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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May 29. 2020

한달전화인터뷰#13 라예

뮤지컬, 연극 배우

<한달전화인터뷰>는 글쓰기 커뮤니티 <한달>의 멤버들을 대상으로 한 달 동안 전화로 하는 인터뷰입니다.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인터뷰이의 글을 읽고 질문을 던집니다.






인터뷰이 소개




이름 : 라예

하는 일 : 뮤지컬, 연극 배우

글 쓰는 곳 :  https://blog.naver.com/soulg921129










왜 인터뷰를 하나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 소통하고 싶습니다.


왜 인터뷰를 신청하셨어요?


인터뷰 신청할 때의 저를 되돌아보면 진짜 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도 그렇고 나라는 사람으로서도 그렇고요. 자아가 5살 이전에 형성되는데 그걸 모르고 살잖아요. 무의식중에 묻혀 있다가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되는데 <한달>에서 글 쓰면서 배우로 연기하면서 많이 발견했어요. 인터뷰를 통해서도 또 한 번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누구에게 전달된다면 그 계기로 사람들도 자신을 한 번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평소에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남한테 잘 안 해요?


네. 진짜 친한 친구한테도 거의 안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친구한테 이야기 안 하는 이유가 못 믿어서는 아니에요. 친구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잖아요. 듣고 나서 친구가 힘들까 봐 말 안 해요. 그런데 글은 혼자 쓰면 끝이니까요.



애인이 있을 때 애인한테도 이야기를 안 하는 편이에요?


네. 이야기 안 해서 많이 서운해했었어요.



인터뷰도 솔직한 이야기를 해야 하잖아요. 친한 친구한테도 말을 잘 안 하는데 두렵진 않았어요?


저도 아까 저 자신이 이해가 잘 안 갔어요. 제 성격이 충동적인 성향이 많지는 않은데 가끔 해야겠다 느끼면 해버리거든요. 인터뷰 신청할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청했던 것 같아요.










라예 님의 하루 일과(4/14)



공복 유산소 → 피티, 유산소 → 요가 → 한의원 → 연습 → 복근 운동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어요?


하루 일과 적은 날이 4월 14일이거든요. 그때는 바디 프로필 촬영을 앞두고 있어서 하루 운동량이 9시간 정도 됐어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고 많으면 5시간 평균적으로 2~3시간 하는 것 같아요.



평소에도 많이 하네요.


네. 원래 운동을 좋아해요.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


네. 재미있어요. 바디 프로필 준비하면서 운동이 좋아졌어요. 처음부터 좋아했었던 건 아니거든요. 어릴 때는 체육을 못 했고 별로 안 좋아했어요. 배우로서 바른 신체를 가져야 해서 억지로 시작했었어요. 살도 빼야 했고요. 지금은 제 몸을 알아가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몸이 건강해지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건강해졌거든요. 이렇게 계속 유지하면 더 많은 연기를 할 수 있겠다, 더 오랫동안 연기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하는 것 같아요.



바디 프로필을 찍게 된 계기가 있어요?


원래 버킷리스트였는데 시작을 못 하고 있었어요. 시작이 어렵잖아요. <한달보물지도> 사이드로 제가 리더를 한 적이 있는데 바디 프로필 한 번은 찍고 싶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었어요. 마침 그 자리에 바디 프로필 유경험자가 두 분이나 계셨어요. 언니들이 강압적으로 지금 해야 된다고 말해서 바로 그다음 날 등록했어요. 결심이 서면 바로 하거든요.

*<한달보물지도> : 한달에서 직접 제작한 보물지도 템플릿과 가이드를 통해 자신의 꿈과 목표를 명확히 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만들고 공유하며 응원합니다.



주변 사람의 영향이 크네요.


네. 영향을 주면 그대로 그냥 다 받아요.










