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서 너는 너로서...
몇해 전 10년 만에 동갑내기 사촌을 만났을 때 그 아내가 돈이야기를 꺼냈다.
" 코인에 투자해서 월 천을 번 적도 있어요. 지금은 재개발 지역에 투자해 두었고 종종 주식으로 이익이 났어요. 저희는 집이 있었지만 작년에 팔았고, 지금은 서울 00구에서 전세 살아요. 부동산 시장이 안 좋으면 갈아타려고요. 올해 말부터 괜찮을 것 같아요"
동생이 이어서 말했다.
" 저희는 분양권을 사서 이사했고, 재개발 예정 아파트도 하나 있어요. 학군지로 갈아타려고 준비 중이고요."
"......."
그들에 비해 난 딱히 내세울 게 없다. 코인을 투자해 본 적도 없고, 부동산 거래는 한번 했으나 실패했다. 주식은 간간히 수익이 나긴 하지만 팔지 못하는 마이너스 계좌를 볼 때마다 내 가슴도 시퍼렇다.
1년 전 서울 사는 동생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하다가 돈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가진 돈이 궁금한지 얼마나 모았냐고 자꾸 묻는다.
"9억? 10억?"
"에이 그 정도 안돼."
"그럼 8~9억?"
"음... 그 정도(적당히 둘러 댐)?"
"언니 엄청 모으고 아끼는데 그것밖에 안돼?"
"내 월급이 뻔하지... 뭐 일 년에 4000 정도 모았으니까 그나마 이 정도 된 거지 내가 일한 지 20년쯤 됐잖아."
"생각보다 돈이 적네."
"나 지금 그만두면 연금 100만 원 나와 공무원이 그렇지. 월급 얼마 된다고..."
"아 그렇구나. 그럼 내가 예산 안에서 언니 이사 갈 집을 알아봐 줄게."
'......'
동생은 결혼할 때 경기도에 전세를 살았다. 2억 대출로 시작해 현재 서울에 아파트가 2채 있고 빚도 없다. 가끔 나의 재정상태를 물을 때마다 나는 불편하다. 하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나는 그런 관심도 신경쓰인다.
어느 날은 내가 취미로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쓴다고 하니 이렇게 말한다.
"그런 거 하지 말고 돈 버는 책 읽고 수익 나는 모델 찾아서 한번 해봐."
"나는 책 읽고 글을 쓰는 게 좋아."
"그렇게 시간 써서 돈 버는 것도 아니잖아. 일단 목표랑 타깃을 정해서 수익이 나는 방향으로 운영을 해봐."
이후 동생에게 유튜브 링크가 왔다.
'요즘 사람들이 돈 버는 방법.'
"19분부터가 핵심이야. 언니. 글 같은 거 쓰지 말고 뭔가 팔 수 있는 걸 찾아봐. 형부 이름으로 사업자 내서 스마트 스토어 열면 되니까. 마진율 높은 걸로 찾아서 판매 수익을 내봐. 이왕 노력하는 거 빨리 팔아서 경제적 자유를 얻고 퇴직할 수 있도록..."
'난 글쓰기가 좋은데...'
나는 거절했다. '그게 그렇게 잘되고 쉬우면 네가 한번 해봐.'라는 마음으로.
" 난 언니가 일하는 게 힘든 거 같아서, 안타까워서 그랬지... 알겠어...ㅋㅋㅋ."
"응, 신경 써줘서 고마워."
가끔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본다. 그들과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종종 부담스럽다. 나는 돈과 관련된 이슈를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을 뿐인데, 상대방은 묻지도 않은 투자 성공담과 방법론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동생과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아등바등 모으는 게 안쓰러운지, 전세 사는 내가 답답해 보이는지 동생은 나를 도와준다고 이것저것 묻는다. 나도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임장도 다니고 부동산도 간간히 가본다. 하지만 동생이 보기에는 내 생각이나 노력은 한참 부족해보이나 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 경험과 방법을 나눠주는 행동이 호의임을 안다. 성공한 사람들은 말에 확신이 있고, 행동에 자신감이 있으며 긍정의 에너지가 넘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 이런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게으르고, 머리가 나쁘고, 한심하게 느껴져 기분이 가라앉곤 한다.
내 생각을 그대로 받아 주길. 너와 생각 같지 않을 때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이해해 주길. 내가 좋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로 보지 말고 그저 취미로 인정해 주길. 그리고 내가 원할 때 너의 생각을 들려주길... 그래서 편하게 더 자주 만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