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션그래픽 디자이너 취업준비생
이름 : 율빛
생일 : 5.29 오늘은 율빛님 생일입니다! HAPPY BIRTHDAY:)
하는 일 : 모션그래픽 디자이너 취업준비생
글 쓰는 곳 : https://blog.naver.com/starryuri
나에 대해 이야기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도전해보고 싶어서 신청합니다.
왜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누군가한테 내 이야기를 인터뷰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한달>을 통해서 제 생각도 정리되고 저도 많이 알아가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걸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 친구들한테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쓸데없는 TMI는 많이 해요. 방탄소년단 팬이라 방탄소년단 이야기 많이 해요.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잘하는데 정작 제 속 이야기는 잘 안 하려고 드는 면이 있어요.
친구들에게 속 이야기를 잘 안 하는 것 같다는 말 들은 적 있어요?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야기할 상황이 오면 솔직하게 말하긴 해요. 친구들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데 저한테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이야기 들어주다 보면 제 이야기는 안 하게 돼요. 정말 친한 친구한테는 이야기하는데 그런 친구가 아니면 잘 안 해요.
글을 쓰는 이유가 있어요?
제 생각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선님 브런치 통해서 <반달쓰기> 모집하는 걸 알게 돼서 글 한번 써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했어요. 글 쓰면서 생각도 많이 정리되고 저에 대해 많이 알아가는 것 같아서 잘했다고 생각해요.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힘든 건 없었어요?
나쁜 기억을 끄집어내야 할 때요. <한달자기발견>을 통해 약점이나 과거에 안 좋았던 일을 적으면서 힘들었는데 그때 빼고는 수월 했던 것 같아요.
글에 드러낼까 말까 망설여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하는 편이에요?
드러낼 거면 확실하게 드러내고 드러내지 못할 건 아예 언급을 안 해요.
지금까지는 쓰지 않았지만 앞으로 쓰고 싶은 글 있어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직하게 되면 관련 주제로 글을 써 보고 싶어요. 비전공자로서 디자인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는데 그 과정에 대해 글을 연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컬러리스트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생각한 건데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컬러를 분석하는 글도 써보고 싶어요.
블로그 닉네임인 율빛의 뜻이 궁금해요.
제 이름이 유리잖아요. 유리+빛을 줄인 거예요. 친한 친구들은 저를 율이라고 한 글자로 줄여서 부르거든요. 제가 별이나 달, 은하수 같은 걸 좋아해요.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점을 찾다 보니까 빛이 있었어요. 저도 저만의 빛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율빛으로 정했어요.
[한달자기발견 DAY2] 지금까지 살아온 당신의 인생을 크게 구분한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개인면담을 통해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을 아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다. 1학년 여름방학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돌아온 나에게 '먼저 와서 인사를 했어야 했다.' 라는 걸 알려주셨다. 나는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몰랐고, 왜 그래야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도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었는데, 2학년이 되고 그 선생님이 내가 있는 반 수업에 들어오시게 됐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외동으로 태어난 것들은 참 싸가지가 없다' 라는 말이었다. 정말 실망해서 그 뒤로 만나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 고2, 고3 입시상담을 통해 나는 왜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 선생님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늘 물었던 이유는 '경쟁'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 처음 입학한 대학교의 강압적인 소속감 부여방식과 내 생각과 다른 과정전개로 고민 끝에 자퇴했다. 이 때 부모님은 만류했지만, 나는 완강히 밀고 나갔고 처음으로 엄마가 나때문에 우는 걸 봤다.
- 졸업 후 사실 2군데의 회사를 다녔었는데, 한 곳은 나의 미숙함으로 팀원들과 오해와 갈등이 쌓여 퇴사를 했다. 그리고 한 곳은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의 회사라 바로 퇴사하게 됐다.
자기분석 : 나는 강압적이고 보수적인 스타일의 회사와 사람을 싫어한다.
원문 : https://blog.naver.com/starryuri/221942184633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외동으로 태어난 것들을 참 싸가지가 없다'고 말했잖아요. 사회에서 외동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생각해요?