글쓰기에 관하여



어떤 이유로 글을 쓰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시 쓰는 것도 좋아했어요. 어릴 때는 상을 주니까 좋았거든요. 백일장 나가면 상 받으니까 '글 잘 쓰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강박이 돼서 오히려 안 쓰게 됐어요. 대학교 때부터 논문 말고는 글을 안 썼어요. 대학 졸업하고 사회 생활하다 보니까 글 쓰는 게 감정 치유 능력이 있더라고요. 그걸 깨달은 후에 <한달>을 했어요. 지금은 매일 글을 쓰면 더 많이 치유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 꾸준히 쓰고 있어요.



그럼 처음에 글을 많이 쓰게 된 때가 힘들 때였어요?


맞아요.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 때. 아까 말한 것처럼 힘들 때 친구들에게도 얘기를 못 하는 성격이라 그걸 풀어내려고 썼어요.



지금 <한달>에서 글 쓰면서 힘든 점 있어요?


지금 <한달미니멀>하는데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만족도가 매우 높아요. <한달자기발견>할 때 많이 힘들었거든요. 자기를 직면해야 하는 질문이 많으니까요. 배우들은 따로 그런 훈련을 한단 말이에요. 훈련을 통해 충분히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한달자기발견>하면서 몰랐던 다른 부분을 직면하게 되니까 그때가 많이 힘들었어요.

<한달미니멀>하면서도 비워내는 과정을 하면서 자기를 또 만나게 되더라고요. 글을 쓰고 만난 건 아닌데요. 제가 <한달미니멀>을 통해 배우 훈련법 중 하나만 집중해서 적용하는 걸 글 주제로 쓰고 있어요. 훈련하다 보니까 완전 어릴 때의 상처를 만나게 된 거예요. <한달자기발견>에서 한 번 다 털어본 적이 있어서 조금 더 직면할 수 있게 됐어요. 인터뷰를 앞두고 망설이다가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직면해야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거든요.



혹시 소설 쓰신 적 있어요?


네. 작년에 독립출판 했었어요. <안녕,>이라는 제목이에요. 그 말을 진짜 좋아해요. 뒤에 무슨 말을 다 붙여도 말이 돼요. 헤어질 때도 만날 때도 안녕이라고 말하잖아요. '안녕하다'라는 동사가 그 사람의 행복 또는 상태를 담고 있는 말이라, 안녕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소중한 사이에서 관심을 표현해주는 말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인사하면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아요.


맞아요.










라예 님의 글을 읽고



[DAY00] 당신은 누구인가요?

이름을 바꾼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새로운 이름이 어색합니다. 이름처럼 즐겁고 에너지 넘치는, 그리고 행복한 배우이자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그 밝은 에너지를 주변에도 나눌 수 있는 이가 되고 싶습니다.

(중략) 저는 연극과 뮤지컬을 하는 배우입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좋은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 보낸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본이 튼튼하고 꾸준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그를 위해 매일 연습하고 고민하는 제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사람인 나와 배우인 나의 균형을 찾지 못해서 힘든 적이 많았습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두 자아가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저의 가장 큰 관심은 '배우 라예'와 '사람 라예'가 모두 행복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두 라예가 서로에게 '시너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중략) 두 번째는 '욕심내지 않는 나' 였습니다. 매일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너무 욕심내지 않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양을 파악하고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원문 : https://blog.naver.com/soulg921129/221791706742


이름을 바꾼 계기가 있어요?


원래 이름이 솔지거든요. 엄마들이 미신이나 사주 많이 보잖아요. 솔지 이름이 저한테 안 좋대요. 그 말을 계속 들었거든요. 노력하는 거에 비해서 너무 늦게 얻는다고 안 좋다고 했어요. 저는 솔지라는 이름이 되게 좋았거든요. 그래서 엄마아빠가 바꾸자고 권해도 안 바꿨었어요. 그런데 올해 연휴에 '아 바꿀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바꿨어요. 엄마가 아시는 분이 있어서 사주를 따져서 자음 몇 개를 받았어요. 받은 자음을 조합해서 제가 이름을 지었거든요. 잘 바꿨다는 생각도 들어요. 올해 MBTI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바뀌었거든요. 신기하게도 요즘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MBTI가 어떻게 바뀐 거예요?


