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날씨가 푹푹 찌는 여름이었다.
더운 탓인지 아기 돼지 삼 남매는 한꺼번에 울기 시작했다. 폭염으로 푹푹 찌는 날이었지만, 아이들이 먹을 이유식은 따뜻하게 데워야 했다. 데워진 젖병을 가져다주자 현정이와 소연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째 종호는 이유식을 주어도 먹지 않고 젖병을 밀어낼 뿐,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결국 울고 있는 종호를 안아 들었다.
“종호야 왜 그래, 자 여기 우유 먹자. 뚝 그쳐야 착하지.”
종호는 뭐가 불편한지 젖병을 손으로 밀며 계속 울어댔다. 나는 젖병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울고 있는 종호를 안은 채 집을 나섰다. 종호를 달래며 한 발 한 발 걸었다. 어느새 시장까지 왔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시끌벅적한 소음과 수많은 사람을 본 종호는 신기한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울음을 뚝 그쳤다. 그제야 종호를 땅에 내려놓고 손을 잡은 채 시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젊은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질러댔다.
“싸요 사요! 아동복 한 장에 300원, 두 장에 500원, 다섯 장에 1,000원! 오늘은 돈 벌어가는 날입니다!”
아동복이라는 말에 발걸음이 향했다. 길거리에서 파는 옷이었지만 물건은 꽤 괜찮아 보였다. 젊은 남자의 말대로 잘만 고르면 돈을 버는 셈이었다. 나는 종호의 손을 잡고 물었다.
“종호야, 이거 우리 아들한테 맞나 보자. 어디, 멋있는지 볼까? 이건 종호 거니까 들고 있어. 동생들 것도 골라보자.”
다섯 장에 천 원이라는 말에 눈이 어두워져 옷더미를 뒤졌다. 낱개로 사면 1,500원인데 다섯 장을 채우면 한 장에 200원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젊은 남자가 옷더미를 듬뿍 들어 꽃가루 뿌리듯 공중에 흩뿌리며 외쳤다.
“싸요 사요! 오늘은 돈 벌어가는 날!”
그때 하얗고 리본이 달린 예쁜 옷 한 벌이 내 근처에 떨어졌다. 다른 사람이 채가기 전에 집으려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종호의 손을 놓고 팔을 쭉 뻗어 옷을 낚아챘다. 리본이 내 손끝에 닿는 순간, 따뜻했던 종호의 작은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다. 기분이 뿌듯했다. 그렇게 옷 다섯 장을 모두 골랐다.
주인에게 천 원을 건네려고 계산을 마친 뒤 다시 종호의 손을 잡으려는데, 곁에 종호가 없었다. 종호, 현정이, 소연이에게 예쁜 옷을 입힐 생각에 부풀어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인파 속에서 아이를 어떻게 찾나. 순간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종호를 큰소리로 불렀다.
“종호야! 종호야 어디있!!! 니!”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뛰며 시장통을 헤맸다. 작고 작은 첫째 종호는 시장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소연이에게 젖을 주어야 할 시간이었다. 상의에서는 젖이 흘러나와 티셔츠를 적셨고, 가슴에는 팽창하는 통증이 밀려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꺽꺽 울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혹시 조그마한 사내아이 못 보셨어요? 네 살짜리 남자애예요!”
땡볕 아래 온 길을 다시 찾아 헤맸지만 종호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어느덧 서산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호 아빠, 여기 시장인데요. 오후 2시쯤 종호를 잃어버렸어요. 아직 못 찾았어요. 어떡해, 종호 못 찾으면 나 어떡해! 파출소에 신고 좀 해줘요, 제발!”
“아니, 애를 어떻게 데리고 다녔기에 잃어버려? 당신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남편의 고함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터져 나왔다. 울면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종호의 이름을 외치는데, 자전거를 탄 사람이 내 앞에 멈춰 섰다.
