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돼지 삼 남매

by 금옥

40년이나 된 이야기를 꺼내 써 내려가고 있다.


사는 것이 바빠 덮어두었던 기억을 꺼낸다는 것이 어떤 경험을 선사해 줄까.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다. 글을 쓰며 얻은 성과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까지 드니. 기억이라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화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40년 전 그 자리에 웃으며 서 있던 스스로가 참 대견했다. 무엇보다 그 길을 꽃으로 덮어 준 세 명의 아기 천사, 아니 아기 돼지 삼 남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아이 셋을 출산하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몸과 마음이 바빴다. 매일 아침 시간은 특히 바빴다.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시간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집에는 아이들을 목욕시킬 수 있는, 자주색의 커다랗고 단단한 고무로 만들어진 목욕 대야가 있었다. 처음부터 그 용도는 아니었다. 한 살, 두 살, 네 살 아이들을 함께 목욕시키기에 딱 적당한 크기라, 아이들 전용 목욕 대야로 어느 순간 변해 있었다.


스크린샷 2026-01-10 225949.png <출처: 네이버 이미지>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목욕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었다. 말이 트이지 않아서 그렇지, 아침에 밥 먹고 난 후 목욕하자 말하면 셋이서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며 손뼉을 쳤고 깔깔대며 웃었다. 목욕이 시작되면 큰 대야에 먼저 삼 남매를 모두 넣어둔 후, 셋째를 먼저 목욕시켰다. 셋째는 당시 무척 어렸지만, 목욕을 시켜도 울지 않았다.


셋째가 목욕하는 동안 첫째와 둘째는 신이 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장난을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늘 그렇듯 둘째를 씻길 즈음이 되면 대야에서 튀어나온 물 폭탄으로 방 안은 온통 물바다가 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가끔 첫째는 더 장난을 치고 싶었는지 대야에서 나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팔딱팔딱 뛰어 이쪽 방, 저쪽 방, 안방으로 왔다 갔다 하며 물통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종호야, 방바닥에 물이 있어서 미끄러진다. 조심해야 해.”


장난기가 발동한 첫째는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그저 신이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다녔다. 둘째들이 항상 그렇듯, 오빠가 뛰어다니면 자기도 뛰고 싶고, 오빠가 기어 다니면 자기도 기고 싶어 한다. 둘째는 오빠를 바라보며 물 묻은 몸으로 방 안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학습한다. 오빠를 한참 바라보던 둘째가 도전을 시작했다. 낑낑거리며 물통을 붙잡고 일어나 물통에서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둘째는 물통 밖에서 결국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때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종호가 넘어져 울까 말까 고민하는 둘째를 보더니 달려와 둘째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었다. 첫째가 정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지는 못했지만, 넘어져서 아픈 동생을 무척 도와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방 안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을 보며, 당시 내 머릿속에 아무 감정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저 이런 것도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방에 물이 튀어도 다그치기보다는 묵묵히 아이들에게 맞추어 같이 물놀이를 즐겼다. 사실 다그친다고 해도 뾰족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깔끔한 집 관리에는 조금 무심한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자자, 오빠가 도와주었으니 예쁜 공주님 목욕 순서 됐네요. 자, 목욕합시다.”

현정이는 오빠처럼 계속 뛰어놀고 싶은지 목욕 대야 안으로 안 들어가려고 한다. 결국 둘째 현정이를 안아서 목욕시켰다. 다음 차례는 첫째였다.


“종호야! 이제 종호 차례네. 빨리 와. 빨리 목욕 끝내고 엄마가 맛있는 간식 줄게.”


하지만 종호는 계속 뛰어다녔다. 첫째를 붙들려고 했더니 종호는 더욱더 신이 나서 이쪽저쪽으로 도망 다녔다. 결국 종호를 덥석 안아서 목욕통에 앉혔다. 엄마에게 붙잡힌 종호는 목욕하기 싫다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종호에게 말했다.


“김종호, 목욕 안 하면 벌레들이 종호한테 놀자고 모여든다. 밤에는 모기들도 종호를 막 물면서 놀자고 할 건데 괜찮겠어?”

“싫어요.”

“그래, 목욕합시다. 자~~ 랄랄라 목욕합시다.”