원래 ENFJ랑 INFJ만 번갈아 나왔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E랑 I가 거의 50:50으로 나와요. 조금 기분 좋으면 E 나와요. 이번에는 ENFP-T로 나왔어요.



사람인 나와 배우인 나의 균형을 찾지 못한다는 건 어떤 뜻이에요?


배우는 보여지는 직업이니까 다른 직업에 비해 직접적으로 평가 받는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관객한테 욕을 먹었으면 배우 백라예로서 욕을 먹은 건데 사람 백라예가 같이 없어진다고 느끼기 쉬운 환경이더라고요. 그런 거에 대한 분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제 직업이 너무 좋거든요. 연기하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하고 평생 연기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연기를 안 하고 있을 때의 나도 필요하더라고요. 슬럼프는 당연히 오는데 그때 도망칠 곳이 필요하더라고요. 저는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가졌잖아요. 보통 취미 생활이 있으면 그걸 하면 되는데 저는 좋아하는 게 연기고 노래여서 배우가 된 거니까 슬럼프가 왔을 때 도망갈 곳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배우로서 힘들어지면 동시에 사람으로서도 같이 힘들어져요. 탈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배우 라예와 사람 라예가 모두 행복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두 라예가 서로에게 시너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했잖아요. 찾은 방법이 있어요?


네. 제일 먼저 했던 게 못 해도 되는 취미 만들기였어요. 사실 연기는 직업이니까 잘해야 해요. 마크라메나 프랑스 자수, 캔들 만들기 같은 거 있잖아요. 못하면 한 번 하고 안 하면 되잖아요. 그게 큰 위안이 되더라고요. 연기할 때는 못 하면 배역을 뺏길 수도 있고 잘릴 수도 있거든요. 모르면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고 못 하면 선생님이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위로가 되는 일인지 몰랐어요.



글 쓸 때 잘 쓰려는 욕심이 생기지는 않아요?


원래 많았는데 지금은 별로 없어요. <한달> 초기에는 엄청 잘 쓰려고 했어요. 지금은 못 쓰면 못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연기를 떠나서도 뭐든 잘하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맞아요. 제가 지금은 성격이 바뀌었다고 했잖아요. 그런 게 좀 없어졌어요. 인터뷰하려고 제가 썼던 글을 읽으면서 다시 '잘하려던 저'를 만나서 힘들었거든요. 99점도 잘한 거잖아요. 엄마가 그걸 용납 못 하셨거든요. 무조건 100점을 맞아야만 하는 아이로 자라서 항상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어요. 연기할 때 그게 안 내려놔 지는 거예요. 잘하려고 한다는 건 곧 긴장을 한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면 연기를 잘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걸 내려놓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분명히 아직도 다 못 내려놨을 거예요.

그런데 글 쓰고 요가 하면서 세상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깨달은 것도 있어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공연계가 어려운데 제가 어떻게 해도 관객들이 극장에 안 가는 걸 통제할 수 없잖아요.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까 내려놔 진 것 같아요.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욕심내서 무언가를 했을 때 단점이 있었어요?


몸이 힘들고 마음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많이 다쳤어요. 제가 전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디션에 붙어서 공연을 시작했거든요. 전공을 안 했다는 건 기본기가 없다는 뜻인 것 같아요. 그 상태에서 배역을 받아서 춤추고 노래하다 보니까 겉치장만 화려해진 거예요. 예를 들어 춤을 잘 추려면 코어가 단단해야 하는데 코어가 없는 상태에서 팔다리만 열심히 움직이는 거죠. 제 몸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는데 무리하게 되니까 공연하면서 진짜 많이 다쳤어요. 아직 그 배역을 맡을 몸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억지로 하려고 했어요.



지금은 욕심을 많이 안 내는 것 같아요?


