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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Apr 20. 2020

주변인탐구일지#10 임연수

중국 대학원생

주변인탐구일지란?

주변 사람을 탐구하기 위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어의 즐거움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궁금한 사람을 만나 질문을 던집니다.




주변인탐구일지#10
임연수(중국 대학원생)


시작하며


안녕. 자기소개 부탁해.

저는 임 씨고요. 현재 중국에서 5년째 체류 중인 대학원생입니다. 방학이라 한국에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요즘 할머니를 돌보는 데 매진 중인 효손녀입니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가 있다면?

나는 관종이기 때문에(웃음) 이렇게 관심받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 예전부터 네가 인터뷰하고 다니는 게 흥미로웠어. 보통 인터뷰는 업적이 있거나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데, 너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알아가는 점이 뜻깊은 것 같아.







스무 살


우리가 스무 살 때 가장 많이 붙어 다녔잖아. 고등학교 때는 많이 친하지 않았는데 왜 스무 살이 돼서 친해진 거 같아?

고등학교 때는 왜 안 친했지? 스무 살 때 우리 둘 다 힘들었잖아. 서로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할 말도 많았어. 매일 할리스 가서 얘기하고 매출 많이 올려줬는데.


스무 살 때 했던 가장 큰 고민이 뭐야?

앞으로 뭘 해야 하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 대학교에 들어갔다가 한두 달 만에 그만두고 구렁텅이에 빠졌었지. 그때는 개념이 없으니까 계획도 없이 나왔는데 뭘 해야 하는지 몰랐어.


스무 살의 너는 이상주의자라고 느꼈는데 지금은 어때?

지금도 그렇긴 해. 현실에 부딪혀서 조금 꺾이긴 했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진짜 좋아하는 말이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한다는 말이야. 될 때까지 버티면 된다고 하잖아.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


만약에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면 지금이랑 다른 길로 갈 것 같아?

다른 걸 하거나 지금 하는 걸 조금 더 일찍 시작하거나. 시간을 많이 버린 것 같아.


같은 루트로 가는데 일찍 시작하고 싶은 거야?

응. 그렇게만 해도 너무 좋을 것 같아.


아예 다른 길로 갔으면 어떤 걸 하고 싶어?

승무원에 도전해 봤을 것 같아.


스무 살 때도 하고 싶어 했잖아.

하고 싶었는데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못했지. 자신감이 좀 없었어. 그때는 승무원이란 직업은 보이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거든. 해보지도 못하고 그냥 포기했지.


지금 해보는 건 어때?

지금도 해보고는 싶은데 키가 너무 작아서(웃음) 될까?


다시 돌아가면 승무원이 되기 위한 어떤 준비할 거 같아?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거야. 외항사는 키를 덜 보니까 시도는 해볼 것 같아.







공통점과 차이점


고등학교 때는 네가 댄스동아리도 하고 활발해 보여서 나랑 성격이 매우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 나중에 내성적이라고 해서 놀랐어.

엄청 내성적인 스타일이고 낯 많이 가려. 요즘은 더 그래. 그때는 관종끼가 지금보다 심했어.


너랑 나랑 비슷한 점은 뭐가 있는 것 같아?

먹을 걸 좋아한다? 진지한 얘기 하는 거 좋아하고 농담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리고 내성적인 성향. 지금은 아닌가.


나는 맞지(웃음) 너는...

나는 내성적인 사람 중에서 외향적인 거고, 외향적인 사람 사이에 있으면 조용해.


나와 다르다고 느끼는 점은?

요즘은 네가 모임을 많이 참여하는 게 다른 것 같아. 나는 되게 집순이고 곰팡이 같은 성격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걸 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꺼리는데, 너는 갈수록 열심히 하니까 대단한 것 같아.


난 옛날에는 집에 많이 있었지. 그런 시기가 있지 않아?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을 때도 있고.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시기가 별로 없었어. 방학 끝나고 상해에 가면 나도 모임도 나가보고 그러려고 했는데 지금 중국에 못 가고 있지.







