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by 금옥

삶은 항상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여자들은 대부분 열아홉 혹은 스무 살쯤 되면 결혼을 했다. 서울 여자들은 늦게 결혼한다고 듣기도 했지만, 내가 살았던 시골에서는 보통 그랬다. 하지만 나는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고 아침이면 깃이 바짝 서있는 새하얀 셔츠 정장에 자전거를 타고 경찰서로 일하러 다녔다. 그렇다. 나는 동네에서 아주 아주 눈에 띄는 신여성 아가씨였다. (그때는 신경도 안 썼지만 돌이켜 보면 옛 어르신들 시선에서는 그런 내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을듯 싶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에서 만난 그 남자는 내 삶의 방향을 슬그머니 바꾸어 놓았다. 스물일곱이나 된 노처녀에게 청혼을 한 남자도 흔치 않았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꿔 결혼하기로 결심한 나 역시 용감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나이를 꽤 먹어서 결혼을 했고, 조촐하게(?) 식을 올렸다.


사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다소곳이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하라 말씀하셨지만 나는 신여성답게 시내에 있는 웨딩홀에서 하얗고 누구보다 풍성한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마무리했다. 신기한 구경에 동네 어르신들 모두 식장으로 몰려들었다.


구름 떼처럼 모인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말씀하셨다. 금옥이가 나이가 참 많지만 정말 괜찮은 아이라고. 그렇게 나를 치켜세우며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시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하셨고, 결국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 함께 살게 되었다. 신혼인 줄 알았지만 신혼은 없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병원과 한의원 등을 다니다 보니 두 달이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다.



몸이 편찮으신 시부모님들과 함께 살다 보니 남편과 한 이불속에서 잠이 드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러한 나에게 어머님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이를 갖기 어려우니 희망을 갖지 말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셨다. 반면 시아버님은 지인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가서 임신을 돕는 약을 지어와 이 약, 저 약 먹어보라고 하시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사실 나에게 그 한약들은 극약 같았다. 거기다 임신을 간절히 바라는 가족들의 표정은 내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스물여덟이 되자 나는 임신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결국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처음으로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


‘독신을 선언했으면 그냥 혼자 살 것이지, 결혼해서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구나. 바보같이.’

나는 스스로를 원망했다. 해가 뜨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사는 순철이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금옥아, 웬 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 체할라, 천천히 먹어. 너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구나?”


순철이 엄마는 내가 밥을 너무 많이 먹으니 걱정된다며 혀를 찼다.


“쯧쯧쯧.”


그러고는 밥상 위의 빈 그릇들을 주섬주섬 챙겨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며 우리 시부모님 들으라는 듯 엄청나게 큰 소리로 말했다. 덩치 큰 순철이 엄마 목소리에 부엌이 떠나갈 것 같았다.


“본인들이라고 애를 안 갖고 싶겠어? 이게 다 시집살이지 뭐야. 금옥아, 밥 맛있게 먹었다. 나 간다!”


순철이 엄마는 시키지도 않은 말을 내뱉고는 설거지를 해놓고 가버렸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고창아야, 들어와 봐라. 누가 너보고 애 안 낳는다고 했냐. 괜히 나쁜 시어미 만들지 마라. 내일 정읍 집으로 갈 테니 그리 알아라. 나가봐라.”


어머니는 노여움에 정읍 집으로 가겠다고 하셨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순철이 엄마가 밥만 먹고 가시지 쓸데없는 말을 해서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해 드렸네요. 내일 병원 가는 날인데 정읍 집에는 어딜 가신다고 그러세요. 죄송해요, 제가 임신을 못 해서 정말 죄송해요.”


나는 시어머니께 머리를 조아리며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빌고 또 빌었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렇게 뒤돌아서는데 또 배가 고팠다. 눈물을 훔치며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또 먹었다. 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뱃속에 거지가 사는 것 같았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중얼거렸다.


‘미친 거 아냐? 무슨 밥을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또 배가 고프지….’


나는 저녁밥도, 아침밥도 백 일을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바지가 잠기지 않았다. 이러한 내 태도를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미야, 우리 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데 아버지랑 정읍 집으로 내려가마.”

“어머니, 그게 아니에요. 저도 모르겠어요. 배가 계속 고프고 어지러워서 자꾸 먹게 되는 거예요. 죄송해요.”


나는 시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음식 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맞는 바지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친정에 가서 엄마한테 몸뻬 바지를 좀 가져 다 달라고 했다. 친정엄마는 옷을 가지고 와서 말했다.


“금옥아, 왜 이래? 속상한 걸 음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부모한테 잘해야 복 받는 법이다.”

“엄마, 그게 아냐! 그냥 배가 고파서 먹는 거야. 다들 내가 시부모님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러는 줄 아는데, 나 나쁜 사람 취급하지 마. 정말 배가 고파서 먹는 거라고! 제발 엄마라도 아무 말 말아주면 안 돼? 나 너무 속상해 죽겠어. 엄마, 나 결혼 괜히 했나 봐. 그냥 혼자 살걸….”


당시 나는 임신 3개월이 넘었는데도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나뿐만 아니라 시부모님도, 친정부모님조차 몰랐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마냥 먹기만 하는 줄 알았다. 나는 3개월이 넘었어도 입덧 한 번 하지 않았다. 모든 음식이 꿀맛이었다. 끝내 임신인 줄 모르고 살이 찌고 배가 불러오니, 시아버지처럼 간경화가 온 줄 알고 시어머니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씀하셨다.


“고창아야, 병원에 한번 가봐라. 네 시아버지도 배가 이상하게 나와서 가보니 복수가 찼고 간경화라더라. 너도 어서 병원에 가봐.”


어머니는 진심으로 걱정하셨지만, 나는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고 싶어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뱃속에서 뭔가가 꼼지락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 오른쪽 가슴 밑을 툭 차면 소스라치게 통증이 오기도 했다. 나는 덜컥 두려웠다. 이제 정말 죽는구나 생각하니 모든 게 공허하고 허무했다. 내 몸은 이제 발이며 온몸이 부을 대로 부어 있었다. 친정엄마는 딸의 모습을 보며 울면서, 송아지 끌고 가다시피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진찰을 마친 의사가 말했다.


“축하합니다. 임신 7개월입니다!”

“의사 선생님, 지금 우리 딸 금옥이가 임신 7개월이라고 하셨나요? 참말로 임신 맞나요?”

“네, 임신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영양제 주사를 처방하며 원장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도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엄마와 나는 서로 껴안고 엉엉 울었다.

“엄마, 나 임신 맞대.”

“그렇다잖냐, 금옥아. 이제부터는 먹는 것도 제일 크고 예쁜 것만 골라 먹어야 한다.”


엄마는 뱃속의 아이를 위해 좋은 것만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나와 엄마는 그렇게 울면서 병원을 나왔다.


우리 아들은 이렇게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을 꽉 채워 세상에 나왔다. 녀석은 평생 해야 할 효도를 태어날 때 다 한 셈이다. 첫 아이가 태어날 때의 그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를 품에 안는 따스한 순간, 온 가정에 웃음꽃 향기가 스며들었다.


나는 이제 고요한 새벽, 다시 주방으로 향한다. 우렁차게 우는 아들에게 줄 분유를 타기 위해서다. 한 생명은 우리를 진짜 ‘가족’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 작은 아이의 사랑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더 빛나고 환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메인화면: pinterest

*새로운 브런치 북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웃음 짓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