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은 하도 많이 들어서 읽기 싫은 책이었다. 요즘 들어 고전이 그립지 않았다면 잡지 않았을 것이다. 문사철만 좋아했지 수학과 물리는 마법이려니 하던 내가 IT회사에 다니며 인공지능이니 블록체인이니 최첨단 논의를 듣다 보니, 쉬는 시간에는 갈수록 옛날이야기를 찾게 되었다. 이것도 고전이지 하고 서점에서 <손자병법>을 펼쳤다가 첫 편에서부터 충격을 받았다. 좋아서.
제1편 “계”에서 손자는 전쟁 전 헤아려야 할 다섯 가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를 도(道, 도덕)라 하고, 둘째를 천(天, 천시)이라고 하며, 셋째를 지(地, 지리)라 하고, 넷째를 장(將, 장수)이라고 하며, 다섯째를 법(法, 법도)이라고 한다.
도(道)란 백성이 윗사람과 뜻을 함께하는 것이므로, 군주를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천(天)이란 음양, 추위와 더위, 사계절의 변화다.
지(地)란 [땅의] 멀고 가까움, 험준함과 평탄함, 넓음과 좁음, 살 곳과 죽을 곳이다.
장(將)이란 [장수의] 지혜, 믿음, 어짊, 용기, 엄격함이다.
법(法)이란 군대 편제, 조정의 벼슬 체계와 식량의 수송로, 주력부대의 보급 물자 운용이다.
이 다섯 가지는 장수된 자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으로, 이것을 아는 자는 승리하지만 알지 못하는 자는 승리할 수 없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손자병법>은 전쟁의 기술에 대한 책이고,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1차적으로 전력이 아닌가.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이 대의명분이라니. 손자는 감상적인 사람이었나. 법은 왜 다섯째인가. 장수 개개인은 죽고 떠나도 법제도는 남는 것 아닌가. 그런데 15초 더 생각해 보니 손자가 맞고 내 생각이 짧았다. 시기와 상황이 불리해도 뜻을 품으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합리를 넘어서는 인간의 사정이다. 법 또한 알고 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라, 멀리서 보면 제도로 보이는 법원이나 검찰도 가까이서 보면 일하는 개개인의 역량과 인성에 좌우되지 않나. 도리어 법도 중요하다니 자부심을 가질 바다.
게다가 내가 듣고 접한 크고 작은 스타트업의 흥망성쇠가 몇 줄로 갈무리되는 명쾌함을 난데없이 느꼈다. 다섯 가지 기준에 비추어 보자. 스타트업에게 천운은 중요하다. Zoom이 창업 이래 기울인 온갖 노력 중 코로나 시국만큼 사운에 영향을 미친 것이 있었겠나. 시장의 환경도 중요하다. 같은 아이템도 국내냐 실리콘밸리냐 싱가포르이냐 따라 쓰는 사람과 투자 규모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C레벨의 역량도 중요하고, 초등학교 한 반보다 작은 30명 규모라도 인사부터 재무까지 규율을 엄격하게 세워야 큰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와닿는다. 그 모든 여건 위에 대표부터 인턴까지 같은 비전을 바라보아야 ‘죽음의 계곡’을 헤쳐나갈 동력을 유지할 수 있지 않나. 내가 만든 앱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연결하겠다는, 연애혁명을 이루겠다는, 신선한 농산물을 전국에 퍼트리겠다는, 또는 5년 내로 IPO 성공해서 크게 당길 수 있겠다는 등등의 미션에 합심한다면 대기업과 경쟁할 위험을 보면서도 안정적인 경력을 뒤로하고 대표 손을 잡을 수 있지 않겠나.
손자는 제3편 “모공”에 이르러서는 “군주가 장수의 일에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경우를 설명하며, 군대가 진격할 수 없는 상황인데 진군하라거나 후퇴해서는 안 되는 상황인데 후퇴 명령을 내리는 경우뿐만 아니라, 군대 사정을 잘 모르면서 간섭하거나 각 직함이 가진 권한을 잘 모르면서 그 직책까지 맡으려는 경우도 들고 있다. 손자 본인이 직장 상사(오나라 군주 합려)에게 엔간히 시달렸거나, 2,500년 후 직장인들을 위한 조직관리론 한 줄 요약이다.
