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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Dec 09. 2023

샐러드 김밥과 제주도

생각의 전환

가계부를 쓰고 고정비를 조절하면 돈은 모였다. 내가 계획한 대로 저축하고 이자도 차질 없이 모아가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난임휴직에 들어갔다. 3개월간 넣은 330만 원의 적금은 해지하고 적금액은 160만 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급여가 줄었고, 몇 년을 악착같이 모은 돈은 병원비로 뭉텅뭉텅 나갔다. 고민 끝에 남편에게 말했다.

" 우리 150만 원씩 나누어 가지자. 그리고 각자 하고 싶은 일에 쓰자."

한 달의 시간을 각자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기왕 병원비로 나가는 돈 우리한테도 좀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이후 나는 개인 용돈을 받지 않았고, 통신비, 교통비, 식비가 포함된 남편의 용돈은 35만원이었다. 우리는 한 달치 적금을 미루고 150만 원씩 나누어 가졌다. 돈이 생겼지만 쓰지 못했다. 고기도 씹어본 사람이 알고, 돈도 써 본사람이 쓸 줄 안다. 돈을 가지고도 쓸 줄 몰랐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시술은 실패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시술을 하고난 후 행여 문제가 생길까 집안에서 보름을 보내고 실패에 아쉬며 하며 사나흘을 울었다. 몸을 만들기 위해 다음 시술일까지는 거의 매일 운동을 했다. 한 달 동안 운동할 수 있는 날은 길어야 열흘이었다.

등산은 좋은 점이 있다. 건강에도 좋고, 돈도 안 든다.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등산로 입구가 있다. 나도 몇 번 가봤지만 등산로 중간쯤 가서 앉아 노닥거리다가 돌아오기만 했었다. 그 산을 혼자 올랐다. 처음에 헬기장까지 반나절이 걸리던 길이 몇 번을 오가니 3시간 만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차츰 재미가 생기자 사람들의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등산화와 등산복, 등산 모자, 가방 등을 샀다. 그러다 자주 다닌 산이 지루해졌다. 예전에 버스를 잘못 내려 관악역까지 걸어가면서 알게 된 도로옆 등산로가 생각났다. 버스를 타고 갔다. 등산 이틀째, 산 정상을 찍고 안양예술공원 방향으로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성균관대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내렸다. 이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일곱 정거장만 가면 집이다. 배가 고팠지만 조금 있다 집에서 밥을 먹으면 점심값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참고 줄을 섰다. 그러다 발길을 돌렸다. 근처 김밥천국 문을 열었다. 메뉴판 맨 아랫 줄을 보고 주문했다.

"아저씨, 샐러드김밥 주세요."  


당신은 평소에 어떤 기준으로 음식을 선택하는가? 당시 내가 고르는 음식의 기준은 딱 2가지였다. 1. 가격, 2. 양. 난 그래서 밥을 먹을 때가 되면 편의점의 삼각김밥을 사 먹거나, 식당에서 비싼 돈 내고 배도 안 차는 밥을 먹는 대신에 분식집에서 왕처럼 시켜놓고 배부르게 먹는 것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그날 등산을 다녀오면서 메뉴판 맨 위에 있는 1500원짜리 김밥 대신 같은 줄 맨 아래에 있던 3500짜리 스페셜메뉴를 선택했다. 나는 최고가의 김밥님을 고이 모셔와서 식탁에 펼쳐놓고 바라보았다. '이게 뭐라고...'  샐러드 김밥은 일단 굵기가 달랐다. 내용물도 달랐다. 맛은 얼마나 다를까? 김밥을 천천히 입에 넣었다. 담백한 참치와 부드럽고 고소한 마요네즈 맛이 터지고 깻잎향이 퍼지면서 깔끔한 야채샐러드가 아삭하게 씹혔다. 오오오~~~


최고가 김밥님을 영접한 이후 나는 물건을 선택하는 기준을 바꾸었다. 3500원짜리 김밥을 맛보고 다시는 1500원 김밥 한 줄을 고민하며 사지 않기로 했다. 가장 저렴한 것 말고 새로 나온 메뉴나 먹어보지 못한 것들도 시도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서 가장 저렴한 것을 고민하지 않았다. 대신 돈을 조금 더 들여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임신에 연거푸 실패하고 며칠째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날, '몸이 피곤하면 잠이 잘 오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컨디션으로는 비싼 시술을 받아도 성공하기 힘들 것 같았다. 나의 150만 원 중 남은 100만 원으로 혼자 제주도에 가기로 결심했다. 결혼하고 4년이 되도록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 여행에는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 바로 항공권을 검색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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