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책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친구

by 금옥


태양이 가장 뜨거운 8월, 우리는 이사를 했다.


남편이 고창군 심원면으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린 종호와 현정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할 나이인데, 인적 드문 산골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사한 집은 바닷가 근처 숲 속에 위치한 심원파출소 앞에 있는 건물이었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고 비워둔 건물로 첫눈에도 무척이나 낡아 보였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기에 집 입구부터 내 키보다 큰 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풀이 키가 너무도 크게 자랐기 때문에 앞을 가려 관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먼발치에서 기와지붕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그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우리 가족은 풀숲을 헤치며 관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종호가 처음 만나는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인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여기 호랑이도 살아요? 무서워요.”

“아니, 여긴 호랑이가 살 수 없어. 앞으로 종호랑 아빠랑 엄마랑 현정이랑 같이 살 곳이란다.”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왜 함께 안 살아요?”

“이곳은 병원이 너무 멀어서 그래. 다음에 모시고 올 거야.”

“그럼 병원 만들면 되잖아요.”

“그래, 종호가 커서 의사가 되어 여기에 병원 만들자. 알았지?”

“네!”


종호는 조부모님들과 함께 오지 못한 것이 서운한지 계속 질문을 던졌다.


폐허나 다름없던 집이라 천장에 큰 구멍이 나있었다. 지난여름 태풍에 지붕 일부가 날아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더운 여름이라 수리가 급하지는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자기로 했다. 방에 누우니 천장 너머로 하늘이 보였고, 밤에는 별이 보였다. 밤하늘 위에 떠있는 별이 천장으로 쏟아질듯했다. 종호가 소리쳤다.


“엄마, 별이다! 우와, 별이 정말 많이 있어요.”

“정말 별이 많이 떠 있네.”


종호는 방 안에서 별이 보이는 게 신기한지 한참을 조잘거리다 잠이 들었다.



이사 와서 첫 아침을 맞이했다.


아이들은 환해진 아침에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종호는 마당에 나와 기분이 좋은지 풀숲을 들락날락했다. 현정이도 오빠처럼 뛰어다니고 싶은지 아장아장 걷다 마당에서 넘어지곤 했다. 그러고는 이내 스스로 일어나 다시 걷기에 도전했다. 아이들은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강아지처럼 즐거워했다. 우선 입구에 내 키보다 큰 풀을 베는 일이 가장 급했다. 낫을 들고 풀을 베고 있는데 종호가 외쳤다.


“엄마! 여기 뱀 있어요!”

“종호야, 어디 있어? 빨리 엄마한테 와, 어서!”


종호가 풀을 헤치며 뛰어나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뱀이다.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남편이 근무하는 파출소로 달려갔다.


“종호 아빠! 종호가 풀 속에 뱀이 있대요. 빨리 어떻게 좀 해봐요!”

“이 사람아, 여기에 무슨 뱀이 있어. 걱정 말고 어서 집에 가 있어. 사무실에 오지 말고.”


남편은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이내 방위병 두 명을 데리고 와서 풀숲을 샅샅이 뒤졌다. 내가 가리키는 곳을 한참 헤매던 방위병들이 말했다.


“사모님, 뱀은 없는데요.”


결국 방위병들은 뱀이 없다며 파출소로 돌아가 버렸다. 그때 내 등에 업혀 있던 현정이가 옹알이를 시작했다.


“뱀~ 어... 아! 마... 뱀~~!”


늘 “아바, 아바” 하며 아빠만 찾던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를 부르다니! 나는 현정이가 처음 뱀을 말하고 나를 부른 것이 너무 기뻐 종호에게 말했다.


“종호야! 현정이가 뱀이라고 말했어!”


종호는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와 현정이 손을 잡고 “으아! 뱀이다!” 하며 놀렸다. 현정이는 오빠의 장난이 우스운지 울지도 않고 깔깔대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겁에 질려 도저히 풀을 벨 수가 없었다. 결국 현정이를 업고 종호 손을 잡은 채 공중전화가 있는 큰길로 나왔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여기 풀이 내 키보다 크고 온통 풀밭이야. 뱀도 있는 것 같아. 무서워서 도저히 못 하겠어. 엄마, 아버지랑 같이 와서 풀 좀 베어주면 안 될까?”