인간관계


남들한테 보이는 모습을 의식하는 편이야?

낯선 사람과 있을 때는 많이 의식하고 편안한 사람과 있을 때는 덜해.


상대방이 기분 나쁠까 봐 신경 쓰는 거야?

그런 것도 있고 첫인상이 중요하잖아. 처음 낯선 사람들이랑 있으면 작위적인 행동을 많이 해. 서비스 알바를 해서 그런가.


친절하면 좋은 거 아니야?

그런가? 나 스스로 너무 피곤한 것 같아. 남한테 친절하려면 어느 정도 신경을 써야 하니까.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대해주는 건 좋은 거 같은데.

나는 사람들이랑 깊이 친해지기는 좀 힘든 것 같아. 같이 시간을 오래 보내야지 친해지니까. 그래서 인간관계가 좁고 대신 오래됐지. 덜 친한 사람들은 관계가 금방 증발해버려.


넓고 얕게가 어렵지.

맞아 그게 너무 힘들어.


난 해본 적 없어.

넓고 얕게가 도움이 된다고는 하던데. 그렇게 해 본 적 있는데 별로 의미가 없더라. 꾸준히 관리할 수 있는 사람한테는 되게 좋은데 나는 관리를 못 하니까 의미가 없어져.


언제 해봤어?

중국에서 학사 입학하기 전에 어학 연수할 때. 그때는 놀러도 많이 다니고 친구도 엄청 많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 날아가 버렸어. 지금까지 연락을 꾸준히 잘하고 챙겨줬으면 좋은 인연이었겠지.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닌 것 같아.







부탁과 거절


친하지 않은 사람들한테도 부탁 잘해?

꼭 필요할 때는 하지. 대신 엄청 미안하다고 해. 내가 친하지도 않은데, 이런 사이가 아닌데 부탁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작은 보답이라도 하지. 부탁받을 때 마음을 잘 아니까.


남들에게 부탁하는 거 정말 어려워.

맞아. 처음에 운을 떼기가 힘들지. 그래도 미안하다는 티를 내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좀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 항상 미안하다고 해.


네가 부탁받을 때는 어때? 기분이 나빠?

그 사람 태도에 따라 다르지. 그래서 나도 항상 더 과하게 하는 거야. 똑같은 부탁을 해도 미안해, 고마워 이런 얘기를 잘하거나 그런 표시를 하면 기쁘게 도와줄 수 있거든.


안 친해도?

응. 내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줄 수 있는데, 당연한 듯이 물어보고 인사조차 안 하면 다음부터 무시하게 되는 것 같아.


부탁받으면 거절 잘해?

거절 잘 못 해. 이제는 거절을 좀 하려고 하지. 아예 무시하거나. 그래도 웬만하면 다 들어줘. 나한테 부탁한 건 대단한 게 아니니까.


예전에는 거절 잘 안 했어?

응. 싫어도 그냥 들어줬어.


거절하는 게 두려워서?

응. 나도 거절당하는 게 싫으니까.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기 싫었어.


거절해야겠다고 느낀 계기가 있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두 번 반복되면 당연한 줄 알아.


태도가 싫었어?

응. 태도가 싫어.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이면 여러 번 부탁해도 상관없어?

응.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고맙고 미안하고 이런 걸 표시하는 거. 아무 의미가 없더라도 듣는 사람은 느낌이 다르잖아.


네가 뭘 부탁할 때 되게 미안해하잖아. 이렇게까지 나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

부탁하는 거 자체가 그 사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거잖아. 문자 답장만 하는 거라도 시간이나 정성이 든다고 생각하거든.







중국 대학교 졸업 사진


중국 유학


중국에 간 계기가 있어?

