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남매가 어렸을 때였다.
생활비라도 벌어보기 위해 집에서 주산 학원을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은 집으로 모르는 형과 누나들이 오니 매우 즐거워했다. 둘째 현정과 막내 소연은 아직 두 살, 세 살이었기에 수업 시간이면 외할머니가 안방으로 데리고 가서 봐주셨다. 그런데 첫째 종호는 굳이 형, 누나들이 주산 배우는 방에만 있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종호는 수업 시간에 함께 있게 되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종호는 특별히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주산을 혼자 하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혼자 주산 알을 튕기며 노는 줄만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일정 시기가 지나자 주산을 너무 잘하는 것이었다. 엄마로서, 또 주산 선생님으로서 호기심이 생겼다.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는 주산 경시대회가 있는데, 종호를 한번 내보내 볼까? 그래, 한번 도전시켜 봐야겠다.’
그해 여름, 종호와 다른 학생들을 서울에서 열리는 주산 경시대회에 접수했다. 종호 나이 만 다섯 살이었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종호는 경시대회에서 형과 누나들을 다 제치고 대상을 받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6급 자격증까지 합격했다. 우리 집은 첫째 덕분에 갑자기 경사가 났다.
종호가 합격했다는 소식이 동네에 퍼지자 온 동네 아이들이 주산을 배우겠다고 우리 집으로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방 안에 가득 찼다. 당시 어린 종호가 자격증을 딴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했기에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의 노력을 알아주고 칭찬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자존감과 문제 해결 능력이 성장할 줄 알았다. 그러면 다음번에는 더 큰 자신감으로 도전할 용기를 얻으리라 생각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후 2시에 교육생들이 주산을 배우러 왔다. 그런데 갑자기 종호가 말했다.
“엄마! 나 주산 안 할래.”
“……!!!!!! 종호야, 주산하면서 가장 재미없는 순간은 언제야? 누나랑 형들이랑 주산 공부하면 어떤 기분이 들었어?”
“엄마, 나 안 할래.”
“그래, 울지 말고 말해봐. 종호는 이제 말 잘하잖아. 어서 말해봐.”
“으아앙, 으앙!”
“그래, 울지 마. 종호가 주산 때문에 정말 마음이 많이 상했나 보구나! 울음이 터질 만큼 싫었다니 엄마가 우리 종호 마음을 더 일찍 알아주지 못해 미안해. 솔직하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는 종호가 즐겁게 공부하는 줄만 알았네. 그럼 나중에 종호가 하고 싶을 때 하면 돼. 울음 뚝, 알았지?”
“싫어, 싫어! 안 할래!”
“그럼 엄마하고 놀까? 자, 이리 와.”
종호는 내 품 안으로 달려와 내 어깨를 감싸며 씽긋 웃었다.
“아이고 예뻐라. 종호야, 이렇게 있으니 좋아?”
“네, 좋아요.”
“종호야, 딱 10분만 하는 건 어때?”
“싫어, 싫어요! 안 해요! 엄마랑 놀래!”
종호는 내 손을 끌며 공부방 밖으로 나가자고 떼를 쓰는 것이었다.
“종호야, 누나랑 형들 수업을 해야 해. 이모들이랑 삼촌들도 주산 공부 하려고 멀리서 왔잖아.”
“싫어, 싫어! 엄마랑 놀래! 으아앙, 으아앙!”
“김종호, 지금은 공부하는 시간이야. 시계가 여기까지 오면 그때는 온전히 종호 엄마가 되어줄게. 자, 안방으로 건너가세요.”
“으아앙, 으아앙!”
“외할머니, 종호 좀 데려가 줄래요?”
“아이고, 훌륭한 양반이 울면 안 되지. 자, 할머니 등에 어부바하자. 할머니가 업어줄게.”
