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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Jin Feb 23. 2024

우리나라는 의료후진국일까?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방의료붕괴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선진국으로 승격했다.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 설립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승격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한편 연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방의료붕괴' 등 우리나라는 아직 의료후진국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의료는 선진국화되지 못한 것일까?



1. 우리나라 의사 수

OECD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평균 3.7명이다. 우리나라는 2.6명으로 약 1.1명 정도 부족하다.


이 통계에 따르면 의사 수가 부족하단 얘기인데, 우리는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이비인후과 전문의 혹은 내과 전문의를 3명도 더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접근성이 좋다는 의미다. 국토 면적당 의사 수가 많다.


인구 대비 의사 수는 뒤에서 2등이지만, 국토면적 대비 의사 수는 앞에서 3등이다.


2. 의사 1명당 연간 환자 상담 건수

의료접근성이 좋은 덕분에 국민 1인당 의사 진료 횟수는 압도적인 1위(15.7회)다. 물론 의료접근성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전 국민이 가입한 건강보험제도, 그리고 낮은 본인 부담금 등이 합해진 결과다.


진료 횟수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진료시간 적어진다. 그렇기의료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있다.


3. 치료할 수 있었으나 숨진 사망자 수

개인적으로 회피가능사망률이 의료 선진국의 제1 척도라고 생각한다. 예방 가능하거나 치료 가능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에 이르는 것만큼 비참하고 안타까운  없다. OECD 평균 239.1명 대비 우리나라는 142명으로 40% 낮다.


한편 회피가능사망률이 0인 나라는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10만 명 중 잘 치료된 9만 9858명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사망한 142명에 집중하는 것 같다. 142명이 0명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이것도 충분히 낮은 숫자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4. 암 사망률

암은 언제나 사망 원인에서 1등을 차지한다. 그만큼 암을 정복하기 위해 각국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암에 의한 사망률은 OECD 평균 201.7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평균 160.2명으로 21% 낮다. 


2022년 미국 예일의대와 바사대에서 JAMA Health Forum에 [22개 고소득 국가의 암 관련 지출 및 사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 10만 명당 암 사망률이 75.5명으로 최저를 기록했다. (평균 91.4명, 미국(7등): 86.5명) 또한 우리나라 1인당 암 관련 연간 총의료비는 2600달러로 미국 10945달러 대비 7배 저렴했다.


5. 수술 대기시간


공공의료 NHS 로 자부심을 갖던 영국의료가 붕괴되고 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장기간 대기해야 한다라는 개념은 대한민국에 없다. (물론 유명한 대학병원 교수님께 수술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예컨대 백내장 수술 대기 시간은 OECD 평균 92일이다. 슬관절 전치환술 OECD 평균 189일 대기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두 수술 모두 1주일 내에 가능하고 마음만 먹으면 오늘 입원하여 내일 수술도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의료 선진국이 맞다.

세계 최고 병원 250위 중 우리나라 병원은 18개가 포함되었다. 최고 평가 병원을 3번째로 많이 보유한 나라다.


CEO World Magazine 이 발표한 2023년 전 세계 의료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우리가 후진국스러움을 느끼는 부분은 앞서 얘기한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방의료붕괴 사태 때문이라고 본다.




소아 인구당 전문의 수는 67.9% 증가했다.


KOSIS(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0년 ~ 2020년 동안 15세 미만 인구는 21% 감소했다. 한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같은 기간 33% 증가했다.


시장은 작아지는데 공급자가 많아지면 나눠먹을 파이가 적어진다. 2022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소아청소년과 의원 2158개 중(2020년 기준) 15%인 323개가 다른 과 진료를 보고 있다. 


내 친구의 어머님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신데, 20년 가까이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운영하시다가 2년 전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폐업하셨다.


어쩌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한 게 아니라, 수요와 공급 법칙처럼 소아청소년과를 보는 전문의가 적어져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에 그 정도 숫자로 맞춰지는 현상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영아사망률은 OECD 평균 4.0명 대비 2.4명으로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응급실로 내원하는 응급한 환자는 주로 뇌졸중 및 심장질환 환자다. 이들은 응급실에서 제때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허혈성 뇌졸중 입원 환자의 30일 내 치명률은 OECD 평균 8.0% 대비 3.3%로 매우 낮다. 반면 급성심근경색증 입원 환자의 치명률은 OECD 평균 6.9%에 비해 8.4%로 높은 편이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많아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꽤 준수한 성적표다. 하지만 더 좋아질 방법은 없을까?


