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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읍내 오일장에서 엄마와 함께

사랑하는 엄마

by 낫으로 깎은 연필



한때 인구 1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장흥의 인구는 조금씩 줄어 내가 10살, 엄마 35살이던 1983년만 해도 10만 명의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는 날 데리고 읍내 오일장에 갔다. 낡은 파라솔과 차양막 사이로 햇볕이 채우고 좁은 시장길을 사람들은 앞서지 못하고 따라가고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손수레엔 흥겨운 노래가 들썩 거리고, 작은 생필품을 실은 좌판에선 나프탈렌 냄새가 도시의 향기처럼 내 기분을 달아 올렸다. 잔잔한 경음악을 크게 튼, 다리를 잃은 상이용사 아저씨는 다리를 고무 튜브로 감싼 채 시장 바닥을 느리게 가고 있다.


엄마가 아주 가끔 사 오는 덴푸라(일본식 야채튀김) 가게를 지날 때는 튀김 냄새에 꼼짝 할 수 없었다. 검은 솥에 선 부글부글 끓는 튀김은, 보는 것만으로 내 다리를 꽁꽁 묶었다. 엄마는 무엇이 급한지 빨리 안 온다고 재촉했고. 나는 굉장한 아쉬움을 누르며 시장 깊숙이 들어갔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엄마는 아는 사람도 많았다. 엄마의 친정이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서 그런지 외갓집 동네 사람들과 몇몇 시장 사람들도 내게 인사시켰다.

엄마는 나를 큰아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몇 살이냐고 묻거나 몇 학년이냐고 한결같이 물어왔지만, 나는 3학년과 10살이라고 답하며 어색한 인사를 여러 번 했다.

작은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옷가게였다. 옷을 사준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나는 옷들에 관심은 없었다. 다만 시장 구경이 더 재미있고, 아까 지나온 튀김이 절실했지만 이제 와 옷이 필요 없으니 튀김 사달라고 할 상황도 아니었다.

옷을 고르는 엄마는 까다로웠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여기저기 온 동네 뒹굴고 다녀야 하는 나. 예쁘고 좋은 옷이 아닌 큼직하며 때도 잘 안 타고 디자인까지 엄마 마음에 들어야 했다.

옷값을 물어 오는 엄마에게 가게 주인은

“만 팔천 원입니다.”

“만 원에 합시다.”

마치, 옷가게 주인의 마진율 극대화를 노린 스트라이크가 들어오자, 엄마는 내가 호구로 보이냐며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힘껏 받아쳐 버렸다. 공은 높이 날아올랐다.

그때까지 난 얌전하게 하자는 대로 있었지만, “만원”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만 팔천 원인데 만 원에 한다니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말해 버린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졌지만, 곧바로 창피한 생각도 확 들었다.

만 원에 산다는 엄마의 반격에 옷가게 주인아주머니는 표정이 굳어지며 밑지는 장사는 안된다며 그렇게 팔 수 없다고 말했고, 엄마는 그렇게 해달라고 강요했다.

나를 보는 엄마의 눈은 반짝였고, 내가 보는 옷가게 주인아주머니의 눈은 어두웠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마주치는 세 사람의 눈 속에 저마다 손익을 계산하고 있을 때, 옷가게 아주머니는 삼천 원 빼준다고 하였고 엄마는 무슨 소리냐며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누가 주인인지 손님인지 모를 정도로 엄마는 당당했다.

이때 엄마의 스킬 하나가 나왔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나갈 듯이 잡아당기며 미세기 문을

반쯤 열면서 만원에 안된다면 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나는 정말 나가는 줄 알고 기뻐했지만,’

그러면서도 살려던 옷을 들치며

“만원이면 충분한데 만 원에 합시다.”라고 또 말했다. 나는 속으로 절대 안 되는 걸 왜 하지? 살 돈이 있으면서 그러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마주하는 실랑이 속에 내가 곧 4학년에 올라갈 거라는 말과 점점 키가 커진다는 말도 들렸다. 두 사람의 말들 속에 옷가게 아주머니는 얌전히 있는 나를 보다가. 차분한 말로 이번만 해준다고 했다. 이 사건은 엄마의 승리로 끝났지만 거의 반값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심어 놔 버렸다.


2024년 장흥 인구는 3만 5천 명으로 줄고 나 53살, 엄마 77살이 되었다. 난 지금도 옷이나 물건을 살 때는 제값을 주고 산다는 것이 항상 아깝게 느껴지지만, 깎을 만한 만만한 옷가게 주인은 본 적이 없다.

엄마가 좀 막무가내인 건 사실이지만 실제 효과는 항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처음 가는 옷가게에서 거의 반값으로 후려치는 강인한 정신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마 어린 내가 있어서일까?

일흔일곱으로 쇠약해져 버린 엄마에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을, 엄마가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도 쇼핑이 싫은 만큼 입이 안 떨어진다. 주저 없이 만 원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서른다섯 엄마가 그립다. 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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