘 닦아 먹고 와인도 한 병 비우니 레스토랑 주인이 인사를 하러왔다. 매우 깔끔하게 옷을 입고 맛은 어땠는지 묻기도 했다. 그리고 식당 벽에 붙은 자신의 사진을 설명했다. 본인도 해외여행을 좋아한다며 이스탄불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을 가르키며 설명을 해주었다. 때마침 아내도 식당에 들어오고 옆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를 같이했다. 다른 손님들도 한 두 명씩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주인은 식당에서 식사-파스타를 먹고 있었다-를 하면서 전반적으로 식사의 맛과 서비스를 경험하고 있어 보였다.

맞지도 않는 계산서는 왜 주는거니.

얼마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200유로는 충분히 넘어보였다. 마지막에 아내가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290유로를 지불했다고. 잉? 계산서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아내가 다시 들어가 계산서를 가져나왔다. 뭔가 이상했다. 와인은 분명 60유로였는데 75유로로 써있고 스테이크는 계산서에 없고 생선알 파스타는 2개로 적혀있었다. 다시 가서 얘기할까 하다가 결국 스테이크 값을 고려하면 와인과 파스타에 붙은 금액이랑 비슷해보여 그냥 말았다. 가끔은 이들이 왜 이렇게 계산서를 엉터리로 작성했을까 고민해 보기도 했다. 291유로에서 1유로 깎아준 걸로 고맙다고 해야할까. 맛있는 식사로 이 미스테리한 의심은 접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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