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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Mar 02. 2020

서른 살까지만 살아야지

스물아홉의 생각

이십 대 초반에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책을 읽고 서른 살까지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너무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살면서 느껴야 하는 책임감이 싫었고 남은 날이 막막하기만 했다. 60살이 넘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고 기쁜 일도 많지만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힘든 일도 많을 테지. 서른 살로 마감일을 정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힘들어도 아, 그래 서른 살까지만 살 건데 뭐.


스물아홉을 맞이하면서 내 마음은 간사하게도 '벌써 스물아홉이야? 나 죽기 싫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삶이 재미없다고 불평을 했으면서 말이다. 때때로 존재론적인 질문이 나를 찾아온다. 나는 왜 사는가. 죽을 이유가 없어서 살 수도 있지만 살 이유가 딱히 없어서 죽을 수도 있지 않은가. 왜 이렇게 우울한 일들만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는 걸까? 왜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없는 걸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시기를 지난 후에 느꼈다. 세상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이대로 죽으면 너무 억울하다고. 작년에는 처음으로 해 본 일들이 많았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갔다. 처음으로 바닷가에서 편지를 썼다. 처음으로 만난 적 없는 분께 인터뷰 요청을 했다. 처음으로 친구 차를 타고 여행을 갔다.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 수많은 처음이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너 아직 못해본 게 많아. 이 세상에 아직 재밌는 일이 많아.'


가만히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많은 곳에 숨어있는 재미를 발견했다. 인생은 정말 짧다. 저명한 학자들도 자기 분야의 100분의 1도 연구하지 못하고 죽는다. 내가 평생 디자인 공부를 해도 색채학 하나도 전부 알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수명을 다 채워 살아도 부족한 인생이다. 이제 다시 그때의 생각을 고쳐먹는다. 서른 살까지 살지 말고 살 수 있을 때까지 살아 보자고. 분명 재미있는 일이 한참 남아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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