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강사이자 부원장
이름 : 강예나
하는 일 : 영어학원강사이자 부원장
글 쓰는 곳 : http://blog.naver.com/jini00024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나를 인터뷰 하는 기회가 많지 않기에 경험해보고 싶어서
인터뷰에 응하신 이유가 있어요?
텔레비전에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을 종종 하곤 했거든요. 물론 질문의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제 3자가 나를 보는 경험이잖아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처음에는 망설였거든요. 자발적으로 인터뷰 신청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는 나중에 하는 게 낫겠다 했죠. 그런데 유진 씨한테 연락이 와서 '이건 해야 하는 건가? 그래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어떤 부분이 망설여졌어요?
글로 저를 표현할 때도 저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하잖아요. 글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항상 글을 쓰는 데 두려움이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인터뷰는 말로 저를 드러내야 하니까 망설여졌어요. 그래도 <한달자기발견>하면서 이미 오픈했던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라 부담이 조금 덜해요.
예나 님은 어떻게 글을 쓰게 됐어요?
항상 서평을 써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책은 많이 읽는데 서평을 제대로 못 썼어요. 저는 글쓰기가 부족하고 글 쓰는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못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벽을 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달>을 시작한 거예요.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잖아요. 처음에는 진짜 아무 말이나 쓴 것 같아요. <한달자기발견>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깊어지는 거예요. 글 쓰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만큼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칭찬 들으면서 자신감도 생겼고 이제는 목표했던 서평까지 쓰게 됐어요.
글 쓰면서 힘든 점 있었어요?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하지 못해서 힘들었어요.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거랑 정리해서 글로 표현하는 게 다르잖아요. 말은 앞뒤가 잘 맞지 않아도 상대가 잘 알아들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잖아요. 글쓰기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글은 흘러가지 않고 남는 거니까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제 말을 못 알아들으면 듣는 사람이 바로 물어볼 수 있는데 글은 바로 피드백이 오지 않잖아요.
생각이 글로 잘 정리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하셨어요?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써놓고 나중에 다시 정리했어요. 너무 많은 걸 말하려고 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것도 말하고 싶고 저것도 말하고 싶으니까 글이 뒤죽박죽 되는 거예요. 글쓰기 책을 보면 주어와 동사가 가깝게 하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니까 전보다는 정리되는 느낌을 받아요.
[한달자기발견] Day + 05 나를 웃음짓게 하는 것들
- 기차 안에서 창 밖을 보며 좋아하는 음악 들을 때
- 기차 안에서 독서할 때
- 혼자 기차 탔는데 목적지까지 옆에 아무도 앉지 않을 때
- 빡독 당첨됐을 때
- 첫 기차타고 빡독 참여하러 갈 때
원문 : https://blog.naver.com/jini00024/221864124341
빡독이 뭐예요?
'빡세게 독서하자'는 프로그램인데 대교랑 체인지그라운드랑 같이 하는 행사예요.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하루 종일 독서하는 거예요.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서 9시부터 6시까지 읽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에요. 스피치도 하고 신박사님이랑 고영성 작가님이랑 Q&A도 하고 강의도 해요.
기차를 자주 타요? 어떤 이유로요?
제가 사는 곳이 경북 김천인데 기차역이 집에서 가까워요. 원래 차가 없었는데 얼마 전에 구입했거든요. 그래서 기차를 많이 탔어요. 시댁이 서울인데 한 달에 한 번씩 가요. 기차가 아이들이랑 가기에도 편하고 낭만이 있어요. 기차 안에 화장실이 있으니까 아이들 화장실 걱정도 안 해도 되고요. 아이들도 기차 타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는 밤 기차 타고 6시간 걸려서 정동진 갔다 온 적도 있어요. 밤 12시 기차 타고 새벽 6시에 정동진에 도착해서 모래 놀이만 하고 왔어요. 왕복 12시간을 모래 놀이하러 간 거죠. 그런데 애들이 너무 좋아해서 아직도 그 얘기 해요. 그때 엄마랑 기차 타고 갔을 때 좋았다고요.
[한달자기발견] Day + 09 쓰리고(Three Go)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말이 있듯 나의 두 번째 전환점은 결혼이다. 친구들이 얘기하는 내가 만든 명언이 있다. 싱글 친구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나에게 결혼을 해보니 결혼이 어떤 것 같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질문에 나온 대답이 '결혼은 복불복이다' 이다. 아직도 그 친구는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살고 있지만 내가 말했던 그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명언임에 틀림없다. 결혼은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복불복인, 인생의 가장 큰 도박이 되는 것이다. 운 좋게 나는 지금의 좋은 남편을 만났고 나 또한 좋은 아내가 되려 노력하고 있다.
