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을 탐구하기 위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어의 즐거움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궁금한 사람을 만나 질문을 던집니다.
주변인탐구일지#9 태욱님(영화 전공 디자이너)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권태욱입니다. 영화를 전공하고 있지만 영화에는 크게 마음이 없고 3~4년 전부터 디자인 공부에 눈길을 두고 있어요. 26세와 27세 사이에 있는 빠른년생입니다. 요즘 러닝에 빠져 있는데 예전부터 계속하고 있어요. 맥주 마시는 걸 굉장히 좋아하고 술을 좋아해요. 수제 맥주 만드는 회사에서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지금은 4학년 막 학기 다니면서 졸업과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의 시작
디자인에 눈길을 둔 지 3~4년 된 거예요?
더 된 것 같아요. 처음 시작은 2014년쯤이었어요. 프레젠테이션하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PPT를 잘 만들고 싶은 마음에 편집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그때부터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전에는 디자인에 관심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은 있었던 것 같아요. 영어 선생님과 교재 작업할 일이 생겨서 표지와 내지 디자인을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있어요. 방송반 활동을 했었는데 영상 편집에 관심이 많았고 자막 작업이 특히 재미있었어요. 디자인인 줄 모르고 했지만 돌아보니 레이아웃을 잡고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것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교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진로
현재는 어떤 디자인 분야에 가장 관심이 가요?
화려한 그래픽 작업보다는 명확한 근거를 통해 설계하고 비즈니스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이 훨씬 재미있어요.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매체가 뭘까 생각하다가 UI나 UX, 모바일, 웹 분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진로 고민은 어느 정도 끝난 상태예요?
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요. 공채 준비하면서 진로 고민이 다시 시작됐어요. 전공자를 우대하는 포지션이 너무 많아요. 대기업에 지원하시는 분들 보니까 포트폴리오도 그렇고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서 디자인 분야에 지원하는 게 맞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서비스 기획, UX 기획 쪽으로 지원을 한 상태에요. 서비스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시각화 할 수 있는 역량을 바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서비스나 사업을 기획하는 쪽에 관심이 있다고 어필했어요.
UX 기획으로 들어가면 UI 작업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서비스 기획자가 회사마다 포지션이 너무 달라서 어떻게 될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전체를 다 아우르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기획과 디자인에 모두 관심이 있고 개발 공부도 하고 마케팅 인턴도 했었는데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각각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조금씩은 다 알게 됐어요. PM이나 기획자의 역할은 모든 포지션을 밖에서 바라보면서 잘 흐를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픽
그래픽 작업에도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있어요. 그림을 공부할까 미술 학원에 다닐까 고민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우선순위에 밀렸어요. 그림을 그려서 표현력을 향상하는 것과 내가 만든 시안을 직접 구동할 수 있는 개발 역량을 키우는 것 두 가지에 욕심이 있었어요. 결국은 개발에 대한 욕심이 더 커져서 개발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앱 서비스 회사에서 인턴을 할 때 디자이너분과 친하게 지냈는데요. 지금 모바일 앱이나 웹 같은 경우는 그림을 잘 그리면 좋지만 그것보다 명확한 목적으로 설계하고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일은 여럿이 하니까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을 테니 네가 잘하는 영역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분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제가 더 잘하는 거에 집중하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도 시각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은 아쉬움은 계속 남아서 디자인 학교라는 곳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주변에 디자인 전공한 친구들이 많은데 어떤 것을 배울까 너무 궁금했거든요.
디자인 학교 타이포그래피 수업시간
디자인 학교
디자인 학교는 어떤 곳이에요?
국민대 시각 디자인과에서 수업하는 교수님들이 대안학교를 세운 거예요. 현 대학 교육이나 제도권 교육의 한계점을 느끼고 여기서 못 했던 것을 우리가 직접 학교를 세워서 하자는 생각으로 나와서 디자인 교육을 하는 곳이에요.
디자인 학교 어때요?
