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
몇 해전 시댁 큰집 가족이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
시골에 사시는 시부모님은 나이가 많으시고 시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셔서 자식 셋이 돌아가며 주말에 부모님을 돌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외 근무를 해야 했던 가족은 일 년 간 부모님을 잘 부탁한다고, 남은 가족에게 일 년간 부모님을 모실 때 쓸 돈을 주셨다. 자식들은 일 년 동안 부모님을 모실 때 그 돈을 썼다. 집에 필요한 생필품을 살 때, 반찬을 사거나 음식을 할 때, 병원에 갈 때, 여행을 갈 때, 명절날 차례상을 준비하거나 부모님 가족의 경조사를 챙길 때 등 필요한 건 거의 다 해 드릴 수 있었다. 만약 그 돈이 없었다면 남은 가족들은 돈을 쓸 때마다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돈 쓰는데 부담을 느끼는 건 불효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아직 독립하려면 까마득한 아이가 둘이 있다. 돈은 한정되어 있고 어떤 관계에서든 경제적으로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으면 들어가야 할 돈은 끝이 없다. 자식은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할 수도 한쪽에 몰아줄 수도 없다. 부양은 현실적으로 부담이다.
그래서 돈이 있으면 효도는 훨씬 쉬워진다. 돈만 있다면 경제적으로 균형을 잡으려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돈 덕분에 남은 가족은 경제적 부담 없이 부모님께 집중할 수 있었다. 큰집에서 준 돈은 부모님을 함께 돌보지 못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과 부모님을 돌볼 남은 가족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다. 부양에 돈문제가 빠지니 우리는 빈자리와 시간을 채워 넣기만 하면 됐다.
-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 모든 것이 여유롭고 넉넉했던 이모는 반대로 삶이 무의미하다. 그녀 곁에는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만 마음을 터 놓을 가족, 안부와 위로를 주고받을 자녀들, 사사로운 대화나 고민을 나누며 아무 생각 없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효도는 돈이 하지만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병원비는 낼 수는 있지만, 병원에 모시고 가서 같이 손잡고 차례를 기다릴 수는 없다.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곁에서 안부를 묻고 따뜻한 위로를 주고받을 수는 없다. 반찬과 음식은 사드릴 수 있지만, 따뜻한 밥을 차려 드릴 수는 없다. 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기억과 행복한 추억을 공유할 수 없다.
곁에 있지 못해 남은 가족에게 돈을 준 큰 집 가족들은 알았을까?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돈이 있으면 효도는 훨씬 수월해진다. 하지만 시간을 함께 나눌 가족이 곁에 없다면, 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효도는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는 돈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P.S. 일 년 뒤 큰집 식구들이 돌아왔을 때, 우리(특히 남편)가 느낀 건 단순한 반가움이 아니었다. 돈이 주는 안락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우리는 느꼈다. 소설 모순에서 주인공의 이모가 그토록 바랐던게 이런 감정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