원문 : https://blog.naver.com/jini00024/221870971293
결혼은 왜 복불복이라고 생각하세요?
결혼 안 한 친구가 결혼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냐 물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결혼은 복불복인 것 같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서로 너무 좋아서 결혼해도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거든요. 남자친구일 때는 뭐든 다 해줄 것처럼 해도 결혼하고 나면 어떻게 변할지는 살아봐야 알거든요. 시댁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시댁이 이렇게 편할 줄 몰랐어요.
예나 님은 몇 살 때 결혼하셨어요?
스물여덟에 했는데 되게 좋았어요. 사랑하는 감정 때문에 좋은 것보다 심적으로 많이 편해졌죠. 이런 결혼이었으면 일찍 해도 될 뻔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주위에도 빨리 결혼하라고 너무 재지 말라고 해요. 자기 하기 나름이고 남편 하기 나름이잖아요. 서로 덕 보려고 살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 사람한테 뭘 받으려고 하면 안 돼요. 저도 그렇게 살려고 많이 노력해요.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 저의 안 좋은 성격도 잘 받아주거든요. 그래서 더 고마움을 많이 느껴요.
[한달자기발견] Day + 04 불혹의 인생사
< 7~12세 국민학생 1986 - 1991 >
10살 때 할머니가 막내동생을 보고 계셨는데 4살 동생이 골목에서 뛰어나오다 교통사고 남. 난 그때 사촌언니 집에 있었는데 차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동생이 도로 한복판에 누워 있어서 너무 충격이었음.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함. 부모님은 그 때 큰엄마 병문안을 가셨을 때였는데 동네 사람들이 도와줘서 병원으로 급하게 이동. 장파열로 조금만 늦었으면 죽을 뻔 했다고 함. 할머니는 죄책감에 동생이 잘못됐음 절에 들어가시려고 했다고 함. 내가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워보니 부모님, 할머니 모두 얼마나 마음 졸이고 아프셨을지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픔
< 28 ~ 38세 결혼과 출산 그리고 필리핀 2008 - 2017 >
결혼 얘기하려면 특차로 대학교 합격하고 마음 편히 놀면서 하이텔 통신하던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함. 그 때 채팅에서 만난 서울 남자가 지금의 남편임. 그 당시 한창 '접속'이란 영화가 인기였는데 우린 결혼했으니 성공한 케이스임. 통신에서 만난 그 놈(응?)은 서울에 있고 난 그 때 창원에 있었고 삐삐와 전화통화로 소통을 이어가다 나는 필리핀으로 감. 초반에 연락이 조금 이어지다 끊기고 5년 동안 연락 없다 이메일로 다시 연결됨. 그러고 한국에 와서 만나게 됨. 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고 결혼 생각도 없었기에 그거 알고도 좋으면 만나보자 했었는데 사귄지 6개월 만에 결혼함. 뭐지 또? 이 어이없음은?
원문 : https://blog.naver.com/jini00024/221862607147
아이들이 아프면 많이 걱정돼요? 자신이 아픈 거랑은 달라요?
제가 아픈 건 스스로 얼마나 아픈지 알잖아요. 아이들은 아픈 걸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요. 그래서 더 걱정되는 것도 있어요. 제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애를 키워보니까 부모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제가 아팠을 때 부모님 얼마나 마음이 그랬을까 하고요. 막내 동생 사고 났을 때 기억이 생생한데 부모님이 얼마나 무서우셨을지 이해가 가요.
결혼 생각이 없던 시기에 6개월 만난 분과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남편을 통신에서 만났어요. 하이텔, 천리안 이런 거 아시나요? 친구로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제가 필리핀에 오래 살다가 한국에 들어오고 만나게 됐거든요. 저는 유학 준비하고 있었어요. 예전부터 남편은 저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는데 서울 남자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별로 안 좋아했어요. 서울 남자는 이기적이다, 자기밖에 모른다, 깍쟁이다 이런 거 있잖아요. 남편한테 그런 점이 약간 보여서 싫었어요.