제일 만족스러웠던 점은 '시각디자인과 애들이 이런 걸 배우는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끝까지 해소되지 않았던 아쉬움이었거든요. 무엇을 배울까 하는 궁금증이 조금씩 해소가 되고 있고 지금은 타이포그래피 수업 듣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요.
저도 타이포그래피 좋아해요.
상대적으로 그래픽 작업이나 그림 그리는 부분이 약하다 보니 저도 타이포그래피에 훨씬 관심이 많았어요. 타이포그래피의 원리를 디테일하게 배우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행간은 어느 정도가 적정하고 낱말과 낱말 사이보다 행간이 더 넓어야 하고 이런 규칙들을 익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왜 어떤 뿌리에서 나오게 됐는지 근본을 배우는 공간이라 좋아요. 역사를 통해 디자인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고 지금은 이런 상황인데 나중에는 이렇게 될 것이다 라는 것들을 알려주셨어요.
멀리 떨어져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줘요. 당장 아웃풋이나 표현력이 확 좋아지지는 않아요. 생각은 바뀌어있는데 표현의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갭이 있어서 본인이 체화하고 습득해야 해요.
오래 가려면 그런 부분이 중요할 것 같아요.
네 학교에서도 그 부분을 강조해요. 오래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그걸 알려주는 곳이다.
저도 시각 디자인 수업 정말 들어보고 싶어요. 대학교나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는데 미대를 전공한 친구들은 학교 가는 걸 추천하지 않더라고요.
학교 가면 과제 주고 아웃풋 만들어내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들었어요. 기초 디자인에 대해 교육을 하기보다는 아웃풋을 계속 내는 과정을 많이 거친대요. 대학원 다니다가 여기 오신 분들도 꽤 많아요. 시각 디자인을 배우러 대학원에 갔는데 계속 과제만 주니까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서는 근본적인 것부터 밟고 들어가니까 다들 만족스러워해요. 성적으로 줄 세우지도 않고요.
비전공자 디자이너
다른 분야를 전공하셨는데 디자이너로서 강점이 되기도 할 것 같아요.
맞아요. 다른 맥락에서 이 작업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는 점이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대기업 공채나 당장의 현실을 봤을 때는 불리한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그런데 대기업 공채를 가는 것만이 디자이너 커리어 패스의 정답은 아니고 다른 길도 충분히 많으니까요. 바꿀 수 없는 걸 어떡해요. 꾸준하게 밀고 나가면 어디든 내 자리는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비전공자인데 지금은 강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오히려 열등감이 있었어요.
저도 디자인을 너무 못한다고 생각해서 열등감을 느꼈었어요. 더 잘하고 싶어서 그림 못 그리는 부분을 채우려고 마케팅이랑 개발을 공부한 이유도 있어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와서는 제가 엄청 못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떻게 그 생각을 하게 됐어요?
동아리 활동하면서 시각디자인과 친구들이 어떤 생각으로 작업물을 만들고 UI 흐름을 설계하는지, 일러스트는 어떤 식으로 그리는지 옆에서 볼 수 있었어요. 혼자 고민할 때는 막연히 겁을 먹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지 알게 되니까 지금은 부족해도 노력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모든 사람이 똑같을 수 없고 회사에 가면 다 같이 일을 하잖아요. 제가 잘하는 부분을 찾아 능력을 키우자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맞아요. 각자가 잘하는 부분이 있죠. 저는 개발을 전공해서 비주얼보다 목적성을 중요시하는 편인데 그런 부분이 같이 프로젝트 할 때 제 강점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죠. 개인적인 의견인데 UI 디자인에서 최우선 목적은 런칭을 해서 잘 돌아가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예쁘게 만들어도 돌아갈 수 없으면 시안에만 머무르고 끝나니까요. UI 디자인을 하는 이유가 앱으로 쓰기 위해 만드는 과정이고 목적은 서비스가 완성되는 거잖아요. 레퍼런스 볼 때 비핸스 UI보다 완성된 앱들을 봐요. 비핸스는 그림에서 끝나는 케이스도 많다고 보거든요. 런칭이 되있는거니까 구현이 가능하다는 얘기고 구현이 가능한 건데 괜찮은 형태나 구조가 있으면 차용해서 충분히 써볼 수 있으니까요.
