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wea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 by you Nov 10. 2018

여성은 왜 아직도 "Appear"

시선의 변화를 바라며-

 


 성이라는 단어에는 두 의미가 있다.  

먼저 ‘Sex’란 순수한 생물학적 성을 말하며, ‘Gender’란 사회문화적으로 훈련된 성을 말한다.


이렇게 두 의미를 지닌 성이라는 단어의 요소는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양립된다. 양립이 가능하다는 것은 두 대상이 서로 굽힘없이 맞설 수 있음 을 말한다.


 따라서 성의 양립성을 되짚어보면,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나뉘는 기점에는 평등이라는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남성성과 여성성은 강약의 분할이 없이 두 대상 모두 고유의 가치를 품고 있으며, 평등을 본질적 기준으로 서로 상존해야만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단상은 “과연 우리 사회에는 성의 평등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성의 평등,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평등이 존재하는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사회에는 여성의 권리는 결여되어 있으며, 여성에 대한 윤리는 처참히 무시되어 왔다. 이는 역사에 대한 회고를 통해 그 사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男尊女卑(남존여비)라는 성어가 있다. 남자는 귀하게, 여자는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 남자를 여자보다 존중하는 양상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유교이념이었던 남존여비사상은 시대의 관행이었고, 사회의 보통적 이념이었다. 조선시대 이후 일제강점기를 맞이했지만, 여성들은 약자라는 이유로 분리되고 위안부라는 일본군의 성적 유린 대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가 끝나도 여성들에게 온전한 자유는 없었다. 20세기의 여성들은 항상 범죄의 대상이 되어 고통받았다. 민주의식이 발달하고 사회가 진화한 현재에도 이는 여전한 사실이다. 여성들의 억압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 몰래카메라, 육아휴직의 딜레마, 여성성을 표현하기 두려운 폐쇄적 의복문화의 고착. 여성의 성역할은 개인의 자유를 표현하기 이전에, 처참히 몰락되어왔으며 성역할 고정관념에 답습되어왔다. 이렇게 역사와 현재를 되짚어봤을 때, 여성성이 남성성보다 평가절하 되어 있다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21세기 현재는 어떠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전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의견대립은 주로 "여성은 과연 남성의 성적대상일 뿐인가" 라는 성 관념  오류 를 비판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성과 여성이 수평적 평등을 이루는 성의 양립 관계가 아닌, 남성우월로 인한 여성성의 가치절하가 수직적 구조를 이루고 있음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기실, 모든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이며 우월성을 지니고 여성을 판단한다고 정의 내릴 수는 없다. 또한, 모든 여성들이 잠재적으로 지배받고 있다는 것도 절대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계속되는 여성들의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여성성에 대한 성적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것과 남성성과 여성성의 수직적 분단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시사한다.


 각종 성범죄의 동기들은 말한다.
"여성이 나를 무시해서", "자신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라고.
 이에 대한 여성들의 맹렬한 비판에 대해 남성들은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는 아니지 않느냐" 라고.


 사람들의 이분법적인 논쟁과 수많은 성범죄 동기 속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가치 절하의 판단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 아닐까. 이는 규탄되고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이 문제는 사람들의 성에 대한 관념과 인식이 개선되어야만 변화가 가능하다. 유교적 윤리원칙을 타파하고 현대적 민주의식을 겸한 채로 성이라는 관념을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나는 궁금증이 들었다. 왜 시대는 변했는데도 사회의 시선은 그대로인지,


 “21세기의 사회에도 왜 여성은 남성보다 약해야만하고, 성적으로 가치절하를 당해야하는가?"









 그래서 나는 이 논제를 의복의 성 이론을 통해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의복과 성역할의 관계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Gender적 입장에서 성은 사회문화적으로 훈련된 성이다. 또한,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는 성은 구분 특성에 대해 사회적, 또는 문화적으로 형성된 관념이 존재하며 이는 성역할이라는 단어로 지칭된다.


 그렇다면 이 성역할이라는 것이 왜 의복과 연관되는가? 의복은 신체의 형상을 나타내어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성별의 기초가 되고, 특정한 의복이나 의복특질의 존재와 부재에 따라 부여된 의미로 성차를 표현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를 통해 성역할과 의복의 관계는 완성된다. 동시에, 의복은 성역할 사회화의 도구이다. 인간은 옷을 통해 자신의 성 정체감을 형성하고, 남성과 여성의 면모와 행동에 대한 사고 형성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역할과 의복은 직접적 관계를 지닌다.



  하지만, 이 의복을 통해 만들어내는 성역할에는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남성은 적극적이고 힘이 세야한다는 것과 여성은 순종적이며 얌전해야한다는 관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고정관념들은 의복과 성에 대한 기본적인 불균형을 잉태했다. 바로, “남성은 Look, 여성은 Appear 이다.” 여성은 보여짐의 대상으로써 의복을 입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의복을 입을 때에도 정숙성을 지키며 입어야 하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몰카에 대한 걱정은 이미 뇌리에 각인된 사실이며 , 여성들이 공용 화장실에 혹여나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렇게 여성들이 걱정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Sex와 Gender로서의 성의 문제를 넘어, 결국 남성과 여성 간의 기본적인 의복의 불균형이 존재함이 아닌가? 예로부터 아름다움은 여성성의 몫이었기에 이는 의복으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여성의 경우는 ‘Appear'의 형태였고, 그것을 'Look'하는 것은 남성의 몫이었다.
왜 여성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폭력에 휘둘려야하는가?
입장과 인식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평등하다, 공평하다 할지라도 이미 무의식 중에 폭력을 당하고 상처를 받는 여성들에게 처음부터 ‘평등’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약자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왜, 왜 옷을 입은 여성들은 이미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것임을 “왜 몰랐을까."


 19세기의 여성 복식 민주화운동을 되짚어보면, 패션은 여성억압과 종속 수단이었고 신체적 강제와 구속을 행하며 여성의 성적대상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 의복이란 여성의 열등한 지위 상징의 수단이었다. 때문에 여성성은 남성성보다 상대적으로 격하되어왔고, 여성 해방운동과 의복개혁운동 혹은 이성주의 복식운동 등의 성과 복식의 대항적 시도가 존재했었다. 성에 기초한 여성의 현대복식에는 여전히 그 피해의 잔해가 남아있다. 어디를 가나 무슨 옷을 입던, 남성들의 시선을 조심하는 여성들의 의복을 입는 행위에는 수많은 걱정과 우려가 참견하게 된다. 과거 의복의 기본적인 불균등으로부터 기인된 여성의복의 폐해와 그 잔재들을 해결하기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앞서 말한 의복의 기본적인 불균형과 여성의복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도는 21세기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적 시각을 통한 ‘드레스 무브먼트’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여성들에게 'Look'에 대한 자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이전부터 계속되어왔던 성과 관련된 의복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쳐야한다. 이러한 작은 시선의 변화가 여성들에게 묶여있던 족쇄를 풀 수 있는 작은 열쇠가 되기를 기원한다. 동시에 수 많은 미투 운동과 각각의 위치에서 여성인권을 신장하고 알리려는 움직임과 목소리를 응원한다.


 뉴스 속 성범죄 사건들을 숱하게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제서야 호흡하려는 여성들의 인권 운동을 보면서 여지껏 수도 없이 방관해왔음에 뉘우친다. 나 또한 남자라는 이유로, 섣불리 목소리를 내기가 망설였음에 나의 무능력을 수도 없이 느낀다. 끝으로 나는 바란다. 이런 생각과 글을 쓰는 것이 조금이나마 사회에 닿기를,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발아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패션잡지의 어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