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에세이를 쓰는 마음가짐
* 들어가기에 앞서 몇 가지 용어를 정의 내리고 가겠다.
1. ‘정신병/정병’이라는 표현은 정신질환을 비하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정병’ 당사자로서 자조적인 표현이자, 가장 직관적인 표현이기에 쓰고자 한다.
2. ‘조울증’이라는 용어 역시 의학적으로는 부정확하나, 일반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용어이기에 그대로 쓰고자 한다.
3. ‘정신과’ 대신 ‘정신건강의학과’가 올바른 용어이지만, 오히려 그 부정적인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정신과’라는 용어 또한 쓰고자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 편견이 만연해있다. 그조차도 똑바로 직시하고 싶다.
그러던 내가 에세이를 써야겠다 마음 먹은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었기 때문이다.
읽지 않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이 그곳에 있었고, 단숨에 빠져든 나는 한때 시중에 나온 ‘정병 에세이’ 책을 모조리 읽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정신 질환, 양극성장애 2형 당사자의 책은 보지 못했다. (이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니, 그 사이에 출간되었을 수도 있다.)
이 에세이는 우선 그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쓰였다.
현재의 내가 지닌 안정과 균형 잡힌 일상이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기원하며,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한다. 먼 훗날의 내가 기억을 되짚고 싶을 때, 혹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필요할 때 꺼내어 볼 수 있게끔.
어떠한 이정표를 세우고 싶은 마음 또한 있었다. 인생을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면, 지난했던 헌 챕터를 정리하여 마무리하고 새로운 챕터로 나아가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쓸 때 다른 것보다도 제일 먼저 제목을 짓는 경우가 많다.
글의 전체적인 갈피, 이미지, 분위기가 제목을 지음으로써 정립이 되고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반려조울>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나는 여러 의미에서 전율했다. 너무나 적절해서, 그리고 적절하다는 그 자체만으로.
조울증이 내 인생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소름 돋도록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첫 조증 삽화가 발생한 이후, 언제나 어딜 가나 나와 함께한다. 잠에 들 때도 잠에서 깰 때도, 살아 숨 쉬는 매 순간 나와 함께이다.
어떤 이는 조울증이 당뇨와 비슷하다고 한다. 일생에 걸쳐 조절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며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질병 코드’를 검색해보면 나오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질병, 상해, 증상 등을 알파벳과 숫자로 체계화하여 분류한 표준화된 기호.
[F31.9] 상세불명의 양극성 정동장애. 그것이 나의 질병 코드였다.
장발장의 24601과 다를 바가 무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질병 코드를 얻은 후, 내 인생에는 뜻밖의 긍정적인 변화가 여럿 있었다.
그 질병 코드가 때로는 나를 도와주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해줬고, 청년마인드케어 지원금을 받게 해줬다.
너무 악화되지 않게 의학적 처치와 도움이 꾸준히 필요한, 눈에 띄지 않는 부위에 있는 반점. 언제나 거기에 있고, 결코 지워지지 않을, 평생을 함께할, 반점.
에세이를 통해 내가 나의 반점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그 반점과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지 풀어나가고자 한다.
나처럼 질병 코드를 지녔지만 일상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시는 분들, 혹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 속에 섞여 지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시는 분들께 이 글이 닿아서, 조금이라도 공감될 수 있기를, 그로 인한 위로 또한 조금이나마 받아가실 수 있기를, 진심을 다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