그래서 친구로 지냈었는데, 오래전부터 배우자 볼 때 가정 분위기를 되게 중요시했거든요. 남편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 뭐 가지러 가는데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해서 잠깐 들어갔거든요. 우연히 부모님을 뵀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일부러 계획한 거였어요. 그 당시만 해도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될지 몰랐죠. 가족 관계가 되게 좋아 보였어요. 저희 가족 분위기랑 잘 맞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 와서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어요.
결혼은 타이밍이라는 말에 동의하세요?
타이밍도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설레고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고 그래야 결혼한다고 하는데 저는 안 그랬어요. 남편에 대한 두근거림은 크게 없었어요. 박자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필리핀에 있던 아빠가 들어오셨는데 남편을 만나는 당시에 한번 보자 해서 아빠랑 남편이 만났어요. 그러면서 시아버지를 만나게 된 거예요. 아버님들끼리 서로 술 한잔하셨어요.
저는 결혼 안 하려고 했어요. 특히 아빠가 결혼하게 하려고 미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네가 이런 사람이랑 결혼해야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셨대요. 좋은 사람 같아서 밀어붙인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아빠한테 감사하죠.
나중에는 확신이 생겼어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어느 순간 남편 보면서 이 정도면 결혼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딱 왔어요. '결혼 한번 해보면 돼지.' 그랬더니 친구들이 어이없다고 했는데 지금 제가 제일 잘 살아요.(웃음) 두근거림은 없었지만 남편이랑 살수록 좋은 것 같아요. 점점 좋아져요. 설렘은 오래가지 않잖아요.
[한달자기발견] Day + 03 왜 맨날 나만...
7살이 되도록 엄지 손가락을 그렇게 빨아댔던 난 애정결핍이 있던 아이였다. 피가 날 때까지 손톱을 물어 뜯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나는 내가 화가 많은 이유, 눈물이 많은 이유, 식탐이 많은 이유, 무뚝뚝한 이유, 둘째가 태어났을 때 둘째가 이쁜 것보다 첫째가 너무 짠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던 이유 등등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던 그런 부분들이 나의 초감정에서 오게 되었다는 걸 심리책을 통해, 육아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이미 알고 있었는데 오늘 질문에 대한 답을 왜 그렇게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여서? 얘기하고 나니 속이 이렇게나 시원한데?? 진작 얘기할 걸...)
(중략) 난 다행이도 지금 좋은 시부모님을 만나 '날라리며느리'로 살고 있지만 그 당시 엄마는 힘겨운 시집살이로 쌓여있는 화를 나에게 표출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 안되는지 알면서도 힘든 날엔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이 그러고 있는 거 보면 엄마가 조금 이해 되기도 한다.
(중략) 아이들이 애정결핍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도록 사랑을 듬뿍 주자.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도록 해야겠다. 사과를 해야 할 때는 정식으로 용서를 구하는 엄마가 되야겠다. 나도 모르게 하는 말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안다. 난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까 너무 어색해서 영혼이 안드로메다로 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처음이 힘들지 하다보면 익숙해져서 습관처럼 몸에 익을 것이다. 자기계발 한답시고 아이들은 그냥 놀게 하고 내 할 일 하느라 바쁜 요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가지도록 해야겠다.
원문 : https://blog.naver.com/jini00024/221860554087
블로그 닉네임인 '날라리며느리'의 뜻을 알고 싶어요.
말 그대로 며느리로서 날라리 라이프를 살고 있어요. 좋은 시댁을 만나서 스트레스가 전혀 없어요. 옛날부터 결혼하면 시부모님이 허락하신다는 전제하에 최소 1년은 분가 안 하고 같이 살고 싶었거든요. 가족이 되면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야 친해지잖아요. 친해지지 않으면 나중에 시댁 갈 때마다 어색하잖아요. 처음엔 불편해도 익숙해지지 않을까 해서 같이 살았어요. 운 좋게 저는 정말 편하게 살았어요. 어머님이 밥도 해주시고 빨래도 해주시고 저는 설거지만 했어요. 그때부터 저는 날라리 며느리 라이프를 살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설거지라도 했는데 요즘에는 시댁 가면 어머니가 설거지도 다 해주세요. 아이들 밥 먹이고 있으면 빨리해 버리세요. 어머님이 손도 빠르시고. 제가 약간 답답해서 그런가?(웃음) 설거지는 잘한다고 자부하는데.
스스로 지은 별명이에요?
네. 시어머니한테도 말씀드렸어요. 어머니가 설거지도 안 시키고 아무것도 못 하게 하니까 인터넷에서 제 닉네임이 날라리며느리라고요. 어머님이 막 웃으시면서 '그래 넌 날라리로 살아라~' 하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해요.
