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이 내 집이 아닌 이유

아는 고생을 다시 경험할 필요는 없다.

by 소만

우리는 차를 몰아 옆단지에 있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부동산으로 갔다. 날은 춥고 해는 져서 어두웠다. 간단히 점심만 먹고 나온 아이들은 배고프다며 아우성이었지만 우리는 어디 앉아서 뭔가를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급한 대로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들한테 과자 하나씩 사주고 D부동산에 들어갔다. 소개로 왔다는 말을 하고, 집을 보러 갔다.


우리가 본 집은 재개발 승인이 난 산비탈에 있는 49평짜리 아파트였다. 큼지막한 방이 4개가 있는 매물로 집주인이 이사를 나간 빈집이라 편하게 집을 구경할 수 있었다. 집을 둘러보았다. 새시는 앞쪽 베란다만 바뀌어 있었고, 뒷베란다는 30여 년 전 알루미늄 새시 그대로였다. 현관 맞은편에는 방과 방 사이의 벽면 한가운데 소나무와 학이 새겨진 가로세로 2미터짜리 거울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큰 거울이 어설픈 실력으로 실리콘 마감이 되어 있는 걸 보니 원래 여기 있었던 것 같지 않았다. 베란다 창틀도 30년 전 원목 그대로였다. 그래도 한번 공사를 한 집이라 확장이 되어 있었는데, 보일러를 틀지 않은 빈집이라 그런지 매우 추웠다. 평수가 커서 관리비도 만만치 않아서 같이 온 부동산 직원분께 물어봤다.

- 여기 한 달 관리비가 얼마나 나오나요?

- 여긴 평수 비례해서 관리비가 책정되는데 요금은 사용하기 나름이지만 그래도 다른 평수보다 평균적으로 더 나오죠.


지금 우리 집은 한 달 평균 29만 원 정도 관리비가 나온다. 부동산 앱을 켜고 이 아파트 관리비를 찾아보니 49평형의 여름과 겨울 관리비는 평균 60만 원대였다. 그럼 일 년 관리비는 약 600만 원이고 이 돈을 이자로 받으려면 금리 3%로 가정했을 때 2억 원이 있어야 한다. 관리비만으로 그만한 돈이 묶이는 셈이다. 바로 들어올 수 있는 매물이지만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아니었다.


우리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을 팔았다. 내가 살던 신혼집은 새집이었다. 또래 지인들이 전세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나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 33평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살다가 어느 순간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집값이 더 내릴 것 같아서 집을 내놨다. 그리고 집이 팔릴 때까지 매일 집을 쓸고 닦았다. 4년 만의 복직을 앞두고 있었기에 집이 제때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석 달만에 집이 팔렸다. 그리고 나는 수리된 적 없는 20년 넘은 24평짜리 비확장된 아파트로 이사 갔다.


내가 고른 아파트는 직장과 도서관이 가깝고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었다. 집주인이 살다 나간 후 10년 넘게 전세 세입자만 살았던 손 때 묻은 아파트. 처음 그 아파트에 들어갈 때 집주인은 마음껏 인테리어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고, 나도 이 공간을 깔끔하고 예쁘게 꾸밀 자신이 있었다. 이 집을 닦고 정리하고 가꾸면 누구보다 깔끔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나의 노력은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낡은 타일 틈과 찌든 창틀은 닦아낸 직후에만 잠시 반짝일 뿐, 며칠 뒤에는 다시 본래의 묵은 빛을 내뿜었다. 오래도록 사랑받지 못한 집의 흔적은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사람뿐만 아니라 집도 정성껏 돌보고 꾸준히 가꿔줘야 한다. 그리고 주인이 오래 살던 집이 그래도 상태가 좋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도 사랑받지 못한 낡은 아파트에서 2년을 버티며 깨달았다. 만약 내가 6년 전 그 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집을 보며 내가 쓸고 닦고 꾸미면 빛나고 광나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30년 된 집을 가꾸는 것은 내 노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매물이 싼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때 고생한 경험이 오늘의 나를 살렸다. 매물을 보여주신 부동산 직원분께 인사를 하고 다시 우리가 잘못 찾아간 D 부동산으로 넘어왔다.



