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션 디자이너
주변인탐구일지란?
주변 사람들을 탐구하기 위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어의 즐거움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궁금한 사람을 만나 질문을 던집니다.
주변인탐구일지#8
진재님(인터랙션 디자이너)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이진재입니다. 스웨덴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고, 광고 회사에서 디지털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었습니다. 스웨덴에는 2년 정도 있었고, 한국에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글도 쓰고, 디자인도 하고, 사진도 찍고, 기타도 치고, 여행도 다닙니다.
인터뷰에 응하신 이유가 있나요?
궁금했어요. 디자인 얘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물어보는 분은 처음이어서. 거절을 잘 못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어떤 질문을 하시려나. 사람한테 궁금함을 가지고 인터뷰하러 다니신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나에게 집중하게 된 계기
스웨덴에 가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원래도 남이랑 비교하는 성격이 아니긴 했어요. 그런데, 스웨덴이 경쟁을 걷어낸 사회다보니 '이 사람과 나는 다른데 왜 비교를 해'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주위의 어떤 영향으로 비교하지 않게 된 건가요?
스웨덴 사람들은 비교를 잘 안 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잘 안 하게 되었고 제 목소리만 듣게 됐어요. 같은 회사에서 인턴이었던 친구가 구글에 갔는데 옛날이었으면 '와 부럽다. 나도 구글 가고 싶다.' 이랬을 텐데 지금은 '좋겠네. 나중에 놀러 가야지'라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친구가 성공하면 좋은 거죠. 조금 더 길게 보게 된 것 같아요.
해외 생활의 외로움
외로움을 자주 느끼나요?
네. 힘들었죠.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이유 중 하나에요. 사회적인 활동하면서 살고 싶어요. 한국에 와서 친구들 만나고, 밋업 가서 사람들이랑 인사하고, 이런 거 좋아하거든요. 가족들이랑 식사도 하고 싶고요. 해외에서 일하면 다들 공감할 거예요. 한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기가 어려워요. 외국에 사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외로운 감정이 들면 극복하려 하나요 그대로 두나요?
작업을 합니다. 디자인 작업하고 글 쓰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해요. 감정이 가장 잘 털어지는 게 글쓰기랑 기타 연주더라고요. 브런치에 쓰는 '다섯'이 그런 글이에요. 외로움이나 쌓이는 감정들을 문장으로 풀어내면 속이 좀 시원해져요.
스웨덴에 누군가와 함께 갔다면 지금과 달랐을까요?
완전히 달랐을 것 같아요. 심리학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고 배웠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인간이 왜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고, 왜 짝과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다니는지 이해가 돼요.
혼자 보고 혼자 즐거운 것보다 부모든 친구든 연인이든 같이 경험하고, 공유하는 게 좋아요.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공감하고, 함께 떠올리면서 추억하는 순간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걸 느끼기 어려웠어요. 혼자 돌아다니고 인스타에 올리고, 누가 좋아요 눌러주면 혼자 좋아하고 그랬죠.
한국에서는 왜 느끼기 어려웠을까요?
한국은 연결이 쉬웠어요. 새로운 느슨한 연결이 끊임없이 생겨요. 모두 다 서울 근처에서 일하고, 사니까 만나기도 쉽고, 섞이는 것도 쉬운 것 같아요. 진짜 혼자였던 적은 별로 없었던 거죠.
직장동료나 학교 친구들은 안 만나나요?
직장 동료들은 보통 집에 가서 연인이나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서 5시 이후에는 거의 못 만나요. 스웨덴 사람들은 이사를 잘 안 다니다 보니 보통 어릴 때 만난 친구들이랑 평생 가요. 저는 외국인 친구들끼리 가끔 만나는데 자주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예민함
예민한 성격이라고 하셨는데 무뎌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당연히 해봤죠. 지금은 꽤 무뎌진 것 같아요. 감각은 여전히 예민한데 받아들이는 게 예민하지 않아요. 성격도 예민했거든요. 소리와 빛에 예민해서 잠 못 자는 건 그냥 디폴트로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예민함이 성격에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지금은 그런 데이터가 들어와도 처리를 안 하려고 해요.
어떻게 처리를 안 해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30년간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데, 수면제도 안 듣고, 어둡게 하고 자도 해결이 안 돼요. 자다가 깼을 때 '아 망했다'가 아니라 '아 깼네. 어쩔 수 없지. 오늘 피곤하겠네'하고 또 자고 못 자면 못 자는 대로 놔둬요. 사람들한테 나 오늘 못 자서 뇌가 잘 안 돌아갈 수도 있다 양해를 구하고 받아들이고 사는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 못 잔다고 더 힘들고, 조금 더 잔다고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쉼
그러기 위해 30대는 지금처럼 꾸준히 배우고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나 자신, 그리고 가족, 친구와 함께하는 일상적인 삶을 놓칠 생각은 없다. 뛸 때 열심히 뛰고, 쉴 때 푹 쉬기.