한국에서 대학교 다니다가 중국으로 한 달 동안 어학연수를 갔어. 운 좋게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 경험이 너무 좋았어. 다시 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어학연수를 한 번 더 다녀왔어. 한 학기 있다가 한국에 왔는데 또 가고 싶어서 유학까지 가게 됐어.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중국 대학교로 편입했어?

졸업하고 바로 갔지. 2월에 졸업해서 3월에 들어갔어.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는 무슨 과였어?

관광 경영. 전공과목으로 중국어 기초 과목이 있었어. 중국어 배우고 써먹어 보고 싶어서 중국으로 한 달 어학연수를 간 거야.


왜 중국 가서 2학년부터 시작했어? 2년제를 졸업하면 3학년부터 들어가잖아.

2학년 편입 시험이 있고 3학년 편입 시험이 있었어. 3학년 편입시험을 보기에는 중국어 실력이 부족했어.


그래서 2학년 시험을 본 거야?

응 겨우 붙고 2학년부터 다시 다녔지. 시간이 아까워.


편입해서 무슨 과로 갔어?

중국어과.


과에 외국인만 있어?

응. 졸업자로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학연수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


대학교인데 어학당 같은 느낌인 거야?

응. 사실 그 과를 졸업해도 중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되게 많아.


4년 동안 공부하면 잘하지 않아?

언어도 어느 정도 올라가면 맨날 쓰는 말만 하니까 더 올라가기가 힘들단 말이야. 일상생활만 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


너는 따로 어떤 공부를 했어?

중국인 친구들이 없기 때문에 문헌을 많이 봤어. 논문 쓰기 위해서 본 건데 독해가 많이 늘었어.


회화는 어때?

회화는 아직도 어려운 거 같아. 진짜 원어민처럼 말하기는.


외국에 살면 언어 능력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줄 알았어. 자기가 노력을 해야 늘 수 있구나.

무조건 현지인들 사이에서 지내야 해. 한국에 대한 컨텐츠를 차단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어렵지.







대학원 입학 후 매일 보는 화면


대학원


대학원에 간 이유가 있어?

중국어과가 외국인 대상으로 만든 과인데 냉정하게 말하면 거의 4년짜리 어학연수였어. 전공을 만들고 싶어서 대학원에 갔어.


대학 학위는 얻었으니까 바로 한국에 올 수도 있었잖아.

그치. 근데 취직을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취직할 수는 있겠지만 좀 더 욕심이 있었지. 조금 더 높이 가고 싶은 바람이 있으니까.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잘 살고 싶고.


미래를 위한 투자야?

응. 장기적으로 보면 대학원을 가는 게 좀 더 도움이 될 거 같았어.


너 스스로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누군가 추천해줬다거나 대학원 얘기를 꺼낸 사람이 있었어?

나 스스로. 아무도 대학원을 추천하지 않았고 혼자 결정했어. 대학원은 다녀본 사람은 추천하지 않으니까(웃음)


대학원은 무슨 과야?

경영인데. 그냥 경영학이라고 하면 되나. 엄밀히 따지면 기업 경영.


대학원에서 경영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어?

관광과도 생각했는데 경영이 좀 더 범위가 넓잖아.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은 관광에서 일하기가 쉬운데 관광을 전공한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 일하기는 힘들 거 같아서.


진로를 관광으로 가두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렇지.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대학교 다닐 때는 관광 경영과였잖아. 많이 달라?

관광 경영이 훨씬 범위가 협소해.


지금 과는 더 포괄적이야?

관광 경영때는 호텔경영, 투어컨덕터 그런 거 배웠어. 그때는 실무적인 내용을 많이 배웠고 지금은 학문적인 내용을 많이 배워.


지금 과는 너한테 잘 맞아?

다른 과에 비하면? 왜냐하면 수학을 못 하는데 다른 과보다는 수학이 덜 필요해. 전공 자체만 보면 관광 경영이 조금 더 재밌었던 것 같아. 지금 대학원은 외국어로 해서 더 어려운 걸 수도 있어.


중국어로 배워? 백 퍼센트?

