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만 급한 거야?
2026년 2월 5일 목요일 오전, 책을 읽다가 발령 소식을 들었다. 나는 학교 이름과 위치를 확인한 후 부동산 앱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금요일에 퇴근하고 집을 보러 가자고 했다. 다음 주에는 남편이 전주로 연수를 가고, 그다음 주는 명절 연휴다. 마지막 주는 나도 새 학교로 출근해서 개학 준비를 해야 한다. 방학이라 하루 종일 두 아이를 집에 남겨 둘 수 없으니 아침 일찍 아이들을 데리고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집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 이틀밖에 없다.
금요일 오후, 아이들 피아노 학원 시간을 앞당기고, 2시 30분에 차를 몰았다. 한 시간을 운전해 미리 점찍어둔 아파트를 둘러봤다. 4시쯤 남편의 일이 일찍 끝나 회사 앞으로 데리러 갔다. 차 안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 우리가 볼 아파트 보여주는 거 약속은 잡혔어?
- 어?
남편의 누나는 다른 지역에서 중개사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전세로 이집저집 이사할 때 시누가 공동 중개를 해줬고, 그 덕에 가족할인을 적용받아 법정 수수료보다 저렴하게 복비를 치렀다. 어젯 밤, 남편과 오랜 상의 끝에 오늘 보러 갈 아파트 목록을 확정한 후 시누이에게 보러 갈 아파트의 동호수를 보내 부동산에 연락을 해 놓으라고 했다. 또, 시누이가 부동산에 연락해 매물을 먼저 찾아 두면 좋겠다고도 남편에게 말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연락을 안 해놨다.
내비게이션 도착 시간은 5분 남았는데, 남편은 그제야 시누이에게 보낼 동호수를 문자로 보내고 있었다. 마음은 급하고 시간도 없는데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이미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집을 보려면 부동산에서 집주인이나 세입자와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사전 작업이 전혀 되지 않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봐요, 남편. 이걸 깜빡한다고요? 내가 이야기한 거 듣기는 한 거예요? 한 달 뒤에 우리가 갈 곳이 없다고요. 예?
남편의 연락을 받은 시누이가 매물을 올려 둔 부동산과 통화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도착해서 연락을 기다렸다. 2월 초라 날이 쌀쌀했지만 딱히 들어갈 곳이 없으니 아파트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아파트를 걸으며 생각했다.
'이 길로 가면 아이가 차도를 건너지 않고 안전하게 학교를 갈 수 있겠구나. 학원가도 단지 근처에 있다. 여기, 괜찮다.'
몇 분 뒤 시누이에게 00부동산에 가보라고 연락이 왔다. 근처에 있던 우리는 바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부동산 사장님이 말했다.
- 연락하신 분이 너무 절박하게 말씀하셔서 제가 다 뒤져 봤는데요. 그 날짜에 입주 가능한 집은 없어요. 어떻게 매매를 한 달도 안 돼서 합니까. 거기 사는 사람도 나갈 데가 있어야 하잖아요. 게다가 이 단지는 현재 전세 매물이 아예 없어요. 근처 다른 아파트에 지금 빈집이 하나 있긴 한데, 48평이에요. 거긴 전세도 월세도 가능해요.
내가 부동산 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안 남편은 시누와 이 상황을 전화로 주고받기 바쁘고 아이들은 스마트폰 테더링을 해달라고 졸랐다. 나는 사장님과 이야기하느라 아이들의 말은 들어주지 못했다. 부동산을 들락날락하던 남편은 나에게 나가자는 눈치를 준다. 부동산 사장님께 알겠다고, 알아봐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남편이 말했다.
- 누나가 이것들이 상황이 급한 거 보고 가격을 내려줄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너무 고자세로 나온다고 일단 거기서 나오라고 하더라고.
하, 급한 건 사실이고, 그렇다고 당장 들어가 살 집도 없는 마당에 매물이 있으면 일단 보기라도 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섰다. 해가 저물고, 갈 곳은 없고, 날은 추웠다. 아이들 간식도 챙겨줘야 하는데 마음의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없다.
차를 몰아 다음 부동산에 갔다.
- 사장님, 저희는 2월 말이나 3월 초에 입주 가능한 매매 물건을 찾고 있어요. 혹시 매물 있나요?
- 매물 있죠. 그런데 왜 이렇게 날짜가 촉박해요?
- 제가 어제 발령을 받았어요. 그래서 집을 지금 알아볼 수밖에 없어서요.
- 아, 그렇구나. 가끔 선생님들이 이렇게 촉박하게 오는 경우가 있긴 해요. 그런데 거긴 너무 촉박하네. 이 아파트 34평 3층 매물 있고, 다른 아파트 34평 전세 4억짜리 있는데 여기는 날짜가 2월 말이라서 날짜는 맞출 수 있을 거 같고, 아니면 39평짜리 매매 있어요. 이것도 싸게 나왔지. 주인한테 한번 전화해 볼게요. 잠깐만요.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 그런데 사장님 소개 전화받으셨죠?
- 네? 무슨 전화?
- 여기 D 부동산 아니에요?
- 맞는데? 아... 이름이 같은 부동산이 이 동네에 2개가 있어요. 거기 가야 되는데 잘못 왔나 보네. 그런데 우리도 매물 있으니까 일단 소개받은 매물은 거기서 보고 와요. 이 바닥도 상도가 중요하니까. 나도 그 물건 있는데 그건 소개 안 할게.
- 그런데 저희 친척이 부동산을 해서 저희는 공동 중개를 해야 해요.
- 알았어요. 해 줄 테니까 일단 보고 와.
부동산 사장님이 바로 전화를 돌렸다.
- 네, 사장님. 집에 계세요? 거기 몇 시에 집 보여줄 수 있어요? 6시 반요? 지금은? 아 퇴근 중이시라고요? 그럼 그때 갈게요.
전화를 끊은 사장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 지금 5시 30분이고 이분이 퇴근하는 중이니까 다른 부동산 가서 물건 보고 6시 반에 이리 와요. 알았죠?
한 시간 뒤에 물건을 보러 오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다른 D 부동산으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