자신이 첫째이기 때문에 첫째한테 더 마음이 많이 쓰이는 거예요?
네. 제가 남동생이 둘 있거든요. 첫째라 항상 모범을 보이고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네가 누나니까', '네가 장녀니까'라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첫째의 무게 같은 게 저도 모르게 생긴 거죠. 아이가 저처럼 느낄까 봐 짠한 마음이 있어요. '너는 첫째니까', '너는 오빠니까'라는 말을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저도 모르게 할 때가 있어요. '오빠니까 양보해야지.'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아차 싶거든요. 그래도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두 아이를 편애하지 않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편애하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둘째가 무조건 예쁘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는 안 그랬거든요. 첫째가 짠하고 더 마음이 쓰여요. 웬만하면 싸우더라도 중립을 지키려고 해요. 저희끼리 정한 규칙이 있어요. 엄마가 오빠를 더 사랑해서 또는 동생을 사랑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그래서 규칙을 더 상세하게 정했어요. 장난감 같은 물건을 다른 아이에게 줄 때 꼭 물어보고 줘요. 항상 그런 거로 싸우거든요. '이거 내 거야 내거.', '엄마 이거 내 껀데 오빠가 물어보지도 않고 가져갔어.' 하고요.
아이들이 규칙을 알아요?
네. 7살이고 9살이라 알아듣는 나이니까요. 애들이 보는 앞에서는 한 명한테 뽀뽀하면 다른 아이한테도 뽀뽀하려고 해요. 딸래미는 질투를 많이 해서 오빠를 안고 있으면 자기도 안아 달라고 얘기하거든요. 한 아이만 데리고 나가거나 한 아이하고만 같이 있을 시간이 있잖아요. 그때는 표현도 많이 해주고 엄마 자식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려고 해요. 사실 저희도 그렇잖아요. 엄마아빠한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이 세상 무서울 게 없잖아요. 제가 무뚝뚝한 경상도 여자거든요. 애정표현을 많이 받지 않고 자라서 표현하는 게 어색하더라고요.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나 님은 자식으로서 나보다 동생들한테 더 잘해준다고 느낀 적 있었어요?
완전 많았죠. 엄마아빠는 그러지 않으셨는데 할머니랑 같이 살았거든요. 저는 딸이었고 동생들은 다 남자였는데 할머니가 특히 바로 밑에 동생을 되게 예뻐하셨어요. 차별을 많이 받았죠. <한달자기발견> 글 쓸 때도 그 이야기를 적으면서 울컥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시대가 그랬고 크면서 조금 이해하긴 했는데 당시에는 억울했어요.
그런데 웃긴 게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잖아요. 시댁에서는 저희 아들을 되게 좋아하고 친정에서는 저희 딸을 되게 좋아하세요. 그래서 너무 대놓고 그러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잘 안 되시나 봐요.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다 똑같이 사랑하지 않나요. 누가 더 예쁘고 그런 마음이 있을까요?
있어요. 둘 중에 누구 한 명이 더 예쁜 짓을 한다거나 하면 더 예뻐 보이기도 하고요. 질투하고 욕심부리고 하면 싫은 건 아니지만 밉죠. 내 자식이지만 얄미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아이들은 다른 형제에 대한 질투가 있어요?
특히 둘째가 질투가 많아요. 욕심도 많고 오빠한테 안 뺏기려고 해요. 얼마 전에 <둘째는 다르다> 책을 읽었거든요. 딸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아빠 사랑을 듬뿍 받는데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가로막고 있는 첫째가 있잖아요. 부모 사랑의 반을 뺏어와야 하는 심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치열하다고요. 마음이 짠했어요. 저는 첫째라서 첫째한테 감정이입이 됐지만 둘째 마음은 잘 모르잖아요. 그 책을 읽으면서 반성도 많이 하고 아이가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니까 훨씬 마음이 너그러워지더라고요.
자기 계발하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가 있었어요?
