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그런 나에 대해 설명 혹은 증명하고 싶지 않은
최근 팝송을 듣는데,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었다.
"나는 나를 증명할 필요도 혹은 설명할 필요도 없어 "
이 가사를 듣는데 신기하게도 2년 전의 일이 갑자기 스치듯 생각났다.
때는 2020년 5월경, 갑상선 항진증( 그레이브스병)을 막 발견하고 진단받았을 때였고
복용하기 시작한 약 성분이 몸에 효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내 몸과 마음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나의 몸도 갑자기 유입되는 경험 해보지 못한 성분에 적응하느라 놀란 듯했고,
내 마음은 롤러코스터,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생애 처음으로 극심한 우울을 맛보기 시작했다.
롤러코스터는 위아래로 움직이지만, 내 감정들은 주로 아래에 있었으니 수직하강이라고 표현하는 게 좀 더 적절하겠다.
(참고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요약하자면 갑상선 질환은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높은 확률로 신경 정신에도 큰 영향을 미쳐, 공황 및 불안 장애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겠다)
갑상선 항진증에는 여러 가지 증상들이 있는데 사실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하기는 힘드나 그중 1가지가
사소한 활동에도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어하며,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나도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듦을 호소했다.
평지인 길을 단지 20분 걸었을 뿐인데 집에 와서는 기진맥진했으니 말이다.
이 상황은 더 나아가 우리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는데 충분히 잠을 자고 전혀 피곤하지 않은 컨디션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업무를 하면서 졸거나 심지어 미팅 때 졸기 시작했다. (아마 프레젠테이션 하면서 살짝 어두운 방의 분위기가 더 그런 상황을 유발하는 요인이었을 수 있겠다 )
사실 그때는 그 상황들이 갑상선 항진증과 연관되어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미팅 때 조는 내 모습에 너무나도 자괴감이 들었다. 물론 뭐 대놓고 헤드뱅잉을 하는 정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왜 내가 지금 졸고 있는지 아닌지는 본인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나.
심지어 나는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그 프로젝트에 이제 막 착수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즉 잘 보여야 하는 상황). 잠을 깨 보고자 커피도 마셔보고, 중간에 목도 마르지 않는데 물도 마셔보았지만 속수무책으로 그 어느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그런 내 모습들에 , 내가 왜 그런지 도통 이유도 모르겠고 실망스럽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집에 와서 살짝 눈물을 훔쳤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미팅 때 졸았던 내 모습은 안타깝게도 1회성은 아니었고 적어도 2,3번은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 현상은 내 수치가 좀 안정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런데 말이다 팝송을 듣는데 갑자기 2년 전 그때의 상황이 오버랩되었던 이유는
가사를 들으면서 공감하고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미움받고 싶지 않은 우리들은 항상 우리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다만 회사라는 장소의 특성상 나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문제를 드러내지는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많다. 멋쩍기도 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라면서
굳이 드러내서 좋을 게 없는 우리의 약점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트레이닝을 받기 때문이다. 요즘 잘 지내냐는 질문에 개인사나 가족사를 늘어놓기 전에 멈칫하게 되는 것처럼.
저 위 나의 상황은 한 가지 예시일 뿐이고
그러니깐 솔직히는 괜찮지 않은데 대외적으로는 괜찮은 척해야 하는 그런 상황들 말이다.
가끔은 이런 내 모습을 설명하고 해명해야 하나 싶지만
굳이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기는 힘든 혹은
그러고 싶지 않은 그런 상황들에 부딪히게 될 때가 있다.
아무튼 오늘 밤 나는 그냥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때로는 나는 나를 증명할 필요도, 설명할 필요도 없어 "
Live Forever - Magnus Carlsson
https://www.youtube.com/watch?v=UI0INfri5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