원문 : https://brunch.co.kr/@jinbread/139
푹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어요?
대학교 다닐 때 광고에 완전히 미쳐있었어요. 광고 공모전을 2주에 한 개씩 했어요. 공모전 70개를 하면서 기획서를 70개 썼어요. 공모전 5개를 동시에 하기도 하고, 잠 2시간 자면서 노트북 세 개 놓고 작업하고, 새벽에 미팅 3개씩 잡고 말도 안 되게 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까 많이 한다고 잘해지지는 않더라고요. 쉴 때 쉬고, 회복하면서 해야지 열심히만 하면 금방 지쳐서 질리더라고요.
뛸 때 열심히 뛰고 쉴 때 푹 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설프게 열심히 하고 어설프게 쉬면 안 돼요. 내가 생각하는 열심히가 뭔지 알아야 하고 무엇을 할 때 체력 회복이 빨리 되는지 알아야 해요. 무작정 시간을 많이 쓴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열심히 한 사람이 잘할 가능성은 높지만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브런치에 글을 많이 쓰게 된 시기가 포르투 여행가셨을 때인 것 같아요.
2015년에 포틀랜드를 갔다 왔는데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빙글이라는 SNS에 정리해서 올렸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이거를 네이버 블로그에도 그대로 가져갔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 그다음부터 기행문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5년부터 가는 곳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17년에 브런치에서도 해보자 해서 포르투 여행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글도 괜찮게 쓰고 사진도 잘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브런치 감성이 아니었나 봐요. 스웨덴 오기 전에 디자인 매거진 CA에 무턱대고 책 쓰고 싶다고 했는데, 마침 원고 예시랑 간단한 목차를 써서 보내보라고 한 상태여서 하이퍼 아일랜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써보기로 했어요.
CA에 연락한 이유가 있나요?
열심히 보던 잡지였어요. 기획 기사 내용 중에 하이퍼 아일랜드 얘기가 한 토막 정도 나와서 CA가 이 학교에 관심이 있구나 했어요. 그리고 CA에서 발간하는 책 중에 <어쩌다 네덜란드>, <어쩌다 암스테르담>처럼 어쩌다 시리즈로 <어쩌다 스톡홀름>을 쓰면 되겠다 생각했죠.
어떻게 먼저 글을 쓰겠다고 이야기하신 건가요?
CA에서 출간한 <기술과 디자인 - 디지털 세계의 양손잡이 디자이너>라는 책을 샀는데 오타가 있었어요. 이 책을 스웨덴 가기 전에 다 읽고 가고 싶은데 오타가 계속 눈에 보여서 출판사에 전화했어요. 그러다 CA 컨퍼런스(디자인 스프린트)에서 편집장님을 만났는데 피드백 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책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CA에 글을 연재할 때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나요?
한 문장 쓰는데 하루 걸리기도 하고 글 한 개 쓰는 데 한 달 걸리고 그랬어요. 문과라서 이런저런 글을 자주 썼는데도 불구하고 힘들었어요. 긴 글은 처음이라 문장 하나하나 신경 써서 썼어요. 하루에 2~3시간씩 썼는데도 글 하나에 4주 정도 걸렸어요. 친구들한테 피드백도 받았어요.
단어에 대한 생각
저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제가 뭘 원하고, 어디까지 왔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원문 : https://brunch.co.kr/@jinbread/44
'성장'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이 항상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사는데, 성장에 대한 강박은 자신감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할 수도 있는데 왜 더 성장해야 하지? 능력이 키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배운다는 단어도 별로 안 좋아해요. 대신 공부한다는 말을 좋아해요. 본인에게 뭐가 필요한지 알고, 그걸 공부하면 되는 건데, 그걸 꼭 누구한테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르쳐주는 사람이 틀릴 수도 있고.
자신에게 행복은 어떤 의미예요?
보통 행복을 거창하고 어려운 무언가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소소한 거라고 생각해요. 고급스럽고 비싼 걸 먹어야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맥도날드 아이스크림처럼 작고 소소해도 제가 행복하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각자 느끼는 행복의 방식이 다를 뿐이죠. 크고 작고는 물론 있겠지만, 좋은 일 있을 때 쉽게 얻어지고, 그럴 수 있어야 제 삶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다섯' 시리즈
브런치에서 쓰는 '다섯' 시리즈를 읽으면 하고 싶은 말을 해서 편해 보여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있어요. 정리되지 않은 글일 수도 있고 정리가 아주 된 글일 수도 있고.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있습니다.
