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주인공
언젠가부터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그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내 친구는 반 1등에 운동도 잘하고 외모도 눈에 띄는 아이였다. 여자애들도 남자애들도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친구 덕분에 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지만 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나와 친구가 될 생각이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싫어한다기보다 무관심에 가까웠다. 5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반이 바뀌었다. 복도에서 나를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고 친구에게만 인사하는 걸 보았을 때 의심이 맞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내 친구와 놀고 싶어서 나와도 어쩔 수 없이 같이 놀았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그 기억을 잊고 지내다가 인기 있는 친구와 지내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질투보다 슬픔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내비치며 다가오는 아이들. 친구 때문에 잠깐 말할 일이 생겼을 때 나에게 보였던 차가운 태도.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슬펐을까. 그저 나에게 관심이 없었을 뿐인데.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친구가 된 것 같았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친구 옆의 나는 투명해져 있었다.
스무 살이 넘고 나서도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특출난 외모나 능력, 말솜씨를 가지지 못했기에 큰 존재감은 없었다. 사람이 많은 자리에 나갈 때면 이 자리에 있는 의자가 된 것 같다고 자주 생각하곤 했다. 주인공이 되려 애써본 적도 있었다. 조금 꾸미고 다니면 나를 봐줄까 하고 옷을 사고 화장을 했다. 말을 좀 많이 하면 나를 봐줄까 하고 대화 주제를 연구했다. 역부족이었다. 꾸미는 것에도 말을 하는 것에도 소질이 없었다.
얼마 전에, 사람들 모두가 각자 1인칭 시점으로 살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너무 당연하지만 생각해본 적 없는 사실이었다. 게임처럼 시점을 변경할 수도 없다. 다시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알았다. 주인공을 하기 싫어도 나는 평생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걸.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때도,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을 때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중고등학교 때는 전교 1등이, 대학교 때는 과 1등이 되고 싶었고, 졸업 후에는 유명한 회사에 가고 싶었다. 현실은 늘 이상과 엇나가기만 했다. '지금 10등이지만 1등이 될 거야'라는 바람 뒤에는 10등인 나를 부정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항상 현재의 나를 부정했고 이상의 나를 사랑했다. 조금만 더 하면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을 거고 그때는 나에게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상의 나를 만나지 못하면 평생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할지 모른다. 지금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유별나게 잘하는 것이 없어도 삶의 주인공은 변함없이 나니까, 이제는 굳이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