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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Nov 26. 2020

20대에 할 일

스물아홉의 끝자락에 친구들은 말했다.

해놓은 게 없다고, 진로조차 정하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20대에 할 일은 철저히 헤매는 일이고

무던히도 헤매었으니 우리는 잘한 거라고.

그게 바로 우리의 할 일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남들이 한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기반을 잡아야 한다고

돈을 모아야 한다고 해서

싫어하던 일을 직업으로 정해 경력을 쌓았다면

지금 나는 행복했을까.


돈을 열심히 모아보기도 하고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다 써보기도 하고

적당한 금액만 저금해보기도 했다.


마음 없이 출근 도장만 찍듯 회사에 다녀보기도 하고

밤낮 주말 없이 미친 듯이 일해보기도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대책 없이 오래 쉬어보기도 했다.


대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편입 공부를 해보기도 하고

직업을 바꿔보기도 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결과로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이 다 경험이었다.

그런 과정을 겪어내고 나서야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삶은 퀴즈쇼가 아니었는데

정답이 있는 것처럼 빨리 맞히려고 애썼다.

오답을 찾는 일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느꼈으니까.


왜 한 번에 맞는 일을 찾지 못한 거지?

왜 한 번에 맞는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 거지?

내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를 수십 곡 들어야 하는 시간은

고단하고 지루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 나중에 맞는 것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맞아도 맞는지 틀려도 틀린지 모른다.

다른 것들을 경험하고서야 이게 맞았구나 한다.


합리화 일지는 모르지만

이제와서야 나에게 잘했다고 말해본다.

열심히 헤매 줘서 고맙다고.

길을 억지로 정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너는 그것으로 20대에 할 일을 다한 거라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사실은 자주 불안하고 자주 조급해진다.

회사에 안 다니는 나는 세상과 멀리 떨어진 사람 같다.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스스로를 자꾸만 의심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내년이면 30대의 세계에서 가장 아기가 된다.

내년에는 좀 더 서툴러도 되지 않을까.

아기니까 이해해주지 않을까?

아무 근거도 없이 내년에는 왠지 잘 풀릴 것 같다고 믿어본다.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

그럼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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