응 나 빼고 거의 중국인이니까.


외국인이 별로 없어?

지금 우리 학번에 18~19명 있는데 유학생이 나까지 3명이거든. 한국인은 나밖에 없어. 다른 친구들은 몽골, 말레이시아에서 왔는데. 말레이시아 친구는 화교라서 그냥 원어민이야.


대학원은 사람이 많이 없네?

응. 그래서 힘든 거 같아. 바로바로 비교되니까.


중국에 계속 산 애들하고 차이가 있겠다.

아예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야.


대학원 다니면서 도망치고 싶을 때 있어?

항상. always.


그럼 어떻게 해?

어쩔 수 없지.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현재 살고 있는 상해의 모습


외로움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외로웠어?

그치 아무래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다 만들어야 하잖아. 친구도 만들고 내 생활도 만들고. 의식하지 않으면 괜찮은데 의식하는 순간 우울해지는 거 같아.


네가 타지에 있지만 외로울 거란 생각을 못 했어. 말한 적이 없어서 몰랐어.

그치.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말하면 공감을 못 하잖아. 공감이 잘 안 되고 솔직히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잖아.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한테 말해서 해결될 고민이 아니면 말을 안 하는 편이야?

말은 하는데 심리적인 고민은 말을 잘 안 하게 되지. 나한테 무슨 일이 있다 이런 얘기는 하는데 내 마음이 어떻다는 얘기는 안 해.


요즘 너무 힘들고 이런 감정적인 얘기는 안 하는 거야?

응. 다 힘드니까.


어떤 사건 같은 것만 얘기하고?

응. 그런 거 같아. 그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좀 피로해하는 것도 있고, 듣기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잖아.


가끔은 할 수 있지.

나도 너무 힘들 때 하려고 아껴두고 있어.


히든카드야?(웃음)

언젠가 한다. 준비하고 있어.







한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갈 때


방학 끝나고 중국으로 돌아갈 때 기분이 어때?

가기 싫지.


설레는 건 없어?

옛날에는 얼른 가고 싶고 그랬는데 이제는 없어. 특히 지금은 오빠도 외국에 나가 있으니까 엄마 생각에 발이 안 떨어지지.


예전에는 왜 설렜어?

그때는 내가 해외 생활을 하는 게 너무 좋았고 나가면 자유롭잖아. 한국이랑 다르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 지금은 내가 책임져야 할 걸 놓고 가는 느낌이야. 엄마가 항상 공항에 배웅을 나온단 말이야. 그럼 발이 안 떨어져.


자유가 네가 한국에 살아도 독립하면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야 해외라서 느끼는 자유로움이야?

해외라서 더 자유로운 것 같아.


왜?

한국은 가족이나 지인 등 연결되는 사람이 많은데 해외는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걱정이 조금 덜해. 그리고 대인 관계나 학업 면에서도 중국인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특수성이 참작되니까 한국보다는 넉살 좋게 굴 수 있는 것 같아.







한국에 있는 친구들


옛날에는 일상을 많이 공유했잖아. 오늘 학교 갔고, 누구랑 친하고 이런 사소한 것들을 다 알았는데 지금은 네가 어떻게 사는지 아예 모르는 것 같아.

중국에 나가 있으면 계속 얘기해도 친구들이 공감하기 어렵잖아. 공감 못 하는 얘기를 계속하면 듣기 좋지 않을 거 같아서 중국에 가면 카톡을 많이 안 하게 돼. 일하는 친구들은 내가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고민이 사치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잖아. 배가 불렀다, 복에 겨웠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더 안 하게 되는 것 같아. 유학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니잖아. 나도 어려운 환경인데 엄마가 많이 희생해주셔서 운 좋게 갈 수 있었지. 나는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은 고민으로 안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은 거지. 별로 안 듣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 이 얘기를 누가 안 듣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

응!


