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로 남은 사람

너는 살아내고 있었고, 나는 사랑을 했다

by 신영


어떤 관계는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끝은 이해로 남는다.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같은 문장을 말하려 애쓴다. 한쪽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다른 쪽은 “살아내야 해”라고 말한다.

둘 다 진심이지만, 방향이 다를 뿐이었다.


인간의 뇌는 생존과 사랑을 동시에 유지하기 어렵다.

삶이 생존을 위협하는 순간,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계획과 판단을 계산하지만, 편도체(amygdala)는 두려움과 위기의 감정을 먼저 활성화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감정적 거리감을 보일 때, 그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뇌가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도파민의 쾌감으로 시작되지만, 생존은 코르티솔의 긴장으로 이어진다. 이 두 호르몬이 동시에 분비될 때, 인간은 사랑을 ‘감당’ 하지 못한다. 생존의 뇌를 가진 사람은 늘 현실을 먼저 본다. 그의 전전두엽은 감정보다 책임을, 따뜻함보다 생존을 계산한다.


그렇기에 그는 오늘을 버티느라 내일을 약속하지 못했다. 그의 침묵은 무심함이 아니라, 소모되지 않기 위한 방어의 회로였고, 그의 무표정은 냉정함이 아니라, 감정이 새어나가면 버텨낼 수 없던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이 단순한 사실을 너무 늦게 이해했다.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게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는 걸.


그가 생존으로 힘겨울 때조차, 나는 어리석은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다. 표현해 달라 조르고, 살아내기도 벅찬 사람에게 평범한 연애의 기준을 들이대며

투정 부렸던 나였다. 그랬기에 그는 버티다 버티다 멈춰야 했고,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서로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그의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아, 안 되겠다. 내가 1순위가 아닌 사람은 안 돼.” 라며 돌아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함께 살아내자고 말한다.

힘드니까, 굳이 같이 가자고. 혼자보단 둘이 낫고, 공유할 대상이 있다면 그 존재만으로 버틸 힘이 되지 않겠냐고. 인생이 생존이라면, 그 속에서도 잠깐의 쉼표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게 무모함이 아니라, 사랑이란 결국 이해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믿으니까.


사랑이 화려 않다는 걸 아는 사람.

조용히 숨 쉬는 일상이 사랑이라 아는 사람.

그 일상을 잃은 사람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그가 살아남기를 바라면서도, 그의 삶 속에서 완전히 밀려나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으로.


그러니까 이제는 괜찮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이해 없는 “괜찮아”가 아니라, 이해로부터 비롯된 “괜찮아”니까. 희생이 아니라 동행하는 것이니까.


사랑은 형태가 바뀌었을 뿐 끝나지 않았다. 이해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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