종호는 할머니 등에 업혀서도 고개를 뒤로 젖히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간식을 주어도, 책을 읽어주어도 싫다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종호는 울다 울다 할머니 등에서 눈물과 콧물이 뺨에 말라붙은 채 잠이 들었다.
수업을 끝내고 종호를 안아 눕히려는데, 아이의 온몸이 불덩이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종호 열이 이렇게 나는데 업고만 계셨어요?”
“어미가 몰랐다. 종호가 계속 우니까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어서 병원 가봐야지. 아니면 내가 약국 가서 해열제라도 사 올까?”
“엄마, 나 종호 업고 병원 다녀올 테니 시어머니, 시아버님 식사 좀 부탁해요. 엄마 미안해.”
종호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원장님을 불렀다.
“원장님! 애가 열이 엄청 높아요. 오전부터 칭얼대고 울더니만…. 괜찮겠죠? 흑흑.”
흐느끼는 나에게 간호사님이 화장지를 내밀었다.
“사모님, 여기 병원이에요. 괜찮아요, 울지 마세요.”
“우리 종호 정말 괜찮은 거죠?”
“그러고 말고요.”
간호사님은 시원한 물 한 컵을 권하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고맙다면서도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원장님이 처방을 내렸다.
“어머니, 아이는 약 먹고 자고 나면 괜찮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집에 가서 옷을 다 벗기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세요. 선풍기 바람은 해롭습니다. 아이가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느끼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정서적인 안정이 필요합니다.”
병원을 나오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종호가 주산 수업을 저토록 싫어하는데 어떡하나, 학원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대문 밖에서는 친정엄마가 담배를 피우며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는 나를 보자 급하게 담뱃불을 끄시다가 손등에 불똥이 튀었는지 “아이 뜨거워!” 소리를 지르면서도 종호 걱정부터 하셨다.
“종호 괜찮다더냐? 왜 그렇다더냐?”
“엄마, 손등 괜찮아요? 종호는 괜찮대요. 빨리 들어오세요, 약 발라드릴게. 손에 물 묻히지 마시고요.”
“오냐, 알았다. 어서 밥 먹어라. 하루 종일 굶고, 쯧쯧.”
“엄마도 식사하셨어요? 같이 먹어요. 시부모님 식사는요?” “워낙 소식하시니 반찬이 줄지 않더라.”
“엄마 미안해, 수고했어.”
나는 엄마의 수저 위에 고등어를 올려드렸다. 엄마는 사랑스럽고도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 표정을 보니 다시 눈물이 났다. 엄마가 수건을 주며 핀잔을 주셨다.
“밥 먹다 울면 복 달아난다. 어서 닦고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알았어, 엄마도 많이 먹어. 오늘 힘들었지?”
“금옥아, 나는 괜찮다. 금옥아, 돈 벌려하지 말고 애들 키워라.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 어린것이 엄마랑 함께 있고 싶어서 저렇게 아픈 게야. 애들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같이 놀아줘야 성격이 좋아진다. 애미 말 허투루 듣지 말고 잘 생각해 봐라. 종호가 저렇게 아픈 건 엄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일 게다. 속이 깊어서 말을 못 하고 아픈 거야. 학원을 그만두었으면 한다. 애가 중요하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이가 엄마를 부를 때 바로 대답하고 안아주는 것이다.”
그때는 주산 학원이 자리를 잡아 남편의 월급보다 수입이 더 좋았다. 경제적으로만 보자면 학원을 정리하는 것이 결코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기꺼이 그 길을 내려놓았다.
아이의 유년기는 부모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뜨거웠던 열병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 자란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학원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공원을 뛰놀며 보낸 시간들이 내 생애 가장 값진 투자가 아니었나 싶다. 비둘기를 쫓고 잠자리를 잡으며 함께 웃던 그 소박한 행복이 지금의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만들었으리라 믿는다.
일흔이 된 지금도 가끔 장롱 속 뜨개질감을 만지다 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묻어있던 그해 여름의 거실 풍경이 아스라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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