오늘 계속 그 이야기가 나온 거 같아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가 나랑 친한 친구한테 내가 되게 부정적이라는 말을 한 거야. 그 뒤로 많이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 부정적인 사람이랑 있으면 싫잖아.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많이 반성하게 됐어. 그래서 최대한 부정적인 얘기는 안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하게 되지.


너는 중국에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있어?

완전 친한 친구는 없어. 같이 붙어 다니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있지만. 나는 같이 보내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더 친해진다고 생각하거든. 아직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친구는 없어.


너랑 친하다는 생각은 변함 없는데 너에 대해 모른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

내가 중국 가고 나서 항상 느끼는 건데,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랑은 점점 대화거리가 없어지는 느낌이야. 상해에 있을 때마다 항상 느껴. 지금은 방학이라 한국에 와 있으니까 이야깃거리가 많아. 그런데 상해에 가면 대화거리가 없으니까 점점 친구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







미래


대학원 졸업하고 난 후의 계획이 있어?

지금은 아예 없는데 졸업하기 전까지 찾길 바라야지.


대학원 입학할 때도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

응 그래서 조금 우울했었어. 대신에 그건 있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좀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가야지. 우리가 아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중국 회사도 상관없어?

응. 근데 기본적인 건 있어야지. 중국은 우리보다 급여 수준이 낮잖아. 적어도 우리나라 정도는 받고 싶고 워라밸 보장받고 싶어.


중국 회사의 워라밸은 어때?

큰 기업은 워라밸이 없는 곳이 많아. 알리바바 같은 곳. 996이라는 게 있어.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6일. 그걸 996이라고 그러거든. 대신 그만큼 돈을 많이 주지. 오히려 중국은 중소기업들이 워라밸을 보장 잘해줘. 대신에 돈은 적어.


양쪽 선택지(대기업, 중소기업) 다 단점이 있네.

그래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해서 다른 외국계 회사를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해.


중국에 있는 외국계 회사에 가고 싶어? 어느 나라든 상관없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회사면 나라는 상관없어.


중국이랑 한국 둘 중에 선택할 상황이 생기면?

상해로 가지 않을까. 왜냐하면 남자친구도 있고 엄마가 퇴직하면 상해에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엄마한테 더 많은 선택지를 줄 수 있잖아. 네 달은 한국에 있고, 네 달은 상해에 있고, 네 달은 에스토니아에 가 있고 하는 식으로. 엄마가 여행 좋아하시거든.


에스토니아는 왜 가?

에스토니아에 오빠가 있어.


옛날부터 너는 외국 갈 거라고 얘기했었잖아. 오빠도 그렇다고 했었는데. 진짜 그렇게 됐다는 게 신기해.

그니까. 왜 그렇게 됐지?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 관심이 많았거든. 오빠랑 나랑 다 그런 로망이 있었나.


아예 외국에 살게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엄마 친구분들이 신기하다고 그러셔. 애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둘 다 외국에 나가 있냐고. 외국에 있는 만큼 엄마도 같이 살 수 있게 돈을 많이 벌어야 해.


엄마랑 같이 외국에 살게 되면 엄마는 일 안 하시는 거야?

아마 같이 살게 된다면 엄마 퇴직하실 때가 될 거야. 3년 뒤면 퇴직하시거든. 그때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엄마랑 주고 받은 문자


엄마


어머니께 꼭 해드리고 싶은 거 있어?

1번은 치아. 엄마 치아가 많이 안 좋으신데 하려면 대공사를 해야 해. 그래서 지금 못하고 계시는데 엄마 스스로도 콤플렉스가 심하셔. 치아는 건강의 문제니까 꼭 해드리고 싶어. 내가 돈을 벌었으면 진작 해줄 수 있었는데 아직 수입이 없어서 못 해 드리니까 마음이 그렇지.


통증이 있으셔?

모르겠어 말씀을 안 하시니까. 많이 안 좋으신 거 같아. 임플란트랑 몇 가지 치료하면 수백만 원이 드는데, 일하면 몇 달만에도 벌 수 있는 돈이잖아.


