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꿈에 그리던, 구글에서의 6개월

일보다 나를 지키기: 구글이 일깨워준 ‘자기 관리’의 가치

by Youhan Kim


LG와 보쉬 같은 대기업 인턴십을 거쳐, 간절히 꿈꾸던 구글에 발을 디딘 순간 나는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IT기업의 업무 환경이 얼마나 치열할지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내가 예상했던 ‘극한 경쟁’ 분위기와는 다른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구글은 성과를 중시하면서도, 직원이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결코 뒤로 밀리지 않는 회사라는 사실이었다.


구글에 들어오기 전, 나는 나름대로 “이 회사라면 뭐든 일 중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조울증이 있는 내가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오피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느낀 건, 사무실 레이아웃이나 휴식 공간 하나까지도 ‘사람’을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회의실마다 과도한 스트레스 없이 토론이 가능하도록 조도가 조정돼 있고, 의자나 테이블 배치도 협업과 이동이 용이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누가 “이제 쉬세요”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잠시 의자에서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거나, 편한 소파가 있는 라운지 코너에 가서 노트북을 펼쳐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구글의 업무 강도 자체가 낮은 건 전혀 아니었다. 매일 새롭게 쏟아지는 마케팅 데이터와 광고 효율 보고서, 팀 프로젝트 일정, 그리고 철저한 성과 평가가 명확히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이 회사가 인정해준다는 점이 내게 큰 힘이 됐다. 장애나 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어디서 회복할 틈이 없으면 빠르게 지치게 된다. 그런데 구글에서는 대체로 “이 작업만 제때 끝나면,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스케줄링해도 된다”는 기조가 강했고, 그 덕분에 가끔 다운되거나 힘들 때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어디서든 일 외의 대화를 허용하는 분위기였다. 예를 들어, 회사 내부 카페테리아나 라운지에 앉아 동료와 수다를 떨며 “요즘 컨디션이 좀 안 좋네”라고 말하면, “그래? 그럼 이 프로젝트에서 니가 맡았던 파트는 좀 나눠서 처리할까?”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함께 방안을 찾는다. 이게 단순히 개인 대 개인의 배려라기보다, ‘구글’이라는 곳이 워라밸과 사람의 심적 안정을 중요하게 본다는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크게 떠벌리지 않아도, 서로가 조그마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애쓸 수 있는 환경이랄까.


언젠가 업무가 몰아쳤을 때, 수많은 데이터 리포트를 분석해야 하는 날이 있었다. 내 조울증 특성상,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치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이럴 땐 과거 같으면 ‘나 왜 이리 못하나’ 자책하며 무작정 붙들고 있었을 텐데, 여기서는 “잠깐 산책하고 와야겠어” 하고 밖으로 나갔다 올 수 있었다. 팀 리더도 “그래, 다녀와. 필요한 만큼 조금 걸으면 머리가 환기되지 않겠어?”라고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짧은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면, 다시 의자에 앉아보고서 자료를 검토할 때 훨씬 수월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건, 회사가 허용하는 최소한의 자유가 결국 내 효율을 높여준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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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제공하는 다양한 사내 프로그램 중엔 동호회나 직원 모임도 꽤 활발했는데, 사실 이것도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하나의 장치처럼 보였다. “내가 속한 동호회 활동에 참여해도 되나?”라고 처음엔 망설였지만, 오히려 팀 동료들은 “그런 활동이 너에게 영감을 주고 휴식을 주면, 결국 우리 프로젝트에도 좋은 영향을 줄 거야”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성소수자 직원 모임 등에 참여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무겁지 않았다. 이전 회사들에서라면 ‘이 시간에 그렇게 해도 되나?’ 하고 눈치를 봤을 텐데, 여기선 “업무와 휴식은 상호 보완적”이라는 공식이 자연스러웠다.