저도 그래서 실무 작업 위주로 레퍼런스를 찾았는데 단점이 있더라고요. 런칭된 서비스는 패턴이 있으니까 거기에 갇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동아리 하면서 대학생 친구들하고 작업하는데 한계가 없더라고요. 제가 작업한 건 항상 비슷한 느낌이라 요즘은 일부러 비핸스랑 핀터레스트를 많이 보고 있어요.
맞아요. 결국은 밸런스인데 잘하는 디자이너는 그 지점을 잘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포지셔닝하면 그래픽보다는 실용성에 더 가 있는데 매번 똑같은 거만 나오고 재미가 없으니까 그 재미의 요소도 분명히 언젠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이 레벨의 디자이너가 되면 정형화된 패턴만을 다루지는 않을 것 같아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형화된 패턴이 최선의 솔루션 일때도 있지만 그래픽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적화된 수단이라면 표현력도 필요할테니까요.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불안감 다스리는 방법. 다큐멘터리 작업하던 때
성격과 글쓰기
태욱님을 인터뷰한 이유 물어보셨잖아요. 저만의 생각이지만 비슷한 성격이라는 느낌을 받아서 대화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저도 유진님 브런치에서 말이 없는 성격에 대한 글 쓰신 거 보고 공감 많이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 말이 없었어요. 사람들 많은 자리에 나가서 돋보이게 뭔가를 하고 이런 것에 원체 재능이 없고 잘하지도 못했어요. 예전에는 왜 나는 그런 것들을 잘 못 하지 자괴감을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그건 그거고 나는 나고 이렇게 분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둘 다 말은 없는데 생각은 많은 느낌이에요.
맞아요. 그걸 혼자 있는 상태에서 글로 풀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느낌도 있고 안심되는 것도 있어요. 생각은 휘발될 가능성이 큰데 어딘가에 잡아놓고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어요. 커리어를 만들어오는 과정을 글쓰기로 잡아두고 그런 부분에서 자존감을 찾거든요. 내가 잘해오고 있다는 것을 글로 써둔 흔적을 보면서 확인해요. 그런 것들이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도와줘서 계속 글을 쓰는 것 같아요.
태욱님 글은 일기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올리는 글도 거의 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멋있게 쓰는 것에는 별 관심 없어요.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온전히 뽑아내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써요. 누군가를 의식하고 글을 쓸 때부터 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진도가 안 나가요. 자꾸 내 머릿속에 있는 말이랑 글이 다른 얘기를 하고요.
아예 의식을 안 할 수는 없지 않아요?
완전히 안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이 글을 통해서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젖혀두고 써요. 글을 써서 브런치 메인에 걸려서 유명해지고 싶다든지 하는 욕심을 갖고 쓰지는 않아요. 쓰고 나면 제 만족이 되는 거에서 일차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은 거고 저한테는 그런 정도의 무게감인 것 같아요.
글이 정제되지 않아서 더 좋아요.
그런 피드백을 좀 받았어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주변에서 그래서 조금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어요. '그렇구나, 그럼 이게 오히려 내 글의 정체성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굳이 내 모습이 아닌 것을 멋있어 보이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글을 언제 써요? 보통?
어떤 경험을 통해서 좀 인사이트가 쌓였다 싶을 때 써요. 예를 들면 이번에 해커톤 글을 썼는데 개발자 친구들이랑 긴 시간 해커톤을 해본 건 처음이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는데 그냥 두면 날아갈 게 뻔하니까 어디 잡아두고 싶은 거예요. 보통 강한 동기는 그런 데서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어딘가에 배출해버리고 싶을 때 아무 맥락 없이 의식의 흐름으로 쓰는 경우도 있어요. 크게 두 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사는 곳
브런치에서 봤는데 오류에 사세요?
네 오류동역 살아요. 원래 고향은 창원인데 학교 때문에 서울로 왔어요.
대학교 전까지는 20년 동안 창원에 살았어요?
