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가 쓰는, 이별하는 중입니다

상실에 대한 뇌과학의 위로

by 신영


퇴근길, 별일 아닌 듯 집에 들어왔는데 눈앞에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물건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보인다. 냉장고에 붙여진 사진, 함께 쓰던 소주잔, 칫솔, 하다못해 화장대의 명함까지. 순간적으로 호흡이 멎는 것 같다. 아무 일도 없던 하루가, 갑자기 낭떠러지로 변하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 메시지는 읽히기만 했을 뿐 답은 없었다.

참지 못하고 나는 카톡을 보낸다. “야근해?” 몇 시간 후 1은 사라졌지만 아무 대답도 없다. 그 침묵이 더 무겁고 애써 버틴 하루가 무너지는 기분이다. 드라마 속 김삼순의 대사처럼 “심장이 딱딱해지면 좋겠어.” 차라리 돌처럼 굳어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쉽겠냐 싶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아픈 걸까. 사랑이 끝난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뇌가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고통이 조금 더 이해된다.

혹시 전측 대상피질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부위는 우리가 손을 베거나 화상을 입었을 때 활발히 작동하는 곳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부위는 이별 앞에서도 똑같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이 찢어진다”라는 말을 은유처럼 쓰지만, 사실은 뇌가 실제로 고통 신호를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말로 아픈 것이고, 문자 그대로 통증이 맞다.


또 하나,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다.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는 소형발전기 같은 곳이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겠지 “ ”난 혼자야 “라는 절망적인 생각들이 이 작은 편도체에서 시작된다. 아직 아무 일도 결정된 게 없는데도, 뇌는 벌써 최악을 가정해 버린다. 그래서 상실 앞에 서면 현실보다 훨씬 더 거대한 재앙처럼 느껴진다. 특히 이별 뒤에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난 불행해” “난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인가 봐” 점점 스스로를 밑으로 더 밑으로 끌고 내려간다. 이는 상실로부터 편도체가 경고등을 울리는 탓이다.


그리고 도파민이라는 보상 회로는 연인이 주던 작은 호의와 관심이 사라지면 중독자가 금단을 겪듯 허전함을 만든다. 매일매일 당연하던 연락들이 몸에 배여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보고, SNS를 들여다보고, 남은 흔적을 찾고, 왜 답이 없는지 되뇌는 것들 모두 이 회로들이 만들어내는 생물학적 반응이다.


그러니까, 울 수밖에 없다. 억지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실컷 울고, 또 울어야 한다. 눈물은 신경계가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방법이다. 울음을 참는 순간, 뇌는 감정을 가둬두고 더 오랜 시간 고통을 유지하려 한다. “울지 마”라는 말은 틀렸다. 오히려 제대로 울지 않으면, 뇌는 고통을 더 오래 붙잡는다. 감정의 배수구에 찬 눈물을 내보내야 다음 단계를 시작할 수 있다.


급하게 일이 생겨 병원에 다녀오며 그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아 연락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닫는다. 상실은 상대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말을 건네도 더 이상 닿지 않는 그 공백에서 온다는 것을.


이런 때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뇌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도록 진화했고, 그래서 상실의 순간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 아픔은 분명 오래간다. 하지만 뇌는 결국 회복하는 기관이다. 뇌과학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니 지금은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은 위로가 잘 들어오지 않는 시기다. 그저 알아주면 된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뇌가 실제로 상처를 입은 상태라는 것을. 그리고 그 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회복한다는 것을.


오늘 하루가 삼순이가 된 하루였다면, 내일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때론 우리도 단단해져야 한다. 하지만 단단함은 감정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결국 단단함은, 사랑을 안고도 다시 살아갈 힘을 뜻한다. 지금은 아프고, 울고, 비참해도 된다. 그 모든 순간은 언젠가 너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필요하면 메모장을 열어 지금 내 감정을 쏟아보자.

“보고 싶어. 내 마음은 아직 그대로야.”를 넣어도 좋다. 보내든 보내지 않든, 그 문장은 네가 사랑했음을 증명하는 작은 기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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