자기발전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라 완전히 안 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아직도 잘하려고 해요. 그런데 옛날에는 남한테 잘 보이려고 했으면 지금은 스스로 발전하고 싶은 것 같아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요. 그 욕심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생각이 그렇게 바뀐 시기가 있었어요?


요가를 취미로 한 지 1년 정도 됐어요. 요가 선생님이 명상을 먼저 하고 다음에 아사나 동작을 하고 마지막에 명상으로 끝내요. 명상 주제로 소중한 거 세 개를 생각해 보라고 하신 날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한 개도 떠오르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보통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아무리 저 자신을 대입해봐도 '소중하다'라는 단어랑 안 어울려서 못 받아들이겠더라고요.

선생님이 '첫 번째 소중한 걸 떠올리면서 어디에 힘을 주세요, 두 번째 소중한 걸 떠올리면서 힘을 주세요.' 이야기를 하는데 소중한 게 없으니까 멍해지는 거예요. 동작은 해야 하고 요가원에서 도망가고 싶진 않으니까 일단 해야 하잖아요. 그때가 <한달미니멀>에서 코로 숨 쉬는 거에 집중하는 주였어요. 일단 소중한 걸 제쳐두고 코로 숨 쉬는 훈련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해서 했거든요. 그렇게 하다가 마지막에 명상할 때 울었어요.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걸 알게 해준 오늘의 자리가 감사하더라고요. 이제부터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작은 실천을 해보는 걸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을 위한 연기가 아니라 나를 위한 연기를 해야겠다, 나를 위해 살아야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DAY08] 무엇이 당신을 두렵게 만드나요?

나는 왜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 할까? 처음부터 그랬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  그럼 언제부터? 한참을 생각해도 쉽사리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날 떠나갈까봐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하고.

원문 : https://blog.naver.com/soulg921129/221801366459


왜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떠날까 봐 두려웠어요?


이 글을 쓸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만약 내가 약한 모습을 보였을 때 떠나는 사람이면 원래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모두가 저를 떠날 거라 생각했거든요. 최근에 좋은 동료들을 많이 만났는데 약한 모습을 보여줬을 때 저를 안아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연기 훈련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연기 훈련하다가 내면의 자아를 만난 거예요. 나이 들어서 소리 내 운 게 거의 처음이었어요. 연기할 때 빼고는 혼자 있을 때도 소리 내서 안 우는데 꺼이꺼이 울었어요. 그때 거기 있던 친구들이 저를 떠나는 게 아니라 저를 토닥여주더라고요.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고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올해 저 자신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아서 신기해요.



좋네요. 저도 <한달자기발견> 글 다시 보면 그때의 생각이랑 지금의 나랑 좀 다르다 느낄 때가 있어요. 글 쓰면서 바뀐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몇십 년 동안 안 바뀌었던 게 바뀌었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지금의 나를 맞이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성장통이 있던 게 아닐까 하고요. 요즘은 모든 게 감사해요. 미처 글에도 담기 어려운 많은 아픈 일과 상처가 있잖아요.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그런 일들이 누구나 있잖아요. 저는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겪은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하면서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지금은 어릴 때 맞이하게 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행복하게 살다가 커서 맞이했으면 무너졌을지도 몰라요.



무대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있었어요?


꽤 있었어요.



그래요? 티가 안 나잖아요.


네. 티를 안 내기 위해서 평상시에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져도 신체가 잘 훈련된 배우는 근육이 집중을 기억하고 있어서 금방 다시 돌아올 수 있거든요.









[DAY09] 다시 쓰고 싶은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그런데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규칙을 따르는 성향'이 연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다른 것이 연기이고 무대다. 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나의 상태에 따라,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 그 대사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장면에서는 이래야 돼'하는 나의 규칙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이었다. 연출님과 선배님께 '자유롭기만 하면 진짜 좋을텐데'하는 조언을 매일 들었다. 다른 작품을 하면서도 비슷한 피드백을 들었고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문 : https://blog.naver.com/soulg921129/221816022369


배우로서가 아니라도 삶에서 지금보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많이 있어요. 강박에서 벗어나면 조금 더 행복할 것 같아요. 못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여유요. 아직은 어려워요. 지금 나아가고 있는 단계인데 언젠가는 많이 나아지겠죠.