진재님의 탈출구 같은 느낌도 들어요.
감정을 배설하는 공간이에요. 하고 싶은 말을 돌려서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감정이 섞인 글도 많고, 찡찡대는 글도 많아요.
서른 둘의 다섯
[1] 서른 두 살에는 가족과 친구를 잘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스웨덴에 지내면서 지금 하는 일과 성과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시간을 더 많이 쓰고, 마음을 쏟아야지.
[2] 서른 두 살에는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처럼 초조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한 해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고민과 경험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더 이상 서점에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책들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 것 같다. 이 마음과 이 기분으로 한 해를 보내야지.
[3] 서른 두 살에는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여유는 체력에서 나온다. 일이든 생활이든 체력이 받쳐줘야 할 수 있다. 귀찮다고 집 안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많이 걷고, 많이 움직여야지.
원문 : https://brunch.co.kr/@jinbread/99
[1] 새해에 '서른 둘의 다섯'이라는 글을 쓰셨는데 가족과 친구를 잘 챙기고 있나요?
잘 챙기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시간을 많이 쓰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물리적 거리(한국-스웨덴)가 있으니까 관계가 유지되기 어려워요. 내가 마음이 있다고, 상대방도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안 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보여줘야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더라고요. 가족 관계든 친구 관계든 마찬가지고요.
[2]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고 있나요?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서점에 가면 이것도 알아야 하고 저것도 알아야 하나 했었는데, 지금은 필요한 것만 알려고 해요. 책은 인풋이 필요할 때만 보는 것 같아요. 물론 제 생각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보는데, 저 스스로 정리가 안 됐을 때는 안 보려고 해요.
[3] 많이 걷고 움직이고 있나요?
운동을 여전히 안 하고 있어서 걱정이긴 하지만, 작년보다 걷는 양은 훨씬 늘었어요. 하루에 최소 몇천 걸음은 걸어요. 일부러 걸으려고 해요. 걸어야 사람이 활기차지고, 에너지도 생겨요. 한국에 돌아오면 체력을 좀 더 열심히 챙기면서 살고 싶어요.
건강해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체력이 좋아야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더라고요. 요즘은 작업 늦게까지 하면 손끝이 저려서 자야 해요. 뭔가 문제가 있는거죠. 지금부터라도 몸을 챙기지 않으면 앞으로 더 심각해질 거라는 걸 느꼈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한 느낌은 어떤가요.
저 스스로가 예전과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웨덴에서 빨리 나와야겠다는 확신도 들었고요. 다섯 시리즈를 쓰면서 저 스스로가 어떻게 변하는지 따라가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달라졌다는 건 지금 느낀 것 같아요. 제가 사람으로서 되고 싶은 방향과 일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비슷해진 것 같아요.
심리학과라 인터뷰를 많이 해보셨을 텐데 인터뷰 팁 주실 수 있나요? 인터뷰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을 더 들여다보고 싶은데 어려워요.
왜라고 계속 물어보세요. 인터뷰어가 이해했다고 납득하고 넘어가지 말고 (인터뷰이가) 말하면서 자신이 생각한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른 시점이 올 때까지 계속 물어보시면 됩니다.
열심히 일하고 푹 쉬기
작년까지만 해도 열심히에 꽂혀 있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주말에도 쉬지 못했다. 쉬면 불안했다. 아프고 나서 깨달았다. 몸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전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30대 중반까지만 열심히 일하고 그다음부터 쉬엄쉬엄 하자고. 하지만 그때가 되면 쉴 수 있을까? 몸이든 정신이든 충분히 쉬어야 오래 갈 수 있다. 소모하면 금방 닳아 버린다.
주변을 보면 아무리 바빠도 잘 쉬는 사람이 있다. 나는 바쁘지 않아도 제대로 못 쉰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시간이 많던 적던 시간에 쫓긴다는 말이 와닿았다. 잘 쉬는 게 뭘까. 누워서 폰 하는 거? 자는 거? 나가서 노는 거? 어떻게 쉬어야 내 체력과 정신이 회복되는지부터 생각해봐야겠다. 바쁜 상황에서도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왜 인터뷰를 하지?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아쉬운 것 같다. 더 나은 인터뷰를 하고 싶다. 내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직업으로 하는 사람처럼 전문적인 인터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인터뷰한 사람의 철학이 보였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생각 전반에 걸쳐있는 가치관은 무엇일까. 긍정적이라면 왜 긍정적인지, 어떻게 긍정적이게 됐는지, 어떤 경험을 통해 그 생각에 닿았는지 알고 싶은데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진재님이 알려주신 점을 바탕으로 인터뷰 방식을 수정해봐야겠다. 다행인 건 인터뷰가 처음보다 나아졌다는 거다.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