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니가 촌에서 살아서 모르는 거야. 서울 사람들은 다 이렇게 먹어~
"야, 니가 촌에서 살아서 모르는 거야. 서울 사람들은 다 이렇게 먹어~"
초등학생 때 큰이모에게 들은 말이다.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억양도 입맛도 구수하게 경상도 식으로 묻어 나오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나와 동생은 큰이모가 사는 경기도에서 한 달간 지낸 적이 있다.
큰이모는 큰이모부와 결혼을 하고 오랫동안 살아왔던 경상도를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아무 연고도 없이 타지에 자리 잡고 사는 건 큰이모에게 굉장히 외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고작 12살, 6살짜리가 30살 어른에게 뭐가 위로가 되나 싶지만 어떤 생물체든 간에 외로운 그 순간에 함께 있다면 의지가 되었으려나?
나는 아직도 갈빗집에 가면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도 큰이모의 기억이 여전히 떠오른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나에겐 그날의 기억이 충격적이었는지, 새롭게 알게 된 맛이 충격적이어서 기억을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큰이모부가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함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거나 외식을 나가곤 했는데, 그날은 큰이모부의 친구분과 다섯이서 갈빗집에서 외식을 하게 되었다. 간장 양념이 달달하게 배어있는 돼지갈비는 한참 성장기였던 나에겐 최고의 음식이었다. 갈비를 실컷 배불리 먹고 나서야 후식으로 밥이나 냉면을 시켜 먹는 것은 국룰이다. 갈비 몇 점을 남겨둔 상태에서 우리는 물냉면을 시켰고 나는 엄마에게 배운 대로 겨자와 식초를 야무지게 넣어 비벼서 국물부터 들이켠 다음, 면을 먹었다. 그러다 큰이모가 내 냉면 그릇에 갈비 한 점을 얹어 줬는데 그 당시 지나치게 깔끔을 떨었던 나는 갈비기름이 응고되어 냉면 육수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의 나에겐 그 조합이 괴식이었다.
"이모! 도대체 누가 이렇게 먹어!"
큰이모가 내 짜증을 듣고선 코웃음을 치더니,
"야, 니가 촌에서 살아서 모르는 거야. 서울 사람들은 다 이렇게 먹어~"
12년을 경상도에서 살아온 나는 큰이모 말에 받아칠 수 없었다. 서울에 친구도 없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그때 큰이모부 친구분 께서 한마디 날려주셨는데
"정아, 누가 더 촌에서 오래 살았는지 물어봐."
나는 아직도 그 통쾌한 한마디가 다시 떠올릴 때마다 웃음이 난다.
30년을 경상도에서 살다 경기도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큰이모에게 제대로 된 어퍼컷을 날린 한마디였으니까.
다 함께 깔깔 웃고는 다시 제 냉면을 찾아 젓가락을 휘둘렀다. 육수에 기름이 떠다니고 있어 슬펐지만 이미 벌어진 일, 나도 윗지방에 올라온 이상 한 번은 먹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냉면 위에 이미 식어버린 양념갈비를 함께 떠서 입안에 넣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갈빗집에 가면 갈비 다섯 점을 꼭 남겨둔다. 냉면과 함께 먹기 위해서다.
냉면을 먹을 때마다 항상 나오는 스토리는 뻔하다.
"내가 초등학교 때, 큰이모한테 배운 건데-"
[소울푸드, 누구나 재미난 기억 하나쯤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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