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끼는 신발 중
유독 신기만 하면 뒤꿈치가 까지는 신발이 있다.
신발은 더할 나위 없이 예뻤고,
나와 사이즈도 잘 맞았다.
다만 내 발이 문제인지 신발이 문제인지
유독 신기만 하면 뒤꿈치가 벗겨지는 것이었다.
나는 연고를 바르고 뒤꿈치 보호대를 차고
그 신발을 신었다.
불편하고 아팠지만, 그만큼 가치 있었으니까
보호대를 차는 불편함쯤은 감수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다들 내 신발이 멋지다고 해줬고
이만한 신발이 없다고 추켜세워줬다.
그래서 난 '역시 내 선택이 옳았어' 자만했다.
'내 신발에는 문제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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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지만 그 신발은 여름에는 도저히 신을 수가 없었다.
두꺼운 양말을 신는 한겨울에도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눈과 비가 오는 습한 날씨에는 땀이 차서 불쾌했다.
그 신발을 신으려면 꼭 보호대를 차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츰 그걸 신는 빈도가 줄고,
점차 신발의 존재가 잊혔지만 차마 버리진 못했다.
아끼는 신발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신발은 예쁘니까,
사이즈도 잘 맞으니까 아무 문제없다고 확신했다.
'내 신발에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어.'
신발을 버리지 못한 내가 잘못일까,
나와 맞지 않는 예쁜 신발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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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국 중고시장에 내 예쁜 신발을 팔았다.
거의 방치되다 싶었던 나의 아끼는 신발은
새 주인 품에서 마치 새 신 같았다.
나에게서 방치될 땐 헌 것 같았는데, 박스와 더스트백에 포장해서 나가니 마치 다시 새것이 된 것 같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겐 쓸모없던 헌신인데, 순간 신발이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예쁘게 잘 신으세요'
새 주인에게 매너 있는 한 마디를 보낼까?
하다가 이미 거래도 끝났는데 됐다, 싶어 앱을 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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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그걸 이제야 팔았냐고 질책하시면서도,
분명 좋아하셨다.
같이 오래오래 신을 새 신발을 사러 나가자고
나를 이리저리 이끌었으니까.
신발이 예쁘다고 그렇게 칭찬하던 주변인들은,
내 신발이 바뀐 지도 잘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또 다른 새 신에 적응해야 하는 나만이, 이 불편한 상황을 오롯이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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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끼는 신발 중에
유독 신기만 하면 뒤꿈치가 까지는 신발이 있었다.
분명 예쁘고 사이즈도 내 것인 신발인데,
유독 '내가' 신기만 하면
뒤꿈치가 그렇게 벗겨지는 것이었다.
나의 발 모양, 발 압, 뒤꿈치 모양, 뼈의 생김새, 삐딱한 걸음걸이까지 내 개인적 취향과 사이즈를 제외한 나의 모든 것이 그 예쁜 신발과는 맞지 않았다.
신발을 버리지 못했던 건 과연 내 잘못이었을까?
나와 맞지 않는 신발이 내 것이 된 게 잘못이었을까?
... 어라 그럼 둘 다 내 잘못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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