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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의 휴가와 바꾼 2종 소형 면허

설레는 발걸음

by 낫으로 깎은 연필


영화 속 한 장면, 위기의 순간 멋지게 탈출해 달리는 오토바이를 본 적이 있는가. 중저음의 묵직함을 쿵쾅거리며 유유히 지나는 육중한 오토바이는 남자라면 한 번쯤 동경하고픈 최상급 기계 중 하나이다. 진정한 자유란, 이 기계가 해결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나를 잡아 흔들었다.


1,000cc가 오토바이에서 울리는 낮지만 두꺼운 소리, 일부는 머플러에 구멍을 뚫어 소리를 억지로 키우는 작업을 한다고 하나, 나는 그런 건 싫다. 바람을 맞으며 유유히 달리는 자유로운 모습이 나는 좋다.
수십 종의 오토바이가 있다. 도시, 스포츠, 크루저형과 그리고 등급별로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제품과 각 회사별로 인지도, 브랜드 선호도에 따라 가격과 성능은 다르게 결정된다.
나는 지금 당장 이 오토바이가 필요치 않다. 나중에 아니 먼 훗날 여유를 위해 준비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자격부터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2016년 여름 찌는듯한 더위에 나는 여름휴가를 영등포에 있는 운전면허학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스물둘에 취득한 운전면허증이 있어 2종 소형 응시에는 학과 시험이 면제되고, 이론교육 3시간과 기능 10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회색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넓은 연습장 바닥에는 곡선과 좁은 코스, 장애물 코스 그리고 제일 어렵다는 기역니은을 붙여놓은 굴절이라는 코스가 굵게 그려져 있다.


첫날은 오토바이 사용설명을 듣고, 둥근 원이 크게 그려진 선을 따라 뱅글뱅글 돌았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안전모를 쓴 머리와 얼굴은 땀에 젖었지만, 오토바이에 탄 난 즐거웠다.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코스를 도는 수강생들이 있고 눈에 띄는 여성 수강생도 보였다.

우리 수강생들은 무거운 안전모 속에 갇혀, 말을 할 수 없다. 다만 서로 속으로만 아는 척 했다. 오늘도 오셨네, 잘 타시네, 그렇게 나에게 너의 말을 걸고 인사했다.


둘째 날부터는 정식 코스를 돌게 했다. 굴절로 시작해 곡선, 장애물, 협로 순으로 이어져 쉼 없이 돌고 돌았다. 굴절은 까딱 잘못하면 선을 이탈했다. 진입하자마자 몸의 중심을 잡고 바로 틀어야 하는 굉장히 고난도 코스다. 솔직히 현실에서 그런 코스가 있을까 하고 의문이지만, 정해진 규칙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맘대로 안 되는 연습을 하면서 푸념 했다.

돌고 돌수록 점차 될 듯하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 처음보다 선 이탈률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방심하거나 헛생각하면 여지없이 선 밖으로 나갔다. 곡선과 장애물, 협로는 이제 걱정할 필요 없을 정도로 선하나 밟지 않고 통과한다.

3일째 되는 날, 난 알았다. 연습용 오토바이가 같은 오토바이지만 성능이 다 다르다는 것을. 엔진이 요동치듯 통통 튀는 차, 핸들이 헐렁한차, 묵작하게 속도가 빠른 차가 제각기 달랐다.

그래서인지 정밀한 타이밍을 위해 굴절과 회전할 때는 어제의 연습차와 오늘 타는 다른 연습차는 그동안 훈련된 감각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중심잡고 핸들꺾기가, 오토바이 속도와 핸들의 감각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선밖으로 넘어가기에.

5일의 휴가는 금세 지나고 9월 5일. 오전 11시 시험 날짜와 시험 시간이 정해졌다. 기능시험 수험표를 받고 일주일 뒤 연습장소 이곳 학원에서 시험을 본다.

모든 시험이 그렇지만 시험을 본다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다. 단순히 앉아서 필기시험을 보는 것과 다르다. 굴러가는 이륜차에 중심을 잡고 손발을 이용해서 기계를 작동하는 것은 순발력과 감각을 요한다.

어쩌면 내가 시험 보는걸. 누가 보고 있다는 것과 떨어지면 망신스럽다는 걱정, 떨어지면 한 주후 번거롭게 재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들은 하나하나 걱정거리로 작용했다.


시험 30분 전
학원의 시험용 차는 D사의 250cc 오토바이다. 시험을 앞두고 연습할 시간이 주어 졌다. 나는 8호 연습차로 하는데 그동안 연습했던 차하곤 느낌이 달랐다. 1주일 쉬어서 감각이 둔해졌나 했지만,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8호 차는 연습하면서 타보지 못한 차였다. 그동안 연습했던 안정적인 6호 차가 좋았는데, 갑자기 막막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강사님이 나를 부르고 6호 차로 바꾸라고 한다. 그래서 6호 차로 탔다. ‘와' 괜찮다. 그동안 연습했던 그 차다. 나의 리듬과 감각에 맞춰진 6호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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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연습 삼아 돌았는데 완벽하다. 떨리지만 자신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의문의 걱정에 대한 불안감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약 20분 간의 연습이 끝나자 학원 내 시험장은 최종 준비를 끝내고 있다.

감독관이 와서 무작위 순서를 가린다고 한다. 다들 제비뽑기를 했는데, 오늘 수험자 6명 중 내가 첫 순서가 되었다. 첫 타자의 부담이 생겼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안전모를 쓰고 시험용 오토바이에 올라 기어 1단을 확인하고 출발 대기선에 멈춰 섰다. 시험장은 조용함으로 집중되고 저만치 스피커를 매단 기둥에서 수험자 번호를 부르고 준비를 지시했다.


시험장 코스에 그려진 모든 선에는 센서가 있다. 선을 밟으면 경고음이 울리고 두 번이면 탈락이다, 그리고 한번더 선 밖으로 나가면 탈락이 되고 스피커는 퇴장하라고 말한다.


오른손을 들어 보인 나는 핸들을 잡고 클러치를 천천히 놓으며 굴절의 입구로 진입했다. 모든 신경과 감각을 집중했다. 숨을 멈춰 호흡을 크게 하고선, 바로 좌로 핸들을 최대로 꺾어 돌아 중심 잡고 앞바퀴 정열 후 곧바로 핸들을 우로 꺾었다. 선을 건드리지 않았고 경고음도 들리지 않았다. 시험의 9부 능선을 넘었다.

고난도 코스를 통과한 나는 기쁨을 참으며 곡선을 여유롭게 나와 장애물도 여유 있게 통과했다. 그리고 협로를 지나며 남아있는 걱정 한 스푼을 깨끗이 털며 빠져나왔다.

한 주간 같이 연습했던 수험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다음 순서의 수험생을 편안한 마음으로 응원했다.

지난 5일간 같이 연습하고 말없이 인사한 동료들도 다 합격했다. 다들 기쁨으로 가득 찼다. 5일간 같이한 수강생들과 악수하며 수고와 축하를 말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나는 면허시험에 합격했다는 기쁨이 잠들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지만 내가 현재 오토바이를 사서 유유자적 다닐 형편은 아니다. 멋진 오토바이는 언제가 될지 아직 기약은 없지만, 영화 속에 주인공처럼 화려하게 등장할 날을 꿈꾸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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