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살림-17
타인의 모든 표정과 손짓에 의미를 담지 말자,
그건 내가 담은 의미일 뿐,
지레 짐작해서 상처받는 일을 최소한으로 만든다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많이 줄어들게 된다.
모든 것이 결론 나지 않았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물론 우리가 머물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중국에 체류하게 된다면 지원은 되는 건지, 지금까지의 투입된 비용에 대한 지급은 이루어지는지.
그저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받은 채 우리 모두 숙소로 복귀하게 되었다.
진정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여행온 기분으로 타국에 있다고 하지만
업무에 대한 것도 더 나아가선 급여에 대한 것도 아무것도 확답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불안하고 답답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팀장이자 대표를 맡고 계시던 선배 피디에게 마저 초초함이 느껴지는 듯했으니
막내들은 더욱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술 취한 선배가 나에게 큰 실수를 했고,
정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게 된 내가 있었다.
사실 언젠가 언급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한 부분이 있었는데, 성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다.
아무래도 조심스럽지만, 생각보다 여자 피디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지금의 방송 시스템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니
그저 당시의 환경이 그랬었다고 생각하고 읽어 주면 좋겠다.
직업 특성상 여자라고 배려를 바라고 일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대우를 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히 못할 거라는 선입견과 무시가 있었고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처럼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역시 그러면 그렇지라고 듣는 경우가 많았다.
출연진들이나 기타 스텝들은 여자 스텝을 보면 당연히 작가라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여자가 피디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지만 성희롱과 성추행도 만연했다 보니
뒤풀이나, 술자리를 가는 게 점점 부담스러워졌지만
선배들과 혹은 기타 인맥들과 연이 없으면 다음 프로그램이 없을 것 같아 억지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동기들도 많았고, 작가로 업을 바꾸는 사람도 많았다.
타지에서의 생활이다 보니 회사 자금이 생각보다 더 많이 투입되었고,
이렇게 기다릴 수만은 없겠다고 판단한 선배들은 모두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중국 프로그램의 제작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