짧은 보랏빛 파마머리에 안경을 쓰신 사장님이 우리 차를 타고 아파트를 안내했다. 사장님이 소개할 매물은 전세 4억짜리 34평과 7억짜리 38평 매매 물건이었다. 우리는 먼저 34평 전셋집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집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실례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니 엄마와 아들이 거실에 서 있었고, 엄마는 고개 숙인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 왜 공부를 안 하는 거야. 방학기간이면 집중적으로 해서 따라잡아야지.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 이렇게 해가 졌는데 왜 이 시간까지 싸돌아다니는 거야?

- 사장님, 집 좀 구경하고 가겠습니다.

- 네, 천천히 보세요.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만 우리는 집을 구경해야 한다. 집을 구경하는 중간중간 아주머니는 우리보다 아들을 나무라는데 더 신경 썼다. 예민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몇 가지 물어봤다.

- 어디로 이사 가세요?

- 아, 바로 옆 동 같은 평수를 매수했어요. 지금 리모델링 중이고 2주 뒤쯤 입주할 예정이에요.

대답이 끝나자마자 아주머니는 아들에게 훈계를 계속했다.


나는 방과 창문과 집을 살폈다. 앞뒤 베란다 모두 알루미늄 새시이고, 확장 안된 거실의 창문 플라스틱 새시를 새로 했다. 집은 벽지가 누렇고, 군데군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집을 한번 고친 흔적이 보였다. 중문을 만들고 신발장은 새로 했다. 하지만 뒷베란다 문을 열고 세탁기의 위치를 확인할 때 집에 대한 호감이 싹 가셨다. 30년 된 창틀 틈으로 들어온 외풍에 곰팡이가 퍼져있고, 천장 페인트가 종이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세탁기가 있었다.


다시 6년 전 일이 떠올랐다. 이 집에서 그 고생이 보였다. 이미 아는 지옥을 다시 경험할 필요는 없다. 이 돈에 전세를 들어간들 집주인이 창틀을 전면 교체해 주고 결로 방지를 위해 조치를 취해줄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이런 집은 춥다. 추우면 관리비는 무조건 더 나온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음 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인사를 받고 아주머니는 다시 아들에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내내 아주머니의 잔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을 따라 다음 집으로 이동했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깜깜한 밤이 되었다. 산자락에 있는 아파트는 추웠다. 게다가 밤이 되니 아파트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지도로 보는 것보다 걷는 것이 아파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이 단지는 주차가 힘들고 단지 전체가 언덕에 위치해서 단지마다 높이가 다르고 경사가 가팔랐다. 아이들이 편히 킥보드나 자전거는 탈 수는 없을 것 같다.

예전 우리도 그런 아파트에 살았다. 퇴근 후에 집에 도착했는데, 주차 자리를 찾느라 좁은 단지를 한참을 헤맸었다. 게다가 주차 폭이 좁아서 큰 차 옆에 차를 대면 자유롭게 차에 타고 내릴 수 없었다. 무조건 소형차 옆에 있는 공간을 찾아야만 했다. 소형차가 빠지고 거기에 대형차가 들어오면 그날은 낭패였다. 겨울이면 내 패딩이 내 차와 상대의 차에 붙은 염화칼슘을 깨끗이 쓸어줬다. 2년간 밖에 세워뒀던 차는 자외선을 듬뿍 받아 차 뒷유리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 표시를 희미하게 지워버렸다.


이번 집은 확장 안 된 방 4개짜리 38평 아파트였다. 집에 들어가니 사람은 없고 짐도 일부 치워져 있었다. 방 4개도 큼직했다. 화장실은 수리를 해서 변기도 깨끗했고, 집 상태도 매우 깔끔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 집도 앞베란다 새시만 교체했고, 뒷베란다 새시는 그대로였다. 결로도 적고 세탁실 상태도 좋았지만 부엌 싱크대가 매우 저렴한 것이었고, 집의 창틀이 아직 모두 나무였는데, 집주인이 직접 칠한 듯한 하얀 페인트가 창문 손잡이와 벽지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집주인도 이 집을 다듬고 가꾸느라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한때 나도 20년 넘은 아파트를 쓸고 닦으며 '닦으면 광나리라' 믿었지만 낡은 집을 새것처럼 유지하는 것은 성실함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집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집도 내가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인연이 아닌 거지. 부동산 사장님과 헤어진 후 우리는 다시 빈손이었다. 오후 8시, 마음은 허전하고 머리는 복잡한데 날은 춥고 그제야 허기가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점심때 이후로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이 집 저 집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미안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주차 편한 곳이 어딜까 고민하다가 근처 대형마트로 향했다. 실내에서 몸 좀 녹이고 푸드코트에서 아이들이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시켜주면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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