항상이요. 특히 <한달자기발견> 할 때 그랬어요. 글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한달자기발견> 글을 써야 했거든요. 아이들이 와도 글 써야 하니까 오지 말라고 했는데 죄책감이 있었어요. 사실 이게 먼저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글쓰기도 제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니까 한 달 동안은 글쓰기에 집중하고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애들이랑 놀아줘야지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했어요. 글 쓰는데 애들이 오거나 싸우면 짜증 내거나 화낼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균형을 잘 맞추고 사는 것 같아요. 이제 새벽 시간에 글을 써요. 저녁에는 퇴근하고 오면 애들이랑만 놀아요. 그러니까 화내거나 짜증 낼 일도 없어졌어요. 아들이 중국어 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예전에 <하루 한 문장 중국어>를 혼자 공부하려고 계획했는데 아이가 더 관심을 가져서 저보다 더 잘해요. 중국어는 항상 같이해요. <한달자기발견>이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 시기를 지나면서 시간 관리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한달자기발견] Day + 02 내 인생을 한 문장으로..
나의 지나온 인생을 아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렇게 심한 롤러코스터를 탄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라갈 때는 천천히 올라가다가 내려올 때는 몇 배의 속도로 툭 떨어지는 느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의 관계, 학업, 입시 문제로 롤러코스터를 탔고 성인이 되어서는 학창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한 문제들로 롤러코스터를 탔었다. 사실 지금도 롤러코스터 안에 있다. 쭈욱 내려가다가 이제 조금씩 오르막 길에 오른 것 같다. 다시는 내려가는 코스가 없기를 바라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일테고 다만 경사가 심하지 않길 바란다. 가장 큰 난코스였던 건 결혼하고 우리 부부에게 전 재산이었던 전세 자금을 사기 당했을 때였다. 그 문제로 아직 재정적인 문제로 허덕이고 있지만 성실하고 긍정적인 남편과 열심히 살고 있는 덕에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돈을 잃은 대신 토끼같은 아이들을 얻었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희망이 있기에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다. 오히려 힘든 과정 속에 있기에 자유도 더 느끼고 즐거움도 더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원문 : https://blog.naver.com/jini00024/221858656528
삶의 가장 큰 난코스라고 적으신 전세 자금 사기를 당한 일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어요?
저의 무지에서 온 일이었어요.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한국에 왔거든요. 신랑도 집을 사 본 적이 없었어요. 부동산만 믿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었고 다른 신혼부부도 같은 주인한테 당했어요. 그 부부는 부동산에 대해 정말 잘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분들도 사기를 당하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위로가 되더라고요. 제가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알았어도 당할 수 있었겠다 하고요. 나중에 형사 구속까지 갔어요. 도망갔는데 잡아서 실형 살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돈은 못 받았어요.
그 당시에는 어떤 감정을 느꼈어요?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장난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걸 느꼈을 때는 저한테 그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해졌던 것 같아요. 제가 눈물도 많고 작은 일에도 되게 감정적이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큰일 앞에서는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저 자신한테 깜짝 놀랐어요.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신기해요. 그때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미 내 손을 떠난 걸 계속 생각하면 시간 낭비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이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한참 후에 좌절, 분노, 우울 같은 감정이 오긴 했어요. 그렇다고 울거나 하지는 않았는데요. 살다가 경제적인 부분에서 힘들면 생각이 나죠. '그 돈만 있으면 지금 이러고 안 살 텐데' 하고요. 금방 또 현실로 돌아와요. 후회하면 뭐하나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그 일을 어떻게 바라봐요? 그 일을 통해 배운 점이 있어요?
아직도 한 번씩 남편이랑 그 일에 대해 얘기해요. 남편도 저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그런 일을 겪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한 번씩 힘들 때 그 얘기를 꺼내면 '그래도 우리한테는 승우가 있잖아.'라고 해요. 아기가 안 생기다가 그 일 있고 나서 아기가 생겼어요. 잃은 돈이랑 아들이랑 바꿨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인생 사는데 필요한 일을 치렀다고 생각해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잖아요. 남편이 한 말 중에 가장 위로됐던 게 가족 중의 누가 건강으로 돈이 나가거나 문제가 생기진 않았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자고 하더라고요. 건강이 아니라 돈을 잃는 게 훨씬 낫잖아요. 매몰되어 있으면 힘들잖아요. 계속 후회하고 과거에 집착하게 되고요. 좋게 좋게 생각하는 게 저랑 신랑의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그리고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믿음이 생겼어요. 서로 원망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러지 않았던 거에 감사하죠. 그때를 계기로 더 열심히 살게 된 것 같아요. 조그만 일에도 감사하게 됐어요.
