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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 by you May 29. 2020

소등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작업

3일 간의 소등 - 1. 성과는 피로, 피로는 성과 성과사회는 피로사회다. 스스로 피로를 창출하고 피로에 절은 채로 다시 피로를 창출한다. 성과가 늘어날수록 피로는 비례한다. 하지만, 성과를 우선시하면서, 동시에 생기는 피로를 외면하는 일은 금물이다. 젊은 우리 세대의 번아웃 현상과 우울, 범람하는 무기력의 원인은 피로이다. 피로의 원인은 성과라는 논제에 대한 자기착취 행위이다. 이 잔인하면서도 사실적인 현상을 우리는 복기해야한다. 미래에 대한 부정과 불안장애는 철학가 한병철의 피로사회 논점을 직시해야만 한다. 다만, 이 피로를 없애기 위해 무조건적인 성과사회의 탈피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역시나, 성과사회의 일원이 되어야만하는 현대사회인들의 숙명같은 나날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만, 성과에 따른 피로를 조절하고, 우울과 자기착취의 도처를 찾아 지울 수 있는 자가면역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인정이다. 자기 표면과 내면에 대한 투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악착같은 진중함이 필요한 이유다. 지속적인 자가검열과 진찰은 자기착취로부터 오는 도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자기착취에 못이겨 삶의 자기경영을 놓치진 말자. 삶이란 당신이 태어날때부터 가진 프리미엄이다. 결국, 이 삶의 주인은 당신이다. 2. 어쨌거나, 마라톤 마라톤을 예로들자. 1등, 완주, 기록갱신  등, 마라톤은 참가하는 개인에 따라 그 목표가 다양하다. 따라서, 결승선이나 거리별 체크포인트라는 목표지점들은 누군가에겐 경주이기도 하며, 완주일수도 있다. 그렇기에 1등 이외엔 모두가 낙오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실을 인정할 줄 알아야한다. 예컨대 러너는 숨이 가쁘면 멈춰가거나, 템포를 느리게 조절한다. 레코드를 갱신하기 위해 페이스를 올렸지만 호흡을 놓친 상황이다. 괜찮다. 중요한 것은 이번 턴의 레스팅과 리커버리를 통한 넥스트 스텝이다. 빨리 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절이 필요한 코스에 제때 쉬거나 호흡을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도로 위의 운전자들은 졸리면 잠시 자고 갈 수 있도록 졸음쉼터를 법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어쩌면 갈 길이 멀거나 짧거나, 쉬는 일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본인 셈이다. 페이스와 레코드는 리커버리가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이 삼각관계는 절대적으로 필연적이다. 3. 드디어 찾은 약국 몇일 전 시험을 봤다.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답안지를 공란으로 제출했다. 또 어떤 과목은 처음으로 예정지출시간을 훌쩍 넘어 제출했다. 이전의 나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 불안과 자책에 못이겨 몇일 밤을 곱씹었을거다. 그런데 별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강박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식은 자신을 급습하는 나태와 무기력함를 인정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강박에 못이긴 결과지만, 나도 내가 못할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주변의 친한 형이 그랬다. “그 문제 하나 틀린다해도, 너 삶이 변화하진 않아.” 워낙 낙낙한 사람이라 그 성격에서 유출된 언습일테지만, 어찌됐든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뼈를 때리는 말에 놀랐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소등했다. 늘상 새벽까지 이어지는 자기착취를 거부하고, 리커버리를 위해 몇일 간 스케줄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강박장애에게 포기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이게 숱한 처방전보다 좋은 약이란 걸 깨달았다. 내게 맞는 약국을 찾는 것이 어려울거라는 전문의 선생님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제서야 그 말을 이해한 것 같다. 내가, 내가 숨을 쉰다. 4. 오늘의 신문 1면 동물들이 혹한의 겨울 내 어둠속에서 잠을 자는 것처럼, 3일 동안 내 방의 전등을 키지 않았다.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 것은 추위를 피하고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지만, 사실 이는 절약과 휴식을 통한 더 나은 종족번식과 생명유지를 위해서 다. 봄이라는 생명의 계절이 올때까지, 더 편안한 안식을 위해 어둠의 공간을 찾는 것이다. 이 휴식의 개념과 잠과 어둠의 관계는 동물이라는 전제조건 앞에서 동일하다. 인간이라는 동물도 빛이 없을 때 더 깊고 양질의 수면을 취한다. 평온한 잠이 빛의 방해 없이 완벽한 어둠을 함께할 때, 비로소 신체와 정신이 진정한 휴식을 맞이하는 것이다. 오늘은 감사한 3일을 마무리하는 밤이다. '강박장애, 드디어 소등하다.’ 내 생애 2020년 5월 14일 목요일 1면 표제를 이렇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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