늘 있다고 생각했어요. 외동이라는 말을 안 하면 남들은 제가 맏이인 줄 알아요. 외동이라고 말하면 혼자니까 사랑 듬뿍 받고 귀하게 자랐겠다는 말을 많이 해요. 외동은 되게 이기적이라는 말도 들었고 그런 편견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는 신경이 안 쓰였어요. 중고등 학생이 되면서 특히 선생님이 그 말을 한 계기로 정말 많이 신경 쓰게 됐죠.
고등학교 때 저 말고 다른 외동인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도 선생님을 서운하게 했나 봐요. 저 같은 경우는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말을 못 한 거였는데 그 친구는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어요. 하필 저랑 그 친구랑 같은 반이었거든요. 갑자기 저희 반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시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저도 외동이라 귀하게 자랐겠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외동이니까 이기적이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는 대놓고 안 하지 않아요?
중학교 때 애들한테 대놓고 들은 적이 있어요. 회사 다니면서도 외동이라 말하면 '전혀 몰랐는데 외동이였구나.'라고 말해요. 아직도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많이 털어냈어요. 제가 외동인 거랑 다른 사람들이랑은 상관없으니까요.
외동에 대한 편견을 들으면 보통 어떻게 반응해요?
'그거 그냥 네 편견이야'라고 말하죠. 내가 언제 너한테 그렇게 행동한 적 있냐고요. 외동이라는 단어 자체에 담긴 편견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외동에 늦둥이였거든요. 그래서 다른 외동 애들보다 조금 더 심했던 것 같아요. 늦둥이니까 진짜 귀하게 자랐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전혀 아니거든요.
대학교에 강압적인 소속방식이 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일이 있었어요?
제가 다녔던 대학교가 기독교 채플 학교인데도 군기가 되게 셌어요. 신입생들 군기를 많이 잡아요. 학교 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면 되는데 군기 잡아서 1학년 전원을 다 참석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제 의사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우리 학과에 들어왔으니까 해야 한다는 식이었어요. 학과도 제가 생각했던 커리큘럼이 아니었거든요.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과정이었어요. 그런데 강압적으로 소속감까지 부여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학교를 나왔어요.
전 회사도 보수적이고 강압적이었다고 했는데 어떤 일이 있었어요?
여기도 비슷했는데 더 심했어요. 90도 인사하고 정장 입어야 하고 회식은 당연히 가야 하고 술은 많이 먹어야 하고요. 결정적으로 대표의 가족들이 회사의 임원이었는데 그들이 속한 팀은 절대 건들면 안 돼요.
가족들이 직원이에요?
임원이자 직원이에요. 그 직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팀에 뭔가 잘못된 게 있어도 아무 말도 하면 안 돼요. 제 입장에서는 잘못된 게 있으면 당연히 수정해야 하니까 말했는데 되려 제가 팀장님한테 많이 혼났어요. 그 가족들의 팀에서 일어난 일은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왜 네가 나서서 수정하냐고 하더라고요.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곳에 있을 때 어떤 점이 힘들었어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도 무조건 그걸 따라야만 하는 거요. 잘못된 게 있어도 부당한 규칙에 의해서 당연하게 여겨지잖아요. 아예 소통하지 않으려고 하고 무조건 윽박질렀어요. '그냥 너는 내 말만 따르면 되지 무슨 말이 많아'라는 식이었어요.
[한달자기발견 DAY0] 당신은 누구인가요?
회사를 퇴사하고 나선 영상프로그램을 배워 다른 회사의 OAP팀에 입사했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모션그래픽에 눈을 떴다. A to Z까지 내 손이 안 닿는 곳이 없고, 내가 만들어낸 오브젝트들에게 움직임을 준다는 것에 나는 흥미를 느꼈다. 마치 내가 신이 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퇴사 후 같이 일하던 대리님이 알려주신 모션그래픽학원을 다니면서 모션그래픽을 배웠고,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6년간의 회사생활 후 내게 남은 건 바닥난 자존감, 그리고 스트레스로 인한 메니에르병이었다.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계약직이라는 현실 앞에서 새장에 갇힌 새처럼 내 앞에 놓인 한계가 많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래서 나를 바로 세우는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결정하게 된 건 청바람의 힘이 가장 컸다.