네. 그쵸. 촌사람이에요.
서울에 와서 다른 점을 많이 느꼈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해요.
경상도 쪽은 서울보다 인구 밀도가 넉넉해서 좋기는 한데 그만큼 편리하지는 않아요. 카페로 예를 들면 지금은 지하철역 나와서 스타벅스 가서 작업할 수 있는데 집(창원)에서 스타벅스 가려면 버스 타고 나가야 해요.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문화생활에서 차이가 나요. 서울에 세미나나 행사도 많고 양질의 프로그램이 훨씬 많아요. 이래서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하는구나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서울이 너무 빡빡해서 조금 평화로운 데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파주 너무 좋던데요. 정돈된 시골 같은 느낌.
나중에는 서울 아닌 곳에 살고 싶어요?
첫 직장은 서울에 있는 곳을 잡고 싶긴 해요.
회사가 거의 서울에 있죠?
그쵸. 문과는 거의 서울에 있죠. 경기도로 나갈 의향도 없지는 않아요. 차가 있다면 충분히 왔다 갔다 할 수 있고요. 경기도도 괜찮은 게 원할 때는 서울에 나가서 북적북적한 곳에 있다가 돌아와서 혼자 조용한 곳에 있을 수 있는 밸런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자취하면서 바글바글한 전선에서 7년 동안 살았으니까 이제는 평화로운 것들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나이 먹어간다는 증거인 것 같기도 해요.
영화와 인터뷰
싱스트리트 다운만 받아놓고 안 보고 있다가 태욱님이 좋아하는 영화라고 적어 놓으셔서 보고 왔어요.
재밌어요 싱스트리트. 6번 7번 넘게 본 것 같아요. 안 지도 오래됐고 그런 단순한 영화가 좋아요. 영화 전공인데 복잡한 영화 싫어해요. 영화 보고 즐거우면 됐지 라는 생각이에요. 즐거움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저는 복잡하고 머리 많이 써야 하고 슬프고 우울한 영화 보는 걸 선호하지 않아요. 보면 즐겁고 말초적인 자극을 주는 오락의 의미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영화과 입학 후에는 분석하며 보게 되지 않았어요?
1, 2학년 때는 많이 그랬었죠. 지금은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봐요. 관심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방증일까요. 그래도 영화 전공하면서 배운 것들이 디자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도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고 시나리오 쓰는 과정이 UX 리서치와 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다큐멘터리 인터뷰가 UX 리서치에서 인터뷰하는 흐름이랑 비슷하거든요. 인터뷰이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게끔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고 그 속에서 명확한 니즈를 뽑아내요. 목적지는 그 사람의 진심을 알아내는 거예요. 매체는 다르지만 프로세스와 목적은 같다는 점에서 인사이트를 주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많이 진행해보셨어요?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다큐멘터리 작업할 때 5~6명 카메라 앞에 앉혀놓고 짧은 시간 안에 집약적으로 많이 했었고 학교 과제로 서로 인터뷰하는 과제가 한 번 있었어요. 다큐멘터리 작업하면서 깨달은 점이 인사이트를 얻으려면 소통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마음이 서로 통해야 그 사람의 속마음을 끌어낼 수 있더라고요.
어떻게 소통해요?
제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 같아요. 마음을 열고 눈을 마주쳐요. 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다큐멘터리 작업할 때 다른 감독 친구가 저를 인터뷰하겠다고 카메라 앞에 앉혀놓고 인터뷰이로 참가한 적이 있어요. 친구의 작업 방식은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는 것보다 카메라에 비치는 비주얼이 더 우선순위였어요. 인터뷰어가 제 앞에 있는데 시선을 다른 곳에 지정해줘서 그곳을 보고 대답을 했어요. 하고 싶은 말도 안 하게 되고 서로 소통이 된다는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타산지석으로 제가 인터뷰할 때는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느껴서 카메라 앵글이나 사운드보다 통하는 대화를 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했어요. 그 과정을 브런치에도 적었는데 인터뷰했던 시간이 너무 소중한 경험이어서 기록으로 다 남겼어요.
