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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Jin May 13. 2023

치프(Chief) 레지던트의 삶(2)

수술방에서 일어난 일

감염 예방을 위해 춥디 추운 수술실에서 갑자기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 뭐지?'


참고로 수술하시는 교수님은 굉장히 무서웠다. 어느 광고의 '호랑이 기운이 느껴진다'라는 표현처럼, 시리얼의 호랑이가 아닌 야생 호랑이의 기운은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3초 되는 시간 동안에 정말 많은 생각이 오고 갔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incision 이 있는 건가?'

'내가 공부했던 수술이 잘못된 건가? 다른 게 또 있었나? 아닌데...'

'근데 내가 말했다가 아니면 어떡하지. 공부 안 했다고, 치프가 이것도 모르냐고 혼내시면 어떡하지?'


후배 레지던트들과 간호사들을 바라봤지만 그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큰일이다.


하지만 진짜 이게 헷갈리신 거라면, 환자는 괜히 발에 더 큰 상처만 얻게 될 것이고 교수님께 호통을 듣는 내 마음의 상처도 커질 터였다.


"어... 교수님..."

용기 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측은 accessory navicular syndrome 수술입니다."

차마 교수님이 잘못 incision을 그렸다고는 못하고 에둘러 얘기했다.


다행히도 교수님은 바로 말 뜻을 알아차리셨다.

"아!"


외마디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시 라인을 그리시고는 수술을 하셨다.

특별한 코멘트는 없으셨지만, 그 뒤로 나를 신뢰하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 또한 이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치프 레지던트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권력 간격 지수(Power Distance Index, PDI)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본 개념이다.


특정 문화가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나타내는 것인데,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표현할 수 있다.

"직원들이 관리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가?"


권력 간격 지수가 클 때 일어나는 일.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비행기를 운행하는 기장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부기장은 그것을 사실대로 얘기하고 수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력 간격 지수(PDI)가 높은 나라에서는 이런 피드백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을 적시해 얘기하기보다는 제안을 질문에 함축시켜 물어볼 뿐이다. 힌트를 줬을 뿐이면서 스스로 상급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조종사의 PDI 지수는 2등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함축된 질문으로 문제를 해결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하기까지도 너무 힘이 들었던 걸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확실히 PDI 가 높은 사회인 것 같다.


실수에 대해 엄격한 사회.

상급자의 잘못을 지적하기 힘든 문화.

행여나 그 지적이 틀렸을 경우 벌어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들...(자칫하면 등짝을 맞을 수도 있다.)


상급자 - 하급자에 상관없이 다양한 의견 교환이 자유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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