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당할 돈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다.
이제 집을 비워줘야 할 시점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6년간의 세입자로서 시간을 끝내고 다시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 어제 발령이 났고, 나의 근무지와 아이의 학교를 고민하며 후보를 추렸다. 출근길을 생각하면 너무 학교가 집에서 멀어서는 안 되고, 아이 교육을 생각하면 학군도 포기할 수 없다. 조건을 하나씩 따지다 보니 선택지는 점점 좁아졌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에 100% 맞는 집은 이 지역 어디에도 없다. 몇 가지는 후순위로 미루고, 삶의 선순위에 집중하여 집을 보기로 했다. 직주 근접, 아이들 학교, 그리고 예산. 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내 집을 마련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금요일 오후에 퇴근한 남편을 픽업해서 가족이 함께 집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나와 남편이 고른 후보지는 A 아파트 34평 3층, 7억 6천. 그리고 B아파트 34평 2층, 역시 7억 6천. 같은 가격, 비슷한 층수, A아파트는 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있고, B아파트는 도로를 건너 도보로 4~5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다. B아파트 초등학교 근처에 학원이 즐비하다. 어느 쪽이 나을까. 아니, 애초에 이 가격이 적정한 걸까. 집을 보기도 전에 머릿속이 복잡해서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 브런치 독서 인증을 하고,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간다. 오늘은 새로운 매물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새로 나온 부동산 소식이 있는지 체크한다. 그리고 내가 추린 아파트 후보지가 매수하기 적합한지 AI에게 물어보았다. 주기능과 특성이 다른 AI에게 내가 수집한 자료를 종합하여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남편이나 지인에게 물으면 각자의 이해관계나 기호가 섞이기 마련이지만, AI라면 정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내게 적절한 조언을 해 줄 것 같다. 2026년 부동산 정책 방향부터, 주담대 위험가중치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 갭투자의 가능성, 그리고 내가 오늘 볼 두 아파트의 선호도와 시세까지.
답은 빠르고 깔끔하게 돌아왔다. 지금은 집값을 부양하는 시기가 아니라 시장을 안정시키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방향이고, 대출 규제는 강화되고, 다주택자와 투기 수요는 조이고 있으며 현재 갭투자는 정책 기조상 점점 봉쇄되는 구조라고 했다.
AI는 평균적인 내용을 가정하고 대답해 주는 것이지 나의 상황은 모른다. 그래서 나의 현재 상황을 알려주며 다시 물었다.
- 집값이 10% 빠지거나 대출금리가 몇 % 더 올라도 버틸 수 있어. 내가 선택한 A아파트가 재건축 이슈로 호가가 최근 1년에 비해 평균 얼마나 올랐는지, B아파트와 비교해서 평수와 층수와 가격을 고려해서 분석해 줘.
바로 AI의 대답이 올라왔다. A아파트는 재건축 기대감으로 호가가 뛰었지만 최근 몇 달은 보합세이고, 7억 6천은 실거래 최상단에 가깝다고 했다. 급매라면 3~4천 정도 흥정해 볼 여지가 있다는 말도 있었다. B아파트는 학원과 공원이 가깝지만 재건축 같은 모멘텀이 없어 미래 가치는 A보다 낮다고 했다.
AI가 분석한 내용을 확인했지만 기사나 특정 카페나 블로그의 글을 정리하여 종합한 것인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한번 더 되짚어 준 것인지 모르겠다.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다. 100% 확률도 없다. 나는 AI가 분석한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췄다. 이게 나를 위한 대답인지 평균적인 누군가를 위한 대답인지 모르겠다. AI는 집을 숫자와 데이터로 알지만 나는 누구인지 이 집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AI가 알려준 결과를 내 삶에 대입하는 건 나의 몫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렇게 큰돈을 써본 적이 없다. 이렇게 큰돈을 한순간에 써야 한다는 것이 망설여졌다. 내가 옳은 결정을 하는 걸까? 전재산을 걸고 집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어떻게 그 무게를 견디는 걸까. 나는 전재산도 아니고, 서울 아파트 평균값도 안 되는 집 한 채를 사는데 고민의 무게가 이렇게 버거운데 대출을 한도까지 끌어 쓰고 부모찬스에 신용대출마저 긁어모아 능력을 훌쩍 넘는 집을 사는 사람들은 그 압박감을 어떻게 견딜까? 밤에 잠이 오는 걸까.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기나 하는 걸까. 아니면 그들도 주식창을 확인하듯 매일 휴대폰을 켜고 수시로 부동산을 들락거릴까? 그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일까?
집을 돈으로 생각하니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떠오른다. 주거비를 줄이는 대신 아이의 교육비로, 가족 여행으로, 미래를 위한 다른 투자나 배당과 이자로도 쓸 수 있다. 그 돈을 구축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하는데 쓰는 게 맞는 선택일까.
노트북을 닫으며 생각했다. 오늘 오후, 집을 보러 가서 낯선 사람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집 구조와 상태를 살펴본다. 거실의 소파를 바라보며 아침에 책 읽는 나를 떠올리고,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창 밖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려 본다. 부엌의 구조와 상태를 살피면서 그곳에서 가족들의 저녁을 준비하는 나를 상상한다. 자기 전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며 빳빳하게 잘 마른 옷을 입고 나오는 산뜻한 순간도 떠올려 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집을 만나는 순간 AI가 정리해 준 숫자와 분석 결과보다 내 가슴이 더 뛰는 쪽을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혹시라도 그토록 가슴 뛰는 집이 예산을 초과한다면 계산기를 연신 두드리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며칠 밤을 더 뒤척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조건 맞는 집의 세입자가 아니라, 가슴 떨리는 내 집에서 살고 싶다. 집 기둥 한켠에 아이들의 키를 새겨 넣을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 집을 사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돈이 담보가 될지 자산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내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면 삶이 조금 더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