영화과 3년이면 야매 3점 조명 정도는 거뜬합니다.
영화 창작
영화에 마음이 많이 뜬 상태라고 하셨잖아요. 영화 만드는 일이 싫어진 건가요?
보는 건 좋아요. 취미로서는 좋은데 만드는 건 잘 모르겠어요.
처음 영화를 전공하게 된 이유가 영상 편집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영상 편집에도 관심이 없나요?
흥미는 있는데 마음이 크지는 않은 것 같아요.
실제로 해보고 마음이 바뀐 건가요?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아요. 편집을 하더라도 취미 정도 선에서 하는 건 좋아요. 겨울에 유럽 여행 갔을 때 그날의 분위기를 명확하게 잡아두고 싶어서 브이로그 비슷한 걸 찍었어요. 그때 편집하는 건 되게 재미있었어요. 레이아웃 잡고 시각 디자인 요소를 편집 안에 가미하고 그런 맥락의 편집은 재밌어요. 그런데 스토리가 있는 것들을 순서대로 편집하면서 플로팅하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흥미가 덜한 것 같아요.
영화 만드는 일에 스트레스가 있어요?
네. 친한 친구 졸업 영화를 도와주고 있는데 주말에 현장에 있으면서도 느꼈어요. 이 일은 나랑 안 맞는 거구나. 괴로워도 영화가 그만큼 좋으면 참고 하게 되잖아요. 그만큼은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의 소리가 일관되게 유지되는 걸 보면서 생각을 점점 굳히고 있어요.
무슨 일을 하든 힘든 건 똑같잖아요. UI 작업하고 서비스 만들면서 힘들었던 때와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었던 때랑 비슷하게 힘든데 디자인은 참을 수 있고 참아지는 거예요. 그만큼 재미가 있어요. 영화 만드는 일은 참아지지 않고 스트레스가 많이 생겨요. 그런 점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제가 어떤 걸 더 좋아하는지 알게 됐고 그런 식으로 답을 찾으려고 많이 고민했었어요.
애정이 없는 일은 유지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죠. 힘들어져요. 좋아하는 것을 계속 지속해서 밀고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능력이 일정 수준에 올라가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인터뷰한 느낌 어때요. 인터뷰 같지 않았던 것 같아요.
네. 그냥 수다 떨었던 것 같아요. 수다 떨었던 게 더 잘 된 인터뷰의 형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너무 인터뷰 같은 느낌보다요?
네. 더 넓은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형태여서 좋았어요. 제 얘기를 낯선 사람에게 꺼내는 경험 자체도 되게 재미있는 경험이고 신기한 맥락이잖아요. 예전과 지금의 제 모습을 계속 돌이켜보고 체크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글과 같은 느낌
인터뷰하는 날 태욱님을 처음 만났다. 글과 사람의 느낌이 같았다. 숨기지도 과시하지도 않는 담백한 글처럼 실제로 만난 태욱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과시하지는 않지만 마음을 적당히 숨겨서 이야기할 때가 많다. 하고 싶은 말이 100만큼 있다면 10만큼만 이야기한다. 인터뷰하는 분들이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마다 놀랍고 감사하다. 내가 인터뷰이가 되면 그럴 수 있을까? 이것저것 다 빼고 이야기하지는 않을까. 자신을 내보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솔직한 사람이 더욱 더 부럽다. 마음이 비치는 투명한 사람이 되어 사람들과 더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먼저 마음 열기
인터뷰 시간 내에 편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면 이야기를 끌어내기 힘들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 이 부분이 특히 어렵다. 태욱님이 '소통하려면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뭔가 쾅 깨지는 기분이 들었다. 낯을 많이 가리고 말을 잘 못 해서 친해지기 어려운 거라 생각했는데 성격이나 말솜씨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느 정도 친해지기 전까지 경계를 많이 하고 상대방에게 거리를 두는 편이다.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서 상대가 마음을 열길 바라는 생각부터 욕심이었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법을 검색하고 책을 찾아보는 대신에 나부터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