[한달자기발견] Day + 19 완벽한 삶보다 조화로운 삶을 살자.
| 당신의 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내가 일을 함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과 '인정 받으려는 욕구'이다. 누구든 실수를 하고, 실수를 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실수하기를 두려워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실수인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편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하고 망설이는 시간이 많이 줄었고, 되도록이면 많은 걸 도전하려 한다. 일단 시작해보고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더 나은 방법들을 찾아간다. 물론 완벽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기준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완벽해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꼭 한번 망설이게 만드는 요소이다.
|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얻어지는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완벽해야 하고 인정 받아야 한다는 나의 욕심이 아이들과 일 사이의 문제를 항상 갈등하게 한다는 것을 글로 써보니 알게 되었다. 엄청난 깨달음이다. 완벽한 엄마이고 싶고, 업무에 있어서도 완벽한 부원장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태 나를 짓누르고 있었음을 알았다. 엄마인 나, 부원장인 나, 자기 계발을 하는 나로 균형있게 살기 위해 지혜롭고 영리한 강예나가 되자고 결심해 본다.
원문 : https://blog.naver.com/jini00024/221889012762
실수하는 게 두려웠던 이유가 있어요?
인정받고 싶어서요. 남에게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잖아요. 내 능력이 높다는 걸 은연중에 보여주고 싶은 심리. 그 당시에는 그랬어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글을 쓰고 저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무언가를 시작하기 두려워할까 이런 걸 깊이 관찰해봤어요. 원인을 알고 나니까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였던 것 같아요. 잘 보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어떤 일을 맡았을 때 책임감이 엄청 커요. 이거 잘해야 하는데, 실수하면 안 되는데 하고요. 그런 감정이 남한테 민폐를 안 끼치고 싶은 마음에서 오더라고요.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아요. 아기가 어렸을 때 밖에 거의 안 나갔어요. 아기가 언제 어떻게 울지 모르잖아요. 사람들이 카페에 쉬러 왔는데 아이가 울면 그 사람들의 기분을 망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어요?
실수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잖아요. 실수하는 게 두려워서 준비하는 시간이 엄청 걸렸거든요.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하니까요. 이제는 안 그러려고 해요. 실수하더라도 일단 시작하고 고쳐나가려고 해요. <결단>이라는 책을 봤는데 꽂힌 문장이 있어요. '일단 시작해라. 그리고 나중에 완벽해져라.' 그 말이 되게 와 닿았거든요. 그러면서 서서히 조금씩 놓게 된 것 같아요. 일할 때도 그래요. 계획을 완벽하게 다 하고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러면 시작도 못하더라고요. 내가 만족이 안 되니까 계속 미뤄지고 핑계만 대요. 요즘은 일단 해보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해보려고 많이 시도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꿈꾸는 완벽한 부원장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에요?
영어학원이지만 우리 학원에 오는 아이들이 영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거든요. 애들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나쁜 말을 쓰거나 약은 행동을 하기도 하고요. 바른 어린이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엄마들이 이 학원에 오면 영어만 배우는 게 아니라 부원장님이 애들도 잘 케어해주신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모님들이 아이를 키우다가 고민 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리고 싶어요. 홍보 안 해도 학부모님이랑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 있는 학원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그렇게 하려면 제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처음에는 되게 긴장됐는데 나중에는 봇물 터지듯 말이 나왔어요. 제대로 말한 건가 싶을 정도로 앞뒤가 안 맞는 말도 한 것 같은데 정리해 준다고 하셔서 믿고 막 말한 것 같아요.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건 좀 더 말할 걸, 이건 얘기하지 말 걸 하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수정할 기회도 주신다고 하셨으니 괜찮아요. 좋은 추억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2. 삶에서 힘든 고비는 오기 마련이다. 힘든 시간이 절대 오지 않도록 비는 게 아니라 그 갈등을 같이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긍정적인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아주 작은 것에도 부정적인 감정을 크게 표출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작은 갈등도 풀기 힘들 것이다. 긍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난다면 힘든 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3. 왕복 12시간을 기차 타고 모래놀이만 하고 왔다는 이야기에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낭만은 효율에서 오는 게 아닌 듯하다. 일에서는 효율을 따지는 게 맞지만, 놀 때나 여행 갈 때도 효율을 따지지 않았나 돌아보게 됐다. 더 오래 걸리는 코스라도 그 과정이 만족스러운 시간이 될 수 있다면 그쪽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 뭐든지 완료와 효율에 목표를 두고 산 건 아닐까. 여행은 완주가 아니었는데. 삶에 있어서도 효율을 따지기보다는 감정적으로 풍요로운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 친구들을 만날 때도 그 시간 자체가 즐거운 느낌을 남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