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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Feb 12. 2016

멈춘 성장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책 <성장의 한계>를 읽고 쓰다

갑갑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우리 세대가 ‘6.25 이후 부모 세대보다 더 못 나아진 최초의 세대’라는데, 이제 행성 지구마저도 나에게 비슷한 고통을 주는구나.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인구와 개발되는 자원 속에서 풍요로웠던 영광을 뒤로 하란다. 이제 성장의 시대는 끝났고 내리막이 남았으니 '성장의 한계’를 직시하란다. 이렇게 억울할 일이. 야 왜 우리한테만 이러냐!


성장이 끝나고 자원 생산의 정점을 찍은 채 ‘내려가는 지구’에 대처하는 방법은 사실 퍽 단순하다. 인구를 줄이자. 1인당 생태 발자국을 줄여내자. 그리하여 지구의 회복 속도보다도 더 빨리 그 기력을 소진시켜버리지는 말자. 하지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다투고 다국적기업들이 끼어든 복잡한 이해관계의 고리를 풀어내기 어려운게 문제다. ‘야 왜 우리한테만 이러냐!’ 하는 반발심은 전지구적으로 크고 복잡하다.


책의 후반부에서 제안하는 키워드들과 해결책은, 문제의식의 무게에 비해 과히 낭만적이고 한가한 소리라서 김이 팍 새버렸다. ‘꿈꾸기, 네트워크 만들기, 진실 말하기, 배우기, 사랑하기’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요. 극히 소수만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일 여유가 있고, 그 중에서 다시 소수만이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태료와 벌금이 싫어서 분리수거를 하고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는걸. 


환경 문제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 심지어 내 이익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정치와 사회문제에도 때로 무관심해지는 판에, 여전히 환경문제는 먹고사니즘 앞에서 배부른 소리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익이든 손해든 볼 것 같아야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그러므로 개인의 단위에서건 기업과 정부의 단위에서건, 과거 성장시대에 맞게 디자인된 이해관계를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지구 앞에서 필요한 것은 꿈과 사랑이 넘치는 낭만적인 단어들의 나열이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이 지구라는 거대한 공유지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독서모임 트레바리 34에서 함께 <성장의 한계>를 읽고,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조금 수정한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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