(중략) 한달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배웠다면 이번에는 같이 참여하고 있는 친구 은하의 추천과 2년 전 퇴사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한달자기발견을 신청하게 되었다.
원문 : https://blog.naver.com/starryuri/221938549078
'신이 된 느낌'이라는 표현이 귀여워요. 모션그래픽을 하면서 왜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모션을 준다는 게 움직임의 시작과 끝을 주는 거거든요. 제가 지정한 위치에 프레임을 심은 대로 움직여요. 인형극 할 때 인형들이 줄에 매달려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만든 오브젝트를 인형극 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제가 상상한 세상을 그리고 움직임을 주니까 신이 된 기분이 들었어요. 학원에서 이 생각을 하면서 혼자 실실거리니까 선생님이 이상하게 쳐다보셨어요.(웃음)
6년간의 회사 생활 후 어떤 이유로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제가 지금까지 6년 동안 다닌 회사가 전부 계약직이었어요. 근데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계약 만료 시즌에 늘 나와야 했어요.
회사 자체가 그런 거예요?
네. 당연한 거예요. 2년 하면 계약 만료되고 정규직 전환은 거의 없어요. 한 회사 안에서 파견 회사 계약직으로 2년, 자체 계약직으로 2년을 있었어요. 4년 동안 일하고 자체 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었을 때 팀장님이 '네가 하는 일은 전문적인 일이 아니라서 누구든 대체가 가능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일하면서 팀원들이랑 갈등이 있었고 교대 근무로 체력적인 한계도 있었어요. 그런 스트레스가 같이 오니까 점점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회사 나올 때 말고 회사 다니는 2년 동안에도 차별이 있었어요?
4년을 다녔던 회사는 겉으로 보이는 차별은 없었어요. 제 이야기도 다 들어주는 곳이었어요. 다음에 2년을 다녔던 회사는 정규 회의를 들어갈 수 없었어요. 정규직 직원분들만 회의하고 저는 그 회의의 결과만 통보 받았어요. 그리고 상여금도 차이가 많았고 급여가 정규직의 절반이에요. 제가 어떤 걸 하고 싶다고 말하면 '너는 이 회사 사람이 아니잖아'라고 선을 그어버린 적도 있어요. 같을 일을 해도 저는 이 회사 사람이 아닌 거예요. 이 회사에서 퇴사할 때도 전 회사랑 똑같이 대체 가능한 인력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정규직이나 계약직이나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대체 가능하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가요.
우선 계약직은 정규직보다 급여가 낮아요. 그런데 계약직도 경력이 쌓이면 급여를 높여줘야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도 시켜줘야해요. 근데 정규직 전환은 절차도 많고 급여도 많이 올라버리니까 회사입장에선 별로에요. 그래서 계약만료되면 그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운 계약직을 뽑아 낮은 급여를 유지하려고 하는거죠.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은 아예 안 줘요?
늘 그런 얘기는 했어요. '열심히 하니까 좀 있으면 정규직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 번도 이뤄진 적은 없어요. 계약 끝날 때쯤 되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가고 '네가 하는 일은 전문적이지 않다. 너는 대체가 가능하다고 생각해'라고 말했어요.
앞으로는 계약직 하기 싫어요?
그쵸. 6년이나 했는데 저한테 돌아오는 건 없었으니까요. 일을 하면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정규직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저를 깎아내려 버리니까 계약직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왜 퇴사 기점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어요?
퇴사 당시에는 자존감이 바닥이었어요. 그때는 사람들 말에 잘 휩쓸리고 주관이 없었어요.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거죠. 이렇게 살다가는 제가 진짜 죽겠다 싶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변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당시의 나하고 지금의 나하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내가 원하는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지 보고 싶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제가 원하는 저의 모습을 찾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변한 것 같아요?
우선은 제 주관이 뚜렷해졌어요. 2년 전에는 남들이 한 마디 하면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갔거든요. 지금은 들을 말만 듣고 제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걸러내요. 전보다 스스로가 훨씬 단단해진 느낌이 들어요.