힘든 것 같아요.


맞아요. 힘 빼는 게 힘들어요.



몸에 힘을 빼면 마음의 힘도 빠질까? 라는 생각을 해요.


맞아요. 진짜 그래요. 그래서 요가가 좋은 것 같아요.



요가 해보고 싶네요.


제가 요가 전도사거든요. 저 때문에 요가에 빠진 사람들이 진짜 많아요.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있잖아요. 마음이 힘들 때 숨차서 죽을 때까지 뛰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더라고요. 그러면 좀 나아요.



제가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딜 가 있든 몸이 긴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랑 있을 때 힘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요가 진짜 추천해요. 나만의 호흡이 있고 나만의 속도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줘요. 원래 다른 운동 하러 가면 거울이 엄청 많잖아요. 틀릴까 봐 열심히 봤거든요. 거울로 못 하는 나를 계속 봐야 해서 춤을 안 좋아했어요. 요가원에 가면 거울이 없어서 나도 안 보고 남도 안 보게 돼요.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취미로 연기 배워보고 싶어요. 연기하면 저의 감정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요? 감정표출이라던가


무조건 있어요. 그래서 연극치료도 있거든요. 아예 학문이 따로 있어요. 연기는 나를 계속 직면해야 하기 때문에 치료적인 면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도 있어요. 제가 화를 못 내거든요.



저도요.


그럼 연기할 때 화내는 역할 하면 진짜 도움 많이 될 거예요.



화내는 역할 해보고 싶어요.


저도 평상시에는 절대 소리 안 지르는데 연기할 때는 잘 질러요.



짜릿할 것 같아요.


속이 다 시원해요.



제가 화내는 상상만 해도 닭살 돋는 느낌이거든요.


맞아요. 많이 참으시는 편이구나.



화가 잘 안 나는 편이긴 한데 화가 나도 제가 소리를 지르는 게 상상이 안 간다고 해야 할까요.


오 그렇구나. 코로나 잠잠해지면 일반 극단도 많으니까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라예 님의 글을 읽으니까 연기를 해도 완벽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연기로 해결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직업으로 대하는 거랑 필요로 대하는 거랑은 아예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직장인 연극 동아리 너무 추천하거든요. 그건 진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저희는 잘해야 하니까 다른 개념인 것 같아요. 돈 받은 몫을 해야죠 티켓값.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연기하면서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언제예요?


사실 연기하는 게 다 너무 좋은데요. 요즘은 상대 배우랑 교류한다는 걸 느낄 때요. 그냥 대사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어떤 나랑 그 사람 안의 어떤 그 사람이 만나는 느낌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아 이래서 연기하는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게 진짜 좋아요. 그걸 느끼기 전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힘들지만 그게 이 정도로 행복한 일이라면 할 만한데 라는 느낌이 들어요.



무대에 있는 느낌이 궁금해요. 연습할 때랑 관객이 있을 때 느낌이 많이 달라요?


너무 다르죠. 에너지값 자체가 달라요. 저는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관객의 에너지를 받아요. 예를 들어 관객분들이 공연이 '너무 기대돼'라는 에너지를 풍기는 날이 있고 '한 번 잘하나 보자'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날이 있어요. 각각의 공연 나오는 값이 달라요. 에너지를 주는 관객들이 많으면 그날 공연이 잘 나올 수밖에 없어요.



같은 극을 몇 달 동안 하잖아요. 매 공연에서 연기가 달라져요?


