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임신 때는 입덧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 가보기 전까지는 임신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첫아이를 출산했다.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기에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곧 법이었다. 사실 몸 관리를 하고 싶어서 모유 대신 분유로 아이를 키우려고 했다.
시어머니께서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아이는 모유를 먹여 키워야 건강하지, 무슨 분유를 먹이려고 그러느냐? 아기 운다!! 어서 젖을 먹여라.”
시어머니 말씀을 옆에서 듣고 계신 친정엄마도 한마디 거드셨다.
“시어머니 말씀이 맞다. 어서 아기 젖 주어라.”
친정엄마는 내 편이 아니라 시어머니 편이었다. 서운하고 속상했다. 친정엄마는 아기를 내 품에 안겨주면서 빨리 모유를 먹이라고 성화셨다.
사람들 앞에서 모유를 준다는 게 어찌나 쑥스럽고 민망했는지 모른다. 나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울고 있는 아기에게 모유를 줄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아기가 6개월이 되자 모유를 끊고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아기는 분유도 잘 먹어주었다. 분유를 잘 먹어주는 아기에게 감사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께서는 내 행동을 매우 못마땅해하셨다. 하지만 자식 이길 부모 없듯,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아기가 분유를 잘 먹고 날로 자라나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불만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모유를 끊고 얼마 되지 않아, 음식을 먹기만 하면 체하기 시작했다.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면 친정엄마는 소다를 갖다 주면서 먹으라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약국에 가서 활명수라는 것을 살 돈도 없던 시절이었다. 옛날 어르신들에게 소다는 소화가 잘 안 될 때 먹는 민간요법 소화제였다. 하지만 소다를 먹어도 계속 헛구역질을 하고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
인생 최저 몸무게가 되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몸무게가 너무 늘어 옷이 하나도 맞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음식을 먹지도 않았는데도 계속 헛구역질을 하며 게워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점점 말라갔다. 심지어 식당 앞을 지나다 맛있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나면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바람에 길에 게워낸 적도 있었다.
첫째 아이가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기에 임신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임신 16주가 넘었는데도 속이 더부룩한 것은 여전했다. 두 번째 임신이 이렇게 빨리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친정엄마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딸을 위해 온 동네를 다니면서 민간요법 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셨다. 좋다는 약을 다 먹어봐도 소용없었다. 자극적인 음식뿐만 아니라 상큼하고 가벼운 음식조차 먹지 못했다. 고기는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어졌고, 결국 아무것도 챙겨 먹지 못했다. 냄새만 맡아도 토하는 딸을 보고 친정엄마가 부엌일이며 시어머니 병시중까지 도맡아 해 주셨다. 이렇게 두 번째 임신은 온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입덧이 심했다.
둘째 아이는 겨울 들판에 보리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이른 봄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모두들 신기해했다. 첫아이 때는 보지 못했던 뽀송뽀송한 피부에 야들야들한 솜털이 아지랑이처럼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손가락은 어쩜 저렇게 곱고 예쁠까.
‘왜 첫째 때는 못 봤지? 아무 생각이 안 나지? 첫째가 태어났을 때 보여준 잘생긴 얼굴 외에는 기억이 안 나네......’
둘째는 딸아이였는데, 피부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이며, 입술을 삐죽삐죽하며 울려다 말고 웃는 모습이 꼭 요술 공주 같았다. 나를 닮지 않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남편은 딸이 태어나자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 모빌을 사다 침대 위에 달아준 것이다. 하지만 모빌을 본 딸아이는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울어 댔다. 결국 나는 모빌을 다시 떼어냈다. 울고 있는 딸을 달래기 위해 장난감을 흔들어 주어도 울고, 젖을 먹여도 울었다. 끝내 나도 소리 내어 울면서 말했다.
“아가, 뭐가 불편하니? 엄마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엄마가 바보라서 잘 몰라서 그래. 어떻게 해줄까?”
내가 아이한테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첫째 아들이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졸랐다. 둘째의 울음을 달래느라 등에서는 굵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계속 울어대는 갓난아기와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는 첫째 사이에서 누구를 신경 써야 할 것인지 갈등이 생겼다. 지금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첫째 아이 마음에 공감해 주기로 했다. 우는 딸아이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함께 우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울면서 첫째가 읽어달라고 졸랐던 책을 집어 들었다. 둘째 딸은 계속 울고 있었다. 우는 딸을 무릎에 안은 채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상이 무너질 듯 울어대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치고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울음을 그치고 웃고 있는 아이를 꼭 껴안아 주면서 젖을 물린 후, 다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울던 딸아이는 책 읽는 소리에 울음을 그치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가, 너도 오빠처럼 책을 읽어달라고 했구나. 엄마가 몰랐네...”
나는 첫째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아이고, 오빠가 동생이 책 읽어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 오빠가 엄마보다 낫네.”
나는 잠든 딸아이를 이불 위에 눕히고, 첫째를 번쩍 안아 무릎에 앉혔다.
“아이고 착한 아들, 내 강아지.”
나는 착한 아들의 엉덩이를 계속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런데 아들은 갑자기 내 품에서 빠져나가 할머니 방에 가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할머니, 왜 엄마가 나보고 강아지라 해?”
“으음~ 엄마들은 아들이 착하고 귀엽게 굴면 그렇게 말해. 너도 강아지 귀엽지?”
“네.”
아들은 궁금했던 것이 해결되었는지 소파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 이후로는 동생이 울면 첫째는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했다. 울던 딸은 초롱초롱한 눈을 뜬 채, 엄마 얼굴을 잊어버릴까 봐 빤히 바라보며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손을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놀았다. 나는 그때마다 첫째에게 칭찬과 사랑을 듬뿍 주었다.
첫째 때는 몰랐지만 둘째를 낳으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마다 각자 독특하고 다른 타입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쩌면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가진 기질과 그 기질에 맞는 부모의 양육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초보 엄마였던 나는 새로운 보물들을 만나며 모든 아이들은 각기 나름대로 사랑스러운 고유의 모습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소중한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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