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경규가 어린 아이에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효리는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반문했다.
그 말을 들은 당사자도 아닌데 위로를 받았다.
언제나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일을 할 때도 취미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타인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고 부러움을 얻고 싶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우수한 사람이 아니었다.
학교다니면서 공부를 할 때도 회사에 다니면서 일을 할 때도 그저 중간을 웃돌았다.
어릴 때도 평범했지만 그때는 어른들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배웠고 철썩같이 그렇게 믿었다.
나의 능력은 셈하지 않은 채, 상상 속에서 선생님도 될 수 있고 과학자도 될 수 있고 화가도 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실패의 경험과 감각만 쌓여갔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던 어린 아이는 자신의 한계를 차갑게 깨달았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수한 사람이 되지 못할 바엔 그냥 살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분명 나는 원하는 회사에 갈 수 있는 실력이 되지 못하고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며 살 수 없을텐데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내일 죽어도 미련 없을 것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있는 돈은 다 써보고 죽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냥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했다.
백수여도 사고 싶은 옷을 사고 가고 싶은 곳에 갔다.
그러다보니 인생이 조금 재미있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인생은 생명의 연장이 아니다 끝없는 숙제 제출도 아니다.
돈을 쓰고 싶으면 다 써버리기로 했다.
쉬고 싶다면 5년이고 10년이고 쉬어버리기로 했다.
어떤 선택을 한다해도 죽음보다는 훨씬 값진 선택일 것이다.
그때부터 내 사고가 바뀐 것 같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좌절해오던 사람은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전까지 상상속의 나는 늘 찬란한 모습이었다.
구글에 다니는 디자이너라거나 서울에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다거나.
그 꿈은 순간적으로 내게 동기부여가 되는 듯 했으나
결국에는 현실과의 괴리만 느끼게 하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믿자 모든 것들이 좀 더 편해졌다.
10년 동안 백수로 지내는 선택지도 있다.
동네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할 수도 있고,
외국에 가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수도 있다.
더이상 스스로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불안한 위로는 건네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난 어떻게든 살 수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 없다고.
그리고 그것도 재미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