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복된 날

by 금옥

40년 전인 1985년도의 일이다.


나라에서는 인구 억제 정책이 시행되었다. 셋째 아이를 낳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비싼 병원비를 내야 했고, 세금 혜택도 없어 세금도 더 많이 내야 했다. 1980년대만 해도 셋째 아이는 환영받기 어려웠다.


지금이야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게 되면서, 출산 정책이 완전히 바뀌었다. 셋째 아이 위상이 4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완전 반대가 되었다. 엄마 배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다양한 혜택이 셋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셋째를 출산하면 1억을 지급한다는 뉴스에 눈이 동그래지기도 한다. 나라에서, 시에서는 셋째에게 잘 태어났다며 축하금도 주고, 과일 꾸러미, 곡물 꾸러미 보너스가 끝없이 선물한다. 현시대에 셋째 아이는 진정한 복덩이라고 할 만하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40년 전 태어난 우리 셋째가 내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복덩이였다고.


초보 엄마였던 나는 6개월 이상 모유를 먹이면 아이 머리가 멍청해진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고 싶었다. 첫아이도 모유를 6개월 이상 먹이지 않았다. 둘째도 6개월이 되면서 모유를 끊었다. 모유를 끊고 얼마 되지 않아 집 나갔던 밥맛이 기적처럼 돌아왔다. 어떤 음식이든 맛있었다. 음식을 과식하다시피 먹고 있으니 엄마가 놀라 물었다.


“금옥아, 너 혹시 임신한 거 아니냐? 요새 음식 먹는 것 보니 임신한 것 같다.”

“엄마, 현정이 출산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임신은 무슨…. 엄마, 제발 쓸데없는 말 좀 하지 마세요.”

“아니야, 금옥아. 엄마랑 한의원에 가서 진맥 좀 해보자.”

“엄마~~~”


병원에 가보자는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쓸데없는 말 좀 하지 마시라며 눈을 흘겼다. 엄마는 눈치를 살살 보다가 딸이 밥 먹는 것을 계속 관찰하고는 또 말씀하셨다.


“금옥아, 아무래도 너 임신이다. 임신 귀신은 속여도 엄마는 못 속인다.”


엄마는 계속 임신이라고 하시면서 한의원에 가 진맥을 해보자고 성화였다. 할 수 없이 엄마 따라서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받았다. 한의원 원장님이 입을 여셨다….


“임신입니다.”

“네? 임신이라고요? 원장님, 저 아기 1984년 2월에 출산했어요. 그런데 임신이라니요. 보통 임신은 3살 터울 아닌가요?”

“임신은 개개인이 달라서 연년생으로 임신하는 예도 있고 5년 터울도 있고 10년 터울도 있어서, 모든 사람이 3살 터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임신이니 조심하세요.”


한의원에서 나오는데 엄마가 말씀하셨다.

“금옥아, 너 이번에는 아들이다. 아기는 보통 성 바뀌어서 낳는 확률이 높다더라. 이번에는 분명 아들이다. 아이고, 내 강아지가 아들을 임신했구나!”

“엄마, 그러지 마! 나는 딸이 더 좋아. 그리고 딸이면 어떻게 할 건데….”

“딸이면 네가 엄청 예쁘게 키우겠지. 너 혹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엄마는 아들이고 딸이고 혹여나 나쁜 마음을 먹고 아이를 지울까 봐 겁이 나셨나 보다. 엄마 말씀 속에는 걱정이 깊이 배어 있었다. 당시 이야기를 좀 하자면, 사람들은 셋째를 낳는 엄마에게 야만인이라고 말했고, 앞에서 뒤에서 손가락질을 해댔다. 엄마는 딸이 사람들 눈이 부끄러워 혹시라도 아이를 지울까 싶었는지, 계속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도 임신이 된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무슨 놈의 한의사야, 돌팔이지. 애 출산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임신은 무슨 임신. 아니야, 아니야.... 정말 한의사 말대로 임신이면 어떻게 하지…. 시부모님들이 나를 보고 얼마나 무식하다고 할까? 돼지 새끼라고 하겠지.
그럼 돼지 삼 형제, 풋풋풋.’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를 부르셨다.

“복상 양반, 금옥이가 임신이여. 임신!!! 그것도 아들이여!! 아들!! 빨리 선희네 집에 가서 지푸라기 좀 얻어와요. 선희네가 나락 농사 농약 않고 지었은 게. 빨리 가서 얻어와요. 고추는 내가 집에 가서 가지고 올 테니 얼른 다녀와요. 그리고 시장에 가서 백지 종이도 사 오고 그러시오.”


엄마는 딸이 아들을 임신하였다고 지푸라기를 새끼 꼬고 고추를 끼워 대문 앞에 달아놓겠다고 소란을 피우셨다. 옛날에는 그랬었다. 아들을 낳으면 대문에 지푸라기에 고추를 끼워 청결하지 않은 사람은 오지 말라는 표적이었다고 한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도 첫째 임신 때와 같이 입덧하지 않았다. 엄마는 사위가 퇴근하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김 서방, 금옥이가 임신했다네. 오늘 한의원에 갔는데 임신이라고 했네….”