장애 관점에서 보면, 이건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장애가 있다면 종종 추가적인 휴식이나 일정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 구글에서는 그런 필요를 드러내도 “이해한다, 함께 방법을 찾자”고 반응하는 문화가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또, “이 사람이 100% 매일 에너지가 같지 않아도, 그날그날 컨디션에 맞춰 재조정하면 문제될 것 없다”라는 생각이 공유되어 있다는 것도 컸다. 그러니 굳이 내 장애를 숨기지 않고, 힘들 땐 솔직히 말할 수 있었다.


결국 이 회사에서 6개월 정도 일하는 동안,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뛰어난 뇌나 체력을 가진 사람도 ‘번아웃’은 무섭게 찾아오니까. 구글이라는 곳은 그걸 구조적으로 막아주려는 방식을 발전시켜온 느낌이었다. 팀 간 협업 툴이라든가, 휴게 공간, 자율적 근무 시간 등이 모두 “사람이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심적으로 여유가 생긴 상태’가 계속 유지되다 보니, 내 조울증도 상대적으로 악화되지 않고 컨트롤이 가능했다. 내 입장에선 “회사에 와서 일이 조금 힘들더라도, 무조건 나를 희생해야 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 새롭기도 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그건 구글이라는 대단한 회사니까 가능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모두가 구글처럼 인프라를 갖추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경험해본 바로, “마음 편히 쉬는 시간이 보장되는 문화는 장애인든 비장애인이든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걸 느꼈다. 더구나 단지 오락시설이나 식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팀원들 간에 “너 괜찮아?” 하고 묻고, 필요하면 일정이나 역할을 그때그때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함이 더 본질적이었다.


아마 이 6개월 동안 내가 가장 크게 변한 건, 스스로를 좀 더 믿게 됐다는 점이다. 몸이 안 좋아도, 기분이 꺾여도, 회사가 마련해준 휴식이나 자율성 속에서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고, 다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면, 굳이 ‘장애를 짐’처럼 여기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왜 이런 회사들은 계속해서 여유로워 보여도 최고의 성과를 내는 걸까?” 궁금했는데, 직접 체험해보니 결론은 간단했다. “사람을 혹사시키지 않고, 재충전할 여지를 주니까” 오히려 충성도와 창의력이 폭발한다는 사실이다.


인생에서 어떤 목표를 이루려면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노력 뒤에 “나를 케어”할 시간도 필요하다. 만약 이 과정을 무시하면 번아웃이 오고, 결국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구글에서 잠시 지내며 배운 건 “내일 또 일할 수 있도록 오늘의 체력을 아낀다”는 사고방식이 결코 게으름이나 태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투자라는 것이었다.




짧게 보면 회사 입장에서도 “휴식과 자율성을 주면 직원이 덜 일하는 거 아닌가?”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길게 보면 그게 꾸준히 몰입하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 내 경우에도, 어떤 날은 기분이 올라서 밤늦게까지 일하게 되면, 그 다음날은 아침에 살짝 늦게 출근해 몸을 돌볼 수 있었다. 그 주기가 잘 관리되면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을 일정 안에 안정적으로 해낸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리듬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건, 회사가 존중해주는지가 가장 큰 변수였다.






결론적으로, “일보다 나를 지키기: 구글이 가르쳐준 ‘자기 관리’의 가치”라는 이 이야기에서 전하고 싶은 건 간단하다. 누구나 바쁘고 일이 중요하지만,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결국 ‘일’도 계속 못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글을 통해 알게 된 건, 이걸 단순 구호가 아니라 실제 시스템과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쉼이 필요하면 떳떳이 쉬고, 기분이 올라오면 한껏 몰입해서 달리고—그 과정을 상사가 통제하기보다 스스로 조정할 수 있게끔 해주는 조직이 결국 더 강하다. 나 자신에겐, 이 6개월이 “장애를 가진 나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오롯이 “업무보다 중요한 것들”에 충실해야 한다는 구글식 인식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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