이전에는 자신에게 오는 부정적인 얘기를 다 받아들였어요? 예를 들면 일을 못 한다던가
상사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나는 그런 사람인가보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집에 와서 밤새도록 울어본 적도 있고 그런 비슷한 일이 많았어요. 지금은 그 사람이랑 나랑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남의 말이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쵸. 당시에는 나보다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나를 그렇게 보면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래서 뭐.이게 나인데' 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퇴사한 지 2년이 지났는데 불안함은 없어요?
불안함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인 것 같아요. 불안함은 20% 정도. 경제적으로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집에서 눈치도 보이고요. 그런데 저를 찾는 공부도 하고 제가 하고 싶은 걸 배우고 특히 이번에 <한달자기발견>을 통해서 제가 가진 장점을 많이 찾았어요. 알게 모르게 저에 대한 믿음이 많이 늘었어요. '나는 뭐든 하겠지'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한달자기발견 DAY1]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고 있나요?
처음부터 나 자신으로 살고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30대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나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 아마 지난 2년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죽어가는 나를 외면한 채 남의 프레임에 날 맞추기 위해 날 죽이고 있었을거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남들과 다른 환경이었다. 또래애들의 부모님과 약 20살 정도 차이가 나는 부모님의 밑에서 태어났다. 바꿔말하면 늦둥이에, 하나뿐인 외동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 정말 귀하게 자라셨네요.' 라고 이야기하는데 전혀 아니다. 하나뿐인 딸이 개념없이 자랄까봐 더 엄하게 키우셨기 때문이다. 이런 부모님 덕분에 나는 착하게 자랐으나 정작 나보다는 남을 우선하는 사람이 되었다.
심리상담을 통해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엄하게 받아온 훈육으로 억압된 환경 탓에 나를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상담사의 권유와 나를 좋게 봐주시던 선배들의 도움으로 천주교를 선택했다. 이 때 처음으로 에밀리 스미스가 말한 초월을 경험했다. 세례를 받기 전, 성당에 들어서는 나에게 큰 빛이 쏟아지는 꿈을 꾸었고, 예전같았으면 신경썼을 일들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이, 이런 나에게도 좋은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 때부터 나를 좀 알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30살에 가장 큰 일을 겪게 되면서 멘탈이 무너졌다.당시에는 진짜 세상 살고 싶지도 않았던 일이지만, 결국 그 일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돌아보면 결국 이 때도 내가 제대로 서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말에 휩쓸린 게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2년 전, 마지막 회사를 퇴사할 쯤에 나는 나를 제대로 공부하고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직장을 찾지 않고 나를 위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 다시 돌아가도 이런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면 2년이란 시간을 통해 나를 찾았고, 내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블로그 인사말에도 썼듯이 나는 내가 느끼고 배운 것들을 기반으로 영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싶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제야 나로써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원문 : https://blog.naver.com/starryuri/221939810361
자신보다 남을 우선하는 사람이라고 느낀 계기가 있었어요?
저는 <ITZY-워너비> 노래 너무 좋아해요. 가사가 그거거든요. '너희들이 뭐라 하든 내 삶 내가 살 거니까 신경 꺼' 제가 느낀 계기는 어느 날부터 스스로 너무 지쳤어요. 외동이니까 어릴 때부터 엇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부모님께서 훈육을 엄하게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자꾸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는 거예요. 제 생각과 다른 의견으로 가도 다수결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의견을 이야기 안 했어요. 그걸 되게 힘들어했어요.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을 때 무엇이 두려운 거예요?
제 의견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듣거나 타박이나 구박을 받을 것 같아서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경험을 했거든요. 다른 사람도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야기를 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유리 님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신 건가요?