“혹시 김형사님 부인 아니세요? 저희 파출소 팀장님이 사모님 여기 계실 거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드님 지금 파출소에 있으니 빨리 데려가시라고요.”
사양할 겨를도 없었다. 몸을 붕 날려 재빠르게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탔다. 자전거는 이내 파출소에 도착했다. 작은 파출소 문을 열자마자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저만치 의자에 앉아 과자 봉지를 쥐고 있던 종호가 앉아있었다. 종호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이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놀란 마음에 눈물과 콧물이 계속 흘러나왔던 것 같았다. 나를 보자마자 놀란 종호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아! 으아앙!”
신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달려가 아이를 덥석 안았다. 땀 냄새와 흙먼지, 그리고 아이 특유의 젖비린내가 훅 끼쳤다. 가슴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안도감이 밀려와 눈물이 쏟아졌다.
“종호야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어디 갔었어 이놈아!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데….”
순경이 다가와 등을 토닥였다. 어떤 할머니께서 시장 골목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해 데려다주셨다고 했다. 종호를 꼭 안고 파출소를 나서자 붉은 노을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빨리 집에 가서 배고파 울고 있을 소연이에게 젖을 물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시어머니의 꾸중이 들렸다.
“어미야, 어디를 쏘다니다 이제 들어오는 거냐! 시아버지 배고파 돌아가시겠다. 어서 식사 챙겨 드려라!”
죄송하다며 부랴부랴 상을 차리는데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 정신이 있는 거야? 어디서 쓰레기 같은 옷 몇 장 산다고 애 없어진 줄도 모르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그 소리에 시어머니까지 가세했다
. “종호가 없어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시장에서 쓰레기 같은 옷 사느라 애를 잃어버려? 아이고, 저것도 어미라고… 형님네 좀 봐라. 애들 옷 깔끔하게 입혀 다니는 거 안 보이니? 어디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구는지, 쯧쯧.”
억장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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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아가방' 매장에 들어가 삼 남매의 옷을 가장 비싼 것으로 골랐다. 유모차와 장난감도 샀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이제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최고급 양품점에 들어가 내 옷도 골랐다. 치마며 정장이며 최고가로 골른 후, 사장님께 집으로 배달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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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왔습니다!”
집 마당에 최고급 물건들이 연달아 배달되었다. 마당에 한참 쌓이는 물건들을 보며 시어머니가 경악했다. 친정엄마까지 달려와 나를 나무랐다.
“금옥아, 너 미쳤니? 시어머니 앞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빨리 가서 반품해!”
“엄마,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도 형님처럼 멋지게 살겠다는데 왜 그래! 왜 맨날 나 보고만 사과하라고 해!”
나는 남편이 준 봉급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써버렸다.
당장 시부모님 병원비조차 남지 않았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서운함에 저지른 일이었지만, 막상 통장이 비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자고 일을 저질렀을까.
눈물이 났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밤새 노트를 찢어 전단지를 만들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주산뿐이었다.
[학생 모집: 주산 배우고 싶은 학생은 우리 집으로 오세요. 한 달 300원.]
냇가에서 빨래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소문을 냈다. 선착순 학생들에게 주려고 밤새 주산 주머니를 뜨개질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기도를 해도 소용없었다. 옷을 반품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계십니까? 혹시… 어른도 주산을 가르쳐 주나요?”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한 명으로 시작된 발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주산을 배우려는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장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서, 관공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 등등..... 어느샌가 집안은 주산을 배우러 온 아이들과 어른들로 북적였다. 덕분에 간절했던 부모님의 병원비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다. 종호를 잃어버렸던 그날의 슬픔과 놀란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 심정을 사랑으로 승화시키기로 했다. 눈앞에 주산을 배우기 위해 앉아있는 아이들을 종호가 생각하며 더 정성껏 가르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집안을 채우자 비로소 행복이 다시 차오르는 듯했다. 밤늦게 퇴근한 남편의 얼굴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울기만 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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