엄마는 사위 표정을 보고 말을 아끼셨다. 남편은 인구 억제 정책 때문인지 우리 집 경제 사

정 때문인지 기뻐하지 않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알 수 없는 남편 표정을 보고 말했다.


“종호 아빠,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벌어서 셋째는 대학원까지 공부시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자네한테 돈 벌어오라고 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남편은 옷을 벗고 쉬고 싶었는데 내 말을 듣고는 기분이 나쁘다는 식으로 벗으려고 했던 양복을 그냥 그대로 입은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밖으로 나가는 남편을 보니, 마음에 갈등도 생겼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도 밖으로 나가버린 사위를 보고 언짢으신지 문턱 앞에 앉아 담배를 계속 피우셨다. 순식간에 방 안에 담배 연기가 가득하였다. 방 안쪽에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시던 시아버님이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문을 열고 담배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수건을 계속 털어대셨다.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꼬집으며 말했다.


“엄마, 제발 담배 좀 그만 피워요. 시아버님 하시는 것 안 보여요? 그러려면 엄마 집으로 가서 살든가?”


괜히 엄마에게 날카로운 말을 하고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시내로 나오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 셋째를 보란 듯이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걷다 보니 시장이었다. 수예점이 눈에 들어왔다. 수예점에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사장님, 혹시 뜨개질 일거리 없나요? 제가 뜨개질을 억수같이 잘 떠요.”

“예쁘장한 여사장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혹시 앙고라 실로 조끼 떠본 적 있나요? 앙고라 실은 엄청나게 재채기가 나오고 코가 근질근질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앙고라 실로는 한 번도 뜨개질해 보지 않았는데 한번 해볼게요.”


사장님께 조끼 5개 뜨개질 주문을 받아서 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셋째를 꼭 낳아서 훌륭하게 키워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털실을 몽땅 들고 오는 것을 본 엄마는 깜짝 놀라셨다.


“금옥아, 엄마 엄청나게 걱정했다. 네가 나쁜 생각 할까 봐…. 그래, 그래, 내 새끼 집에 들어왔으니 됐다. 이제 엄마도 담배 밖에서 피우마. 미안하다.”

“엄마, 괜찮아. 엄마 편한 대로 해. 시아버님이 담배를 안 피우시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그리고 오늘부터 뜨개질해서 돈 벌려고 수예점에서 일거리 가져왔어.”

“그래그래, 잘했다, 잘했어.”


엄마는 내가 나쁜 생각 안 한 것이 고마운지 계속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은 자정이 거의 될 무렵에 집에 들어와서 뜨개질하는 내 무릎 앞에다 쇼핑백 하나를 턱 놓고 어머님 아버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엇인가 싶어 쇼핑백 안에 손을 넣어보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아주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뭐지?? 뭐가 이렇게 부드러워….’


부드러운 느낌이 든 물건을 꺼내 보았다. 임신복이었다. 남편이 던져놓고 간 쇼핑백 속 임신복을 보는 순간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핑 돌며 닭똥 같은 눈물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운하고 슬펐는데 피식 웃으며 달려가서 ‘종호 아빠 고마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계시니 마음을 전달하지 못했다.



임신복을 부엌으로 가서 입어보았더니 예쁘게 잘 맞았다. 새 옷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얼른 벗어 물에 넣고 손빨래하였다. 다음 날, 임신복이 마른 후 입었더니 시어머니가 물으셨다.


“종호 어미야, 옷 사 입었냐? 또 아기 더 낳으려고 아비 뼛골 빠진다. 쯧쯧쯧.”

“아니에요, 어머니. 지은이 엄마가 준 것이에요. 지은이 임신할 때 입은 것이라고 주었어요.”


경제 사정이 팍팍하기만 했던 그때는 시어머니께 남편이 임신복을 사주었다고 자랑할 수 없었다.

임신한 지 10개월이 되었다. 출산 날이었다. 남편은 여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병원이라는 말도 끄집어내지 못하며 통증을 견디고 있었다. 그때 친정엄마가 이마의 땀을 보면서 말했다.


“대체 너는 곰탱이냐!! 양수가 나왔는데 그러고 있어!!!”

엄마는 밖으로 달려가서 택시를 불러왔다. 나와 엄마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서 셋째 딸을 순산하였다. 셋째 딸을 순산하는 날 남편은 대통령 표창장을 받아왔다. 우리 가족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남편, 종호, 현정, 금옥, 셋째 아이 총 9명이 둘러앉았다. 초코파이 두상자를 사서 초코파이 위에다 하얀 초를 9개 꽂아놓고 축하 노래를 부르며 셋째 아이 탄생을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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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복된 날이었다. 외할머니는 셋째 아이에게 재물 운, 건강 운, 사랑 운 등 온갖 복을 달라고 두 손을 빌며 또 빌었다.


우리 집은 셋째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지푸라기에 고추를 꽂아 놓은 것을 대문 앞에 계속 걸어놓으셨다.


노란 보름달보다 복을 가득 담은 셋째 아이는 그렇게 성큼성큼 우리를 찾아왔다.


*메인화면: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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