네. 조금 많이 했어요. '네가 그럼 그렇지. 네가 그걸 한다고?'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막상 해내면 아무 말도 안 하세요. 아무래도 옛날 분들이니까 어렵게 사셔서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시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과 다르게 낙천적인 사람이거든요. 낙천적으로 태어난 애가 자꾸 부정적인 말을 듣고 자라니까 힘들었어요. 제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려움이 되더라고요. 제 의견을 이야기하면 혹시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심리 상담을 받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처음 심리상담을 받을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들하고 갈등이 되게 심했어요. 일했던 동료들 중에 같이 학교 다닌 친구들이 있었어요. 이 친구들이랑 개인적인 일로 생긴 감정이 업무적인 갈등으로 확대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메니에르 판정을 받으면서 의사선생님께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해소하라고 하시는데, 저 혼자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방법을 찾다 찾다 심리 상담을 갔어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심리 상담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지가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유리 님과 잘 맞았어요?
제가 심리 상담을 두 번 받았는데 처음 선생님은 기독교 신자셨어요. 저한테 종교를 제안하면서 기독교로 전도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주변에 저를 챙겨주던 분들이 천주교여서 천주교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종교적인 문제로 부딪쳤어요. 두 번째 선생님은 무조건 제 편이어서 더 편하게 상담받았던 것 같아요.
심리 상담을 받으면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돼요?
이 일이 일어난 게 꼭 내 잘못만은 아닐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심리 상담을 받았을 당시에 모두 제가 못나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이 된 것도 제 탓이라고 믿었거든요. 상담을 받으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왜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원인을 같이 찾아 나가다 보니까 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자책하는 것도 많이 줄었겠네요.
그쵸. 자책을 하더라도 '아 이런 멍청이' 딱 이 수준까지만 해요. 예전 같으면 '너는 왜 이렇게 살아' 이러면서 땅끝까지 파고들었어요.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한달자기발견 DAY11] 당신 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성향 또는 욕망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받고 한참을 고민했다. 나에겐 어떤 모순적인 것이 있을까. 제일 먼저 생각이 든 건 자기역사연표를 통해 분석했던 나는 '경쟁'을 싫어했다. 당시 친구들과 경쟁해야한다는 게 왜 당연한 건지 묻는 내게 선생님들은 '그게 사회의 이치잖아.' 라는 말로 눌러버렸다. 그래. 그런데 사실 나는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경쟁은 싫지만 남들보다는 앞서나가고 싶어.' 이게 나의 솔직한 욕망이다. 남들보다 앞서나간다는 건 결국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는 것이다. 결국 남들에게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기도 하다. 내가 경쟁을 싫어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자체가 싫어서 둘. 누가 누굴 꼭 이겨야만하나. 한때 나를 괴롭혔던 아이러니함이었다.
원문 : https://blog.naver.com/starryuri/221957785285
왜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외동이니까 적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잘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경쟁은 싫어하는데 남들보다는 앞서 나가야 부모님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는 않을 정도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경쟁은 싫어요. 다른 사람들이랑 경쟁하지 않고 혼자 잘 성장해서 당당해지고 싶어요. 부모님이 어디 가서 '우리 딸이 말이야~'라고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거든요. 그런 생각이 커요.
그리고 다른 이유는 독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계약직만 계속하고 정규직 전환이 안 됐잖아요. 제 능력을 인정 못 받고 깎아 내려지면서 잘 돼야겠다는 다짐을 많이 했죠. 안정적으로 살려면 남들보다 어느 정도 앞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어릴 때부터 '너는 잘돼야 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맞아요. 혼자잖아요. 너는 외동이니까 하나뿐인 자식이니까, 엄마아빠를 네가 모셔야 되는데 너 혼자밖에 없어, 네 엄마아빠 아프면 네가 다 해야지.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임감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생각보다 편하고 즐거웠어요. 일단은 유진 님께서 제 글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으시고 체크까지 해주신 거에 감동 받았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2. 하나뿐인 자식이니까 잘돼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늘 내가 머리가 좋다고 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자랐다. 부모님의 관심과 기대와 달리 성인이 되었을 때 내 모습은 내가 느끼기에 너무 초라했다. 좋은 학교나 좋은 회사에 가지 못한 뒤로 항상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다.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딸이라 죄송했다. 어느 날 내가 잘되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 속에 나는 없었다. 부모님이라는 이유를 빼면 많은 돈을 많이 벌고 싶지도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바꿔 말하면 가져도 크게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가진 이름이나 돈을 자랑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이제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부담감을 내려놓아도 된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