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나의 꿈, 작가
몇 년이고 멈춰 있지만 뭔가 더 내용이 풍성해지길 기다리고 있는 듯한, 나에게는 그런 느낌을 주는 짧은 글이 한 편 있다.
물 안에 잠겨있는 것도, 위에 떠 있는 것도 아니다. 부유하는 것도 아니다.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은 분명 액체의 기운을 띤 공기인 것이다. 살아있다고 말하기엔 이곳의 고요와 부동의 자세가 나를 불안으로 이끌고, 가끔 들려오는 소리가 소음이라고 말하기엔 아지랑이인 것만 같다. 물에 번지는 피처럼, 여러 번의 울림 끝에 잠기는 돌처럼...
그것은 나의 눈썹을 움직이게 만든 유일한 진동이었다.
이 글을 썼던 당시의 나는 신비로운 감각을 전해주는 수중 사진들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분명 사진 속 저 아이의 신발 바닥에 닿는 물의 촉감은 찰랑- 찰랑- 가벼운 캉캉 춤을 추듯 발랄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물속에서의 아이의 몸짓은 마냥 빠르고 자유롭지만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저 아이가 수중의 공간을 좋아한다면, 아마 그것은 태초 전 엄마 뱃속의 양수로부터 둘러싸여 보호받던 그 따뜻한 느낌이 본인도 모르게 전신에 남아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에서부터 나의 글은 시작되었다.
독자 앞에 탄생한 한 편의 글이라는 것은 애초에 하나의 정답으로만 해석이 되는 것은 아니며, 언제든지 그리고 누구든지 글을 본인만의 방식과 생각대로 해석할 수 있는 자유와 여지는 있다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무언가 앞서 소개한 묘사글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마치 태아처럼) 스토리와 내 내면의 원동력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설명을 덧붙이고 싶었다. 이제 텍스트에 대한 나머지 해설은 여러분의 몫.
미래의 엄마와 아빠가 될 두 사람의 DNA를 절반씩 물려받아 하나의 세포를 형성하고, 도통 알 수 없는 물속의 공간 속에서 떠다니며 태반을 통해 내려오는 영양소들을 받아, 그 세포는 비로소 아기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런 모든 일련의 탄생 과정이 마치 글 쓰는 작업과 같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질문을 던져본다. 바깥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여러 다양한 생각들과 그 사이사이들에서 부딪치는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들이 모여 작은 소재와 주제가 만들어지고, 어디로 또 무슨 내용들로 뻗어 나가게 될지 모를 막막한 백지 앞에서 작가들은 타인의 글들을 읽으며 자양분을 얻으며, 그 백지는 비로소 한 편의 고유한 사상이 담긴 텍스트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매번 이러한 형성과 성장, 창조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글쓰기 과정을 브런치를 통해 다시금 도전해 보려 한다. 양수 속의 태아를 묘사한 저 글이 마치 미래의 내가 내 몸으로 직접 태아를 품어보길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지듯, 내 브런치 공간의 비어있는 시간들이 마치 미래의 내가 오롯이 글쓰기에 전념하는 시간들로 가득 채워지길 기다리는 것처럼, 암묵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으로 나에게 전달되고 있다.
프랑스어 강사로 활동 중인 본인이 일하고 있는 학원에서 만든 달력의 9월 표지에 적혀 있는 프랑스어 문구가 있다.
Le bonheur est parfois caché dans l’inconnu.
번역하자면 “때때로 행복은 미지 속에 숨어 있다” 정도로 해 볼 수 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들은 여럿 있지만, 아직 정확한 주제가 좁혀지지 않은, 그 미지의 상태를, 여전히 불안하지만 동시에 확신 있는 태도로 추구해 나가려는 나의 글쓰기 태도에서부터 나만의 행복이 만들어지리라. 어차피 우리네 삶이 태초의 무(無)에서부터 유(有)를 각자의 순간순간의 결정들로 고안해 나가는 과정이라면, 나는 그 창조의 과정을 글쓰기라는 형태로 빚어나가 보려는 것이리라.
뜨개질 코바늘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넣어가듯, 부모가 딸의 머리를 한 땀 한 땀 땋아주듯, 브런치에서 내 자아와 내면의 실들을 한 올 한 올 풍부하게 엮어내려간다면, 이 또한 내 개인적인 성찰과 성장을 넘어, 더 나아가 내 글을 읽어 내려갈 불특정 독자들의 마음 역시 몰캉몰캉 부드러워지는 때가 올 수 있기를, 이 글을 통해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