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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Feb 12. 2020

내 돈 주고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 날이 오다니

스무 살의 나는 극강의 단맛을 선호했다. 화이트 모카를 시켜놓고 듬뿍 얹은 휘핑크림 앞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무렵 친구들과 초콜릿 카페에 자주 드나들었다. 테이블에 핸드폰 놓을 자리도 없이 초코를 가득시키는 일이 우리의 큰 행복이었다. 초코 브라우니와 초코 퐁듀를 시키고 핫초코를 마시는 과당을 저질렀다.


하지만 사회는 달콤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상사가 꼭 커피를 사주었다. 모두 아메리카노를 외칠 때 화이트 모카를 외칠 수는 없었다. 아메리카노는 2,500원 화이트 모카는 4,500원이었다. 어색한 미소로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시럽을 세 번 뿌렸다. 수박을 주황색으로 칠한다고 호박이 되지 않듯 커피는 쓰기만 했다. 까나리 같은 벌칙 음료를 왜 돈 주고 사 먹는지 알 수 없었다. '저는 오늘 안 마실게요'라며 한두 번 사양했지만, 그것도 눈치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커피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와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한 시간에 한 모금을 겨우 삼켰다. 퇴근 전까지 반도 마시지 못한 아메리카노를 화장실에 버리면 괜히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카페에 갈 때마다 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저는 사주지 마세요!' 공짜 아메리카노보다 내 돈 주고 사 먹는 모카가 훨씬 맛있고 달콤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에 카페에 들렀다.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나오는데 스무 살의 내가 핀잔을 주는 것 같다. '야, 너 아메리카노는 절대 네 돈 주고 안 마신다며!!' 지금의 내가 눈치 보며 대답했다. '어... 그렇게 됐어. 안 좋아하던 것이 좋아지기도 하더라.'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것들이 몇 년 동안 엎치락뒤치락 바뀌었다. 절대 좋아지지 않을 거라 외치던 것이 좋아지고 좋아하던 것이 싫어지기도 했다. 몇 년 동안 절절하게 좋아하던 사람이 싫어지는 때가 오고 절대 친하게 지내지 않을 거라 미워하던 사람을 짝사랑하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시험 문제 중 '절대'가 들어가는 보기가 정답인 경우가 많았던 건 그만큼 절대적인 것이 드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는 어떤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 일 년 후에 무슨 음료를 좋아할지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인생을 예견할 수 있을까. 겸손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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