시간이 지날수록 안 좋으니까 걱정되겠다.

그니까. 빨리 로또를 사야되는데(웃음) 잇몸이 엄청 안 좋으셔. 그게 참 그렇지. 돈 벌면 금방 해줬을 텐데.


졸업까지 얼마나 남았어?

이제 첫 학기하고 2년 반 남았어. 깜깜해.


또 해드리고 싶은 거 있어?

엄마 검정고시 보는 거. 우리 엄마가 삼촌들 때문에 공부를 못 했어. 삼촌이 2명이니까 삼촌들 학교 보내고, 엄마는 중학교까지만 나왔나 그랬어. 공부를 못한 게 한이 되시나 봐. 그래서 내가 공부하는 것도 다 지지해주신 것 같아.


너는 다하라고 해주시는구나.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 엄마는 아직도 공부 못한 게 아쉬우신가 봐. 검정고시도 보게 해드리고 엄마가 뜻이 있으면 대학도 보내드리고 싶어.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지금 하실 수 있지 않아?

응. 근데 지금은 신경 쓸 것도 많고 공부할 여유가 없지. 할머니도 돌봐야 하고 일도 스케줄이 일정하지 않아.


엄마는 너한테 어떤 존재야?

우리 엄마는 내 절반. 엄마 없는 게 상상이 안 돼. 내가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냥 한 몸 같아.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이 떠나실 때를 상상해 볼 때가 있잖아. 그때가 되게 무섭거든. 평생 같이 있을 수 없으니까.

그니까. 상상만 해도 못 살 것 같아. 계실 때 잘해야지.


맞아. 난 잘되고 싶은 이유가 부모님이 큰 것 같아. 만약에 내가 돈이 많아져도 부모님이 안 계시면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워.

맞아. 나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데.


그치. 돈 없어도 돼. 막 나가는 거 아니야?

마약하고.


노년은 마약으로.

이 고통을 약으로(웃음) 아무튼 엄마는 한 몸이다. 진짜 돈 많이 벌고 싶다. 갈수록 엄마가 자식 같아지는 거 같아. 뭔지 알지? 어디 내보내기도 걱정되고.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좋은 거 해줘야지. 부모 마음이랑 똑같잖아.


예전부터 네가 책임감이 강하다고 느꼈거든. 맏이 같은 느낌이 들어. 어릴 때도 그랬어?

중학교 때부터 조금은 그랬던 거 같아. 초등학교 때는 잘 몰랐고 중학교 때부터 엄마가 힘들어하는 걸 많이 봤지. 그러면서 나는 무조건 효도해야겠다 생각했어. 오빠가 맏이로서 역할을 안 하고 책임감이 없어 보여서 내가 더 그랬던 거 같아. 엄마가 진짜 헌신하는 어머니상 그 자체거든.


너한테?

응. 그리고 내 성격도 받으면 갚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더 그런 거 같아. 진짜 헌신 그 자체야. 너무 감사해. 그렇지 않은 엄마도 많잖아. 우리 엄마는 본인도 힘든데 무조건 지지해주시고 많이 희생하고 계시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나도 부모님 일 안 하셔도 될 정도로 돈 많이 벌면 좋겠다.

그니까. 내 꿈이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퇴직하면 여행 가고 놀러만 다니게 해주는 거야.







인터뷰를 끝내며


인터뷰한 느낌은 어때?

재미있었어. 내 얘기를 줄줄줄줄 한 것 같아. 나는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설명하는 것도 좋아하거든. 근데 평소엔 이렇게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없단 말이야. 우리 엄마도 잘 안 들어줘(웃음) 말이 너무 많으니까. 잘 들어줘서 고마워. 대답하면서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본 것 같아. 평소에는 의식 안 하고 지냈던 부분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어. 스스로에게도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


너 좀 변한 거 같아 옛날이랑?

응.


