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김치전 하기
손질된 오징어 한마리가 몇 달째 냉동실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진공 포장으로 단단히 포장했기 때문에 앞으로 한두 달을 더 버틸 수 있지만, 자리를 밀치며 들어오는 냉동 만두와 육원전은 양옆에서 오징어 자리를 뺏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오징어는 납작 한데, 해도 너무한 거 같다.
출근을 한 우리 아가씨는 낮에는 집에 없고 밤일을 하는 나는 낮에 집에 있다. 같이 사용하는 집, 냉장고 냉동실에는 오징어가 복잡한 자리를 버티고 있다.
무조건 먹든 안 먹든 비축을 잘하는 우리 아가씨는 일단 쟁여 놔야 마음이 안정된단다. 나는 오늘도 터질 듯 꽉 차 있는 냉장고 문을 열고 숨 막혀 더 납작해져 버린 오징어를 안 되겠다 싶어 꺼냈다. 뭐든 만들어 버려야겠다고.
냉장고 아래 칸을 열어 보고 난 후, 나는 김치, 당근, 오징어, 고추를 넣은 부침개를 하기로 했다. 김치전은 나도 우리 아가씨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냉장실에는 미처 다 먹지 못한 잘 익은 김치가 많이 있다. 시골에서 보내준 묵은김치도 있고 지인들이 김치 담갔다고 작은 통으로 준 것들 등등 해서 김치도 든든하게 냉장고를 가득 채우는데 일조 하고있다.
당근을 씻고 채를 치고 고추도 반을 갈라 속을 빼내 어슷 썰고 나서, 오징어를 해동하고 여러 번 씻어 물기를 뺀 후 손에 소금을 묻혀 껍데기를 벗겼다. 귀도 벗기고 다리도 벗겼다. 귀와 다리는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았지만 여러 번 소금을 묻혀 가며 벗겼다. 껍질은 반드시 벗기란 법은 없지만 부드러운 오징어의 식감을 위해 번거롭지만 끈질기게 나는 벗겼다.
껍질을 벗진 오징어를 세로로 반을 갈라 채 썰고 다리도 작게 썰어 그릇에 담았다. 이제 전을 부칠 밀가루 반죽을 했다. 집에는 부침가루가 있다. 또 우리 아가씨가 집에서 카스텔라 빵을 만든다고 사놓은 박력분 밀가루가 남아 있어 부침가루와 같이 섞어 사용하기로 했다.
김치가 들어가기에 소금간은 하지 않을 것이고, 두 종류의 밀가루를 섞은 그릇에 물을 넣고 잘 휘저어 약간 묽은 농도로 반죽을 하고, 준비된 재료 오징어, 김치, 당근, 고추를 넣었다.
달아오른 프라이팬에 올리브기름을 한 숟가락을 적시고 작은 국자로 팬에 3개의 작은 전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튀겨지는 고소한 냄새가 일어나고, 팬에 반죽을 펼칠 때는 촤아 소리가 부서지는 파도처럼 들린다. 또 뒤집어 누를 때는 치익치익 거리는 소리는 예전 엄마의 말처럼 잘 익고 있다는 것으로 들렸다.
뒤집게를 사용하지 않고 팬을 뒤집는 내 손이 자연스럽다. 오징어 김치전이 익어가는 고소함이 옆집을 건너 그 너머까지간다. 나는 부쳐진 전 하나를 맛을 본다. 호호 불어가며 먹는 맛에 감탄하면서 즐거운 요리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헉, 이게 뭐야. 눈이 멈춘 싱크대 바닥에 오징어 귀가 있다. 아참 이걸 어쩌지 하고 고민 할 생각도 없이 순간 게으른 생각이 나를 결정한다. 오징어 귀를 잡고 껍데기를 벗길때를 생각하면 아까운 미련도 있지만, 다시 손에 오징어를 묻히려니 안 되겠다 싶어 쓰레기 봉지에 넣어버렸다.
식감이 예민한 같이 사는 여자 우리 아가씨는 행여 오징어 귀가 없냐고 물을까 봐 나는 나름 계산 해 두었다. 다시 씻어 넣을 걸 그랬나 하고 아쉬운 생각도, 아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긴 생각할 필요 없이 편의대로 버렸다. 잘게 썰어서 알 수 없을 거라고 믿으면서.
오후 5시가 다가오자 나는 출근을 준비했다. 예쁘게 접시에 담아놓은 오징어김치부침개는 우리 아가씨가 맛있게 먹으라고 헐렁하게 랩을 씌웠다.
오징어부침개엔 오징어 귀는 원래부터 없었다고 나는 믿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냉동실속에 갇혀 있던 납작한 오징어를 빼낸 걸로 만족하며 나는 조용히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