네. 저는 매번 똑같으면 연기를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항상 똑같이 할 거면 로봇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제가 키가 작고 어린 이미지가 있어서 선생님들이랑 작업을 많이 했어요. 약간 그런 이미지에요. 큰집의 막내딸. 같이 연기하는 선생님이 '매 공연 연기가 달라서 같이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되게 감사했던 기억이 있어요.



배우들끼리는 자기 연기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 연기가 오늘은 어떻게 다른지 느껴요?


네. 같이 하는 거니까요. 상대방이 어떻게 달라지냐에 따라서 제 연기도 바뀌어요.



글 쓰면서 느낀 점이 소설이나 시 같은 허구의 이야기를 쓰더라도 결국엔 나를 드러내야 하더라고요.


동감해요.



글 쓰려면 나를 까발려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거예요. 전 연기가 그럴 것 같거든요. 가상의 연기지만 결국엔 진짜 나를 놓아야 할 것 같아요. 글 쓰면서도 두려울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맞아요. 거기서 부딪쳐서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글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의지의 차이일 수도 있는데 글 쓸 때 힘들고 드러내기 어려울 때 나의 선택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지 아니면 안 드러낼지. 연기도 똑같은 거 같아요. 근데 그걸 드러냈을 때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건 글이랑 똑같은 것 같아요. 용기가 필요해요.









[DAY11] 당신 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성향 또는 욕망은 무엇인가요?

가장 마음이 동했던 꼭지다. 작가가 소개한 다양한 사례들 중 나와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이 연인이든, 친구든, 선배든, 선생님이든, 가족이든. 그래서 '난 좋은 사람이야!'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던 것 같다.  애만 쓰고 얻은 건 없었다.  상처를 많이 받는 이유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였다.

원문 : https://blog.naver.com/soulg921129/221805337298


누군가에게 자신이 좋지 않은 사람으로 비쳤을 때 어떤 기분이에요?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최근에서야 '좋은 사람 아니면 뭐 어때'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긴 해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언제 버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못 버릴 수도 있어요.

지금은 생각의 방향이 바뀐 게 글 쓰면서 내가 왜 그런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잖아요. <한달>하면서 그런 과정을 많이 겪었거든요. 올해 초에 애니어그램 공부를 했는데 성격유형에서 '돕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어요. 남을 돕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 거예요.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기준을 조금 더 잘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삶의 목적이 뭔지 고민해봤는데 저는 삶의 목적을 한 단어로 하면 '위로'거든요. 상처받은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위로해주고 싶고 힘든 일 있을 때 도와주고 싶고 좋은 일 있을 때 그 사람보다 더 많이 기뻐해 주고 싶어요. 그게 제 삶의 큰 목표예요. 그걸 제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저한테는 연기기 때문에 배우가 된 거라는 정리가 스스로 됐어요. 그러면 남한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건 좋은 배우로 보이는 거랑 같은 맥락이잖아요.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계속 보이려고요. 대신 그게 나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잠시 멈추는 용기도 가져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떻게 연기로 위로를 줘요?


다양한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시작은 노래로 위로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노래가 좋아서 뮤지컬을 시작해서 배우가 된 거예요. 노래로 설명하면 쉬울 것 같아요. 노래를 들었을 때 위로되는 노래가 많잖아요. 저는 제이레빗의 선잠을 진짜 좋아하는데 듣고 있으면 나를 토닥여주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에는 노래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연기도 그렇더라고요.

영화 봤을 때 슬픈 영화 보고 실컷 울고 나서 속이 개운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것도 하나의 치유 작용인 것 같아요. 남을 마음껏 울게 해주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는 거죠. 또 제가 관객으로 있었을 때 위로받은 적이 있었어요. 대사 딱 한 마디가 내 삶에 되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때가 있더라고요. 제가 '원스' 뮤지컬을 엄청 좋아하는데 거기서 '가'라는 대사가 있어요. 영어로 하면 Go인데 '꿈이 있으면 가', '하고 싶으면 가'라는 뜻의 가예요. '가'를 배우가 무대에서 엄청 많이 던지거든요. 한 글자잖아요. 그 말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된 적이 있었어요. 그런 것도 다 위로인 것 같아요.