종호는 모기에 물려본 경험이 있어 벌레 이야기에 목욕하겠다며 목욕통 안으로 순순히 들어왔다. 한 시간에 걸쳐 첫째까지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려는데 또 장난이 시작되었다. 자아가 막 발달하고 있는 첫째는 또 신이 나 옷을 입지 않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다닌다.


“종호야, 빨리 옷 입자. 어서 와.”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어미야, 놔둬라. 사내는 시원해야 한다. 그냥 뛰어놀게 놔두어라.”

“어머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버릇을 잘못 들이면 안 돼요. 어머니, 빨리 와서 옷 입으라고 하세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이들은 일관성 있게 말해야 한다고요.”


어머니는 끝까지 나에게 핀잔을 주며 말씀하셨다.


“애가 신나게 논다는데 어미도 참 별것 가지고 아기를 잡으려고 하냐.”


무슨 고집이었는지 어머니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뛰어다니는 종호를 안아서 옷을 입혔다. 어머니께 핀잔을 들었지만 보송보송해진 아이들을 보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아이 셋을 나란히 눕혀놓고 뿌듯했다. 물에서 노느라 피곤했는지 이내 첫째, 둘째, 셋째는 우유 통을 물고 새근새근 잠이 들어 버렸다.


‘형제간이 많은 게 참 좋구나.’


낮에는 첫째가 귀엽게 뛰어다니고, 둘째는 뒤뚱뒤뚱 걸어 다니고, 셋째는 오빠와 언니의 떠드는 소리가 정감이 가는지 뛰어다니는 쪽을 보고 싶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면서도 눈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온 방 안이 귀여움으로 가득 찬다.


문제는 셋째였다. 밤에는 온종일 예쁘고 귀엽게 놀던 아이가 돌변하여 밤만 되면 셋째 아이는 운다. 밤새 안아서 달래도 운다.


“응애~ 응애~~~”


동생이 우는 것을 보고 첫째 종호는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조르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엄~~ 마, 엄~마~, 엄~마~ 워 워워.”


종호는 책을 읽어달라고 책을 가지고 와서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로 “워 워워” 하며 읽어달라고 울면서 떼를 쓴다. 둘째 현정이도 첫째가 우는 것을 보고 놀라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하면서 운다. 셋째는 계속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첫째, 둘째, 셋째의 울음소리를 듣고 친정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셔서 말씀하신다.


“셋째 이리 줘 봐라. 내가 안아보마.”

“엄마, 괜찮아요. 조금 있으면 그칠 거예요. 얼른 건너가서 주무세요.”


나는 엄마를 건너가게 한 후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종호야, 책 이리 가져와. 엄마가 읽어줄게. 종호가 동생 현정이가 울 때도 책 읽어달라고 했지?”

“응.”

“그래서 동생 현정이가 울음을 뚝 그쳤지?”

“응.”

“지금도 소연이 울음 그치라고 그러는구나.”

“응.”

“아이고 착해라. 내 강아지 착하네.”


현정이는 첫째 종호를 예뻐하는 것을 지켜보더니 칭얼거리며 내 무릎으로 기어 올라와 안아달라고 한다. 강아지 같은 모습에 첫째와 둘째를 무릎에 앉혀놓고 꼭 껴안아 주었다.


“자, 엄마가 지금부터 아기 돼지 삼 형제 동화책을 읽어주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읽어주니 주위가 조용해졌다. 아기 돼지 삼 형제가 늑대를 피해 벽돌집에 모여 살게 되었을 때, 집이 떠나가게 울던 셋째는 이미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엎드려 듣고 있던 현정이와 종호도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바깥은 이미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검은 하늘 위로 노란 달과 별이 반짝였다.


‘너!! 참 잘했다. 아이들한테 소리 지르지 않고 잘 참았네. 잘했어, 잘했어.’


아이들을 토닥이며 나 자신을 칭찬했다.


내일 다시 아침이 밝으면 바닥엔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와 장난감이 굴러다니고 세 명의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고 뛰어다니겠지.


아이들은 그렇게 웃고, 뛰고, 울기도 하고, 방바닥을 굴러다니며 자란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메인화면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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