“알았다, 그러마.”


엄마는 내가 뱀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셨다. 곧 엄마와 아버지가 장화까지 사 들고 내려오셨다. 나는 장화를 신고 부모님 곁에서 함께 풀을 베었다. 풀을 다 벨 때까지 뱀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종호가 어제 보았던 ‘뱀’이라며 나무막대기에 무언가를 얹어 왔다.


“엄마, 뱀이다!”


종호가 보여준 것은 아주 커다란 지렁이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너는 애미가 되어서 종호만도 못하냐.”


엄마는 핀잔을 주시면서도 아버지와 함께 마당의 풀을 죄다 뽑아주셨다. 그러고는 파를 심고 상추 씨앗까지 뿌려주셨다. 곁에서 거들던 종호가 허리를 짚으며 말했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내 손자가 일을 많이 해서 허리가 아프구나. 이리 오너라, 할머니가 호호해주마.”




종호는 신이 나서 깔깔대며 할머니 주변을 맴돌았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폐허 같던 집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한 마디씩 거들었다.


“여기에 집이 있었어?”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왔나 보네. 애들 뛰어노는 것 좀 보소. 참 귀엽지 않나?”


아주머니들은 신기한 듯 구경하시더니, 이내 검은 봉투를 들고 다시 찾아오셨다.


“새댁, 애기들 주라고 아이스크림이랑 과자 좀 사 왔어. 여기서 쭉 살 거여?”

“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것도 받아요. 아침에 바다에 가서 캐온 조개인데, 삶아 먹어봐요.”


시골 인심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친절하셨다. 하루 해가 기웃거릴 즈음, 마흔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계세요? 농협 앞에 사는 인순이 엄마입니다. 애들이 있다고 해서 왔어요. 요즘 애들 보기가 귀해서 책이 통 안 팔리네요. 유치원 보낼 필요 없어요. 엄마가 책만 잘 읽어주어도 서울대 가요, 서울대! 한 세트 사시면 장난감도 선물로 드릴게.”


종호가 아직 어려 책 사줄 생각은 못 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의 덕담에 마음이 움직였다.


“아주머니, 책 주세요! 우리 아이들 정말 서울대 가는 거죠? 하하하.”

“그러믄요, 가고 말고요!”


나는 남편과 상의도 없이 60만 원이나 하는 거금을 들여 책을 덜컥 샀다. 일을 저질러 놓고도 마음 한구석이 뿌듯했다.


얼마 전, 종호가 자기 싫다고 떼를 쓰며 울던 날이 있었다. 퇴근한 남편이 종호 방으로 들어가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종호야, 아빠랑 밖에 나가볼까? 저기 봐, 해님도 자러 갔지? 벌레들도 모두 자러 갔네. 우리도 이제 코 자자.”

“아빠, 개구리는 안 자고 울잖아요.”

“그럼 종호는 청개구리가 될까? 아니면 해님과 달님처럼 예쁘게 자고 내일 더 재미있게 놀까?”

“나 청개구리 안 할래. 잘게요.”


나와 기질이 달랐던 남편은 언제나 종호의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든든한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준 것이다. 마음이 풀린 종호는 별이 보이는 방에 서서 말했다.


“엄마, 나 청개구리 안 할래. 별 보며 잘래.”

“그래, 엄마가 동화책 읽어줄 테니 들으면서 자자.”


종호와 현정이는 하루 종일 즐겁게 뛰어놀던 기억을 품고 잠이 들었다. 우리가 터를 잡은 그 바닷가에는 그날 밤 파란 지붕 뒤로 파도가 일렁거렸고, 까만 밤하늘에는 하얀 별이 눈이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메인화면: pinterst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아이는 부모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