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는 내 친구
초가을 오후 집에 가는 길은 멀기만 하였다
들녘의 벼들은 마지막 수업을 받고 있다
그 교실을 가로지르는 돌투성이 길을 걷다 보면
농수로가 길 밑으로 가고
배부른 둔덕 아래에는
잊을 수 없는 그리운 친구가 살고 있다
볼록 렌즈를 낀 해는 뜨겁게 수업 중이었다
벼도 나도 수업에 깊이 빠져 버렸다
순간? 무언가 빠르게 지나는 족제비 한 마리
그 첫인사는
내 가슴에 차가운 세로토닌을 안기고 휙 사라졌다
한 해 한번 보기도 힘들 정도로 우리는 바빴다
그래도 보기는 보았다 잊지 않으려 한 번씩 보았다
벼들의 마지막 졸업이 찾아오고
나는 그리움이 뭔지 모른 체 길을 돌렸다
있었던 시간은 기억되지 않고, 나를 15cm 나 늘려버렸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무심코 지나던 그 배부른 둔덕에서 분명히 보았다
그때처럼 사라졌지만 놀랍게 반가웠다
순간 또 스쳐 가는 것이 있다
찾아주지 못한 미안함이 내 가슴을 뜨겁게 흔들었다
회색 족제비였다 가족이거나 베이지의 새끼일지도 모른다
가는 내내 즐거웠다 실실 웃었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이 부끄러웠다
참을수록 입이 더 벌어졌다
걸렸던 달력은 뜯기고
신년의 뉴스는 길한 해라는 말만 수없이 들었다
난 이제 가지 않을 거야 너 없는 그 길을, 저 타버린 그 길을
넌 날 알지 못해도 난 너를 기억해 그것이 단 몇 번이었더라도
널 그리워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