내 삶의 한 단어가 위로라는 말이 확 와닿았어요. 제가 누군가를 상담하고 싶은 것도 그 이유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라예 님이 저를 어딘가에서 꺼내준 느낌이에요.


감사해요. 너무 행복하다.



고민을 누군가한테 꺼냈는데 위로받지 못한다고 느낀 적 있어요?


너무 많죠. 사실 그래서 얘기를 안 꺼내는 것도 있어요.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랐어요. 어릴 때 엄마 손에서 못 자라서 눈칫밥을 엄청 먹어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되게 빨리 읽어요.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모를 때가 많은데 나한테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를 빨리 알거든요. 내가 말하고 있는데 나한테 집중하지 않는 걸 느낄 때는 기분이 그렇죠. 그래서 상대방한테 집중하는 에너지를 주려고 노력해요. 반대일 때 내가 속상하니까요.



상대한테 집중이 안 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죄책감 같은 걸 느끼지는 않아요?


그 죄책감을 안 들게 하려고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항상 다 잘 되진 않더라고요. 말을 이리저리하는 사람은 따라가기 힘들어요. 하지만 노력은 해요.



저는 위로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거든요. 내가 말을 했는데 교감하지 못하는 느낌. 이 사람은 내 말을 듣고 위로하는 말을 건넸지만 왜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건 왜 그럴까요.



경청을 안 한 건가.


네. 경청을 안 한 거지 않을까요. 저는 경청이 가장 큰 답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과 다른 일이 있을 수는 있지만요.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한 느낌은 어떤가요?


솔직히 말하면 인터뷰를 앞두고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어요. 제가 약속 취소를 진짜 안 하는데 못 한다고 말할까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지금은 제가 도망가지 않을 용기를 준 거라고 생각하게 돼서 정말 감사해요. 제가 인터뷰가 고민된다고 말씀드리고 너무 오랫동안 생각의 시간을 가져서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그동안 많이 고민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사실 아까 준형이한테 이야기를 했었어요. 못하겠으면 인터뷰하기 1시간 전까지는 말씀드려야 하잖아요. 그 안에 혼자 해결을 못 할 것 같아서 준형이한테 말했거든요. 그때 준형이가 제 상태를 되게 잘 들어줬어요.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해줬거든요. 준형이랑 10년 친구인데 이 인터뷰 덕분에 준형이가 저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알게 됐어요. 유진 님한테도 너무 감사해요.



저는 라예 님이 인터뷰 못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을 때 큰 고민 안 했어요. 제가 글을 올리기 위해 인터뷰하는 건 아니니까 인터뷰 안 하고 그냥 라예님과 이야기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글을 읽으면서 라예 님이 궁금하고 대화해보고 싶어졌거든요.


진짜 감사해요.










인터뷰 후 느낀 점



1. 라예 님의 글을 읽으면서 '소설이나 시도 아닌데 왜 이렇게 몰입되지'라고 느꼈다. 그래서 소설 쓰면 잘 쓰시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진짜 쓰셨다고 해서 놀랐다. 지금은 구매하기가 힘들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꼭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라예 님의 무대도 보고 싶다.


2.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물론 그만큼 힘든 일도 많겠지만. 작년에 뮤지컬을 관람한 후에 배우들을 보면서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본 적이 있다. 그들에게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나 하루에 일정 시간을 투자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굳이 입으로 그렇다고 말하지 않아도 연기가 그들의 삶 자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공연 한 공연에 얼마나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느껴졌다. 그들은 분명 다음 공연에도 그다음 공연에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했을 것이다.


3. 결국 인터뷰에는 내가 고민하는 것들이 나온다. 시간을 정해서 내가 궁금한 모든 걸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 감사하다. 요가랑 연기를 배워보고 싶어졌다. 힘을 빼면 많은 것이 해결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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