경증 환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과밀화


2021년 응급실 내원 환자의 72.5%는 자동차로, 1.2%는 도보로, 22.1%는 119 구급차로 내원했다.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KTAS)로 보면 4~5 레벨에 해당되어 응급실이 아니어도 되는 환자가 50.5%를 차지했다. 전체 응급실 환자의 74.3%는 증상이 호전되어 응급실에서 귀가했다.


응급실에도 수용가능한 인원이 있다. 하지만 비교적 경증인 환자들로 베드(Bed)가 다 찬다면 이후로 오는 위급한 환자를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필수의료과 전문의의 부족


의료 중에 필수가 아닌 의료는 없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데 응급수술/시술 혹은 24시간 케어가 필요한 과가 있다. 흉부외과, 외상외과, 소아외과/소아 Icu(NICU), 순환기내과, 신경외과(Brain) 등이 있다. 밤 11시, 새벽 1시든 환자가 발생하면 바로 나와서 수술 혹은 시술, 그리고 환자 케어가 필요한 과다. 일종의 사명감만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수가가 너무 낮다.


두 개 내 종양 적출술을 하면 일본에서는 수술 수가로 1581만 원을 책정한다. 반면 한국은 1/7 수준인 244만 원이다. 뇌동맥류 경부 클리핑(1개 기준)도 일본은 1140만 원인 반면 한국은 242만 원이다.



외과나 순환기내과/흉부외과도 마찬가지다. 수술 수가로만은 수술을 할 때마다 적자다. 비급여나 검사 등의 수가로 적자를 메꿀 수밖에 없다.


정형외과도 인공 고관절 치환술을 하면,

미국 - 44,048 달러

오스트리아 - 14,918 달러

중국 - 12,378달러

한국 - 9,022달러

를 받는다. 참고로 정형외과에서 가장 많이 하는 수술 10개 중에 척추고정술을 제외하면 모든 수술이 할 때마다 평균 약 40% 정도의 적자를 낸다. 비급여 및 검사로 적자를 메꿀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의료 사고에 대한 과도한 법적 부담



필수의료 현장은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살리지 못하기도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회피 가능사망률이 0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사들에게 과도한 법적 부담을 안겨준다.



미국도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조심스럽다. 물론 민사 소송을 통한 손해배상은 이루어지지만, 고의성이 없는 한 의료과실로 형사 처벌하지는 않는다.


결국 돈은 안되고 몸도 고달픈데 의료 사고가 나면 형사 처벌까지 받는 과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적절한 법적보호와 보상체계가 필요하다.




도시와 농촌의 의사밀도 차이는 크지 않다.

2019년 OECD 평균 도시 의사 밀도는 4.7명, 농촌 의사 밀도는 2.9명으로 의사밀도 차이는  1.8명이었다. 반면 한국은 도시 2.6명, 농촌 2.1명으로 격차는 0.5명으로, 일본(0.2명) 다음으로 적은 수준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통계는 공중보건의와 같이 필수적으로 지방으로 분산되어 있는 의사들이 많이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국민들이 지방 의료가  붕괴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가 치료받고 싶은 병원이 지방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감기나 발목 염좌, 고혈압 등은 동네병원 혹은 보건소에서 치료받는다. 하지만 암 수술, 심장 수술 혹은 뇌 수술은 아무래도 잘한다는 대학병원 교수에게 가고 싶기 마련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땅이 작아 부산에서 서울도 4시간이면 도착한다.


우리나라 야당 대표도 부산보다 서울에서 수술받기를 원했다.

어쩌면 지방 의료 붕괴는 공급의 문제라기보다 수요의 문제일 수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가야 할 길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의료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다. 높은 의료접근성, 낮은 회피가능사망률, 또한 가격 대비 훌륭한 치료 결과를 보이고 있다.


정성적인 평가 또한 OECD에 꿀리지 않는다.


우리가 K-문화, K-반도체 등으로 자부심을 갖듯 K-의료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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