어떤 면이?

일단은 많이 어두워졌고 내향적으로 변했어. 사람 만나는 거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거를 하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어. 이건 부정적인 변화인데 긍정적인 변화도 있어. 좀 더 행동할 때 선을 지키게 됐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사람들을 대할 때 선을 안 지킨 적이 많았던 거 같아.


어떤 선?

외모로 놀린다거나, 다른 사람 감정은 생각 안 하고 배려 없이 행동한다거나.


진짜?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 그랬어. 요즘 문득문득 그때 생각이 나거든. 마음이 너무 괴로워. 친구들한테 너무 미안해. 왜 그랬을까 싶었던 행동이 되게 많아.


나는 네가 남들을 많이 배려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안 그랬던 거 같아. 내가 생각해도 되게 이상한 애였어. 물에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술자리에서 게임하는데 중간에 앉아서 '나는 게임 안 할게'해서 나 빼고 다른 애들끼리 했어. 그런 비슷한 일이 많아.


나도 가끔 스무 살 때 생각나면 하... 이럴 때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잊거든. 나도 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근데 아마 그 친구들은 나를 생각하면 그 일이 떠오를지도 몰라. 안 좋은 인상을 줘서.


한 두 번이 아니었어?

응 그냥 그때 이상했어. 나만의 세계가 강했고.


그래도 그때 친구들이 너랑 같이 놀아준 것만으로(웃음)

고맙다-! 고맙고 미안했다.


사죄로 끝나는 인터뷰(웃음)

술 게임 안 한 건 약한 스토리고 더 심한 일이 많아. 끊임없이 생각나.


최근 들어 갑자기 생각나는 거야?

요즘 심해졌어. 예전에는 1년에 1~2번 생각났으면 요 며칠은 자꾸 생각나는 거야. 명상해야겠다.







[첨부] 얼마 전에 블로그에 썼던 친구에 관한 글

해외에 있어서 잘 못 보는 친구 L. 친구와 인터뷰를 하면서 친구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스무 살에 친구랑 자주 만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친구가 참 멋있어 보였다. 꿈과 열망을 가지고 그것을 이룰 거라 믿는 모습이 빛났다.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항상 될 거라고 말해주는 친구. 친구랑 있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년에 달나라에 갈 계획이라고 말해도 "아 진짜? 멋있다. 갈 수 있을 거야"라고 진심으로 말해줄 것 같다. 항상 자신의 상황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배우고 싶다. 나는 내 능력이나 경제 상황을 이유로 안 된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면 친구는 자기 상황에서 방법을 찾는다. 나중에 미국 여행을 같이 가자고 얘기했는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결국엔 같이 가게 될 것 같다.



너에 대해 정말 모르는 것 같아


친구가 중국에 간 지 4년이 넘었다. 친하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예전보다 친구에 대해 모른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친구의 일상뿐만 아니라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알지 못했다. 가끔 단체 카톡방에서 얘기를 나누지만 대화하는 시간도 공유하는 것들도 점점 줄어든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 아니라고 믿어 왔는데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인터뷰를 통해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중국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잊고 지내지 않았나 나를 돌아보게 됐다. 인터뷰가 아니라도 종종 진한 대화를 나눌 시간을 만들어 봐야지.




이 얘기를 누가 안 듣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


자기에 대한 말을 많이 해서 기쁘다는 친구를 보니 공감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에 대해 말할 기회가 적어진다. '이런 말을 하면 안 좋아하겠지'하고 안 하는 말이 많은데 친구도 그렇다는 게 신기했다. 말이 적을수록 좋다고 꼭 필요한 말만 하라고 하지만 그런 세상을 그려보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꼭 필요한 말의 기준은 또 무엇일까. 적어도 너랑 나는 아무 말이나 편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그런 용기를 주면 어떨까.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다고.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재미없는 얘기를 해줘. 너무 사소하고 쓸데없다 느껴지는 그런 얘기를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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