내가 비즈니스를 잘 모르면서 함부로 병법을 들이대는 것은 스스로 막막했던 기억 때문이다. 스위스 로잔 호텔학교에서 Executive MBA 과정을 밟을 때 경영전략 과목이 있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발간하는 케이스 스터디를 두고 토론하는 것이 주된 수업이었다. 그 수업에서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배울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듯 하지만, 그전에 대학에서 법 공부를 하고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내게는 법이 학업이고 직업이고 생업이었다. 법에는 정답이 있었다. 계약을 맺었으면 그대로 이행하면 되고, 죄를 범했으면 어떤 처벌을 받을지 문자로 적혀 있다. 법률을 바꾸는 절차에도 법이 있고, 법률 자체도 헌법에 비추어 틀리면 날릴 수 있다. 헌법도 변할 수 있다지만 그것이 국민 다수의 뜻이면 따르면 된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있고, 그 민주주의가 사람을 해치는 결론으로 나아간다면 어느 지점에선가 자연법으로 재볼 수도 있다. 소송의 승패는 확언할 수 없다지만 그것은 사실관계가 모호하기 때문이지, 사실이 명백하면 적어도 이를 측정할 법이 있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내가 법을 사랑하는 큰 이유 중 하나도 어지러운 세상에서 앞날을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었다. 강한 사람들의 변덕과 매정한 불운 앞에서도 “나는 법을 지켰습니다. 당신은 나를 해칠 수 없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정답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즈니스의 세계에는 그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돈이 답이지 않냐 할 수 있지만, 단기적 이윤을 노리다 지속가능성을 놓친다면 그 기업에 이롭지 않다.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시장을 선점할 시기를 놓친다면 생계를 의존하는 직원들에게 도리어 피해를 준다. 아마존 초기 반즈 앤 노블의 대응을 두고 십수 년 후에 큰 실책이었다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당장 내 기업이 마주친 상황이라면 어찌해야 할지 수백 종 경영서들이 하는 말은 또 다른 백가쟁명이고 비즈니스 전략 교수가 수업을 맺으며 하는 말이란 “정답은 없죠”라니.
친구에게 연애 법칙을 주장하다 틀리면, 그 친구와 잠시 어색해질 뿐이다. 비즈니스를 단정하다 틀리면, 기업의 흥망에 많은 인생이 좌우되니 더욱 조심스럽다. 실제 전쟁에 적용할 병법이 틀리면 “분노는 다시 즐거움이 될 수 있고 성냄은 다시 기쁨이 될 수 있지만, 망한 나라는 다시 존재할 수 없고, 죽은 자는 다시 소생할 수 없다”(손자병법 제12편 “화공”). 손자는 가만있어도 사방에서 적국이 죽이러 오고, 자식이 굶더라도 군대에 끌려나가야 하는 춘추시대를 살았다. 그 불확실한 시대에 전쟁은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손자병법 제1편 “계”)임을 알면서도 이것이 정답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구구절절 길지도 않은 6,000여 자의 행간에 흐르는 것은 글자의 무게를 아는 책임감과 나의 퇴로를 위해 남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는 용기다. 우리가 법을 만드는 자에게 바라는 마음가짐 아닌가.
우리는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의 육체를 공격하고, 한정된 자원을 두고 나의 생계를 지키려면 다른 사람들과 본의 아니게 싸워야 할 때도 많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야 할 때는 간계와 전면전이 오간다. 사람의 일생을 건다는 점에서는 국가 간 전쟁이나 비즈니스 경쟁이나 매일 출근길이나 마찬가지다. <대학>도 “만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온갖 일에는 마무리와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깝다”면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논하지 않았나. 그렇게 보면 평범한 개개인에게도 <손자병법>의 유용함이 멀지 않다.
직장 잘 다니다 로스쿨에 들어갈 마음을 품었다 해보자. 개인으로서는 큰 승부이다. 전쟁 전 헤아릴 5가지를 살펴보자. 우선 변호사가 되려는 이유가 직장에서 도망치는 것은 아닌지 명분을 따지고, 시기가 무탈한지 봐야 한다. 로스쿨 경쟁률과 그 가운데 내 역량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주위에 힘을 주는 사람이 있는지도 의외로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도 냉정히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과의 승부이든 부부싸움이든 이웃과의 소음 전쟁이든 “질질 끌면 무기는 둔해지고 사기는 꺾여 성을 공격해도 힘만 소진”되니 전쟁을 오래 끌어 이로운 경우 없다는 대목까지(손자병법 제2편 “작전”), 사람이 겪는 힘든 싸움에 <손자병법>이 들어맞지 않는 대목이 드물다.
물론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홍자성의 <채근담>을 보면 ““이 세상이 만사태평하다면 칼은 갑 속에서 천 년을 썩어도 아깝지 않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공로보다는 무사함이 좋다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값진 무기가 있더라도 이를 휘둘러야 하는 상황보다는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내게나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나 덜 위태롭다. 하지만 싸워야 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은 안다.
나는 이제 30대 중반이니 젊다 하기 멋쩍다. 좀 더 젊을 때에는 돈을 좇으면 뜻이 무너질 줄 알았다. 어느덧 실리를 챙길 줄 모르면 명분을 지킬 수 없음을 알았다. 반면 실리를 얻고 명분을 잃는다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됨도 깨달았다. 실리와 명분을 두루 잡기 위해 매일매일 고민하는 마음이, 자기 나라도 방비하면서 이름도 내고 싶던 제후의 마음과 근본이 다를 것은 뭐냐고 건방지고 절실하게 생각한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도 “지피지기 백전불태”다. 승리에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태롭지 않도록 나와 세상을 알라는 것이다. 그 마음을 헤아려 싸우는 ‘법’을 알려준 손자에게 감사한다.
참고자료:
<손자병법>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출판그룹
<대학> 동양고전연구회 역주, 민음사
<채근담> 홍자성 지음, 도광순 옮김,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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