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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캔두잇 Oct 06. 2024

소풍날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동물원으로 소풍을 간다.

소풍날 준비물은 도시락.

아이의 도시락은 처음 싸본다.

네모난 도시락통을 사두고 어떤 음식을 싸줄까 내내 고민했다. 네 살 아이는 도시락에 토마토, 딸기, 복숭아를 넣어달라며 신이 났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 항상 설레어서 잠 못 들고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그러면 늘 부엌바닥에 신문지를 여러 장 깔고 엄마는 김밥을 말고 있었다.

그 옆에 가서 엄마가 김밥을 싸고 자르기가 무섭게 네 개의 손들이 엄마의 김밥을 집어 먹었다.

도시락 통에 김밥이 담길 새가 없이 싸는 족족 김밥이 사라졌다.

엄마의 손은 바빴다.


소풍날이면 엄마는 장롱 깊숙한 곳에서 소풍가방을 꺼내왔다. 알록달록 예쁜 소풍 가방에 새벽부터 싼 김밥도시락과 바나나우유가 가방을 채웠다.

어린아이 등에 맨 소풍가방이 묵직하다.

엄마는 학교 다니는 내내 소풍날이면 한 번도 빠짐없이 김밥을 싸주셨다. 엄마의 김밥은 참 맛있었다. 어떤 때에는 김밥을 다 먹지 않고 남겼다가 집에 돌아와 또 먹곤 했다.


중학교 소풍날에는 친구들이랑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서로의 김밥을 바꿔먹으면서 말이다.

그때 친구 중 한 명이 꼭 유부초밥을 싸왔다.

나는 그 유부초밥이 너무 신기했고, 예뻤고 맛있었다.

그래서 다음 소풍날에 엄마에게 유부초밥을 싸달라고 했다. 엄마는 유부초밥을 쌀 줄 모른다고 했었고 정말로 그다음 소풍날에도 유부초밥 말고 김밥을 싸주셨다. 그래서 나는 유부초밥이 정말 만들기 어려운 음식인 줄 알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 어쩌다 마트에서 유부초밥 만들기 세트를 발견했다. 그제야 나는 유부초밥이 정말 간단한 음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 그 친구 엄마는 요리를 못해서 유부초밥을 싸주셨던 거구나!’

‘김밥이야말로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거였구나!’

그때 알았다.

엄마가 일하시면서 바쁜 와중에 잠 쪼개가며 싸주신 김밥이었다는 것을!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도 김밥에 바나나우유를 잊지 않고 넣어주셨다는 것을 말이다.


내 딸아이의 도시락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문어 소시지, 키티 주먹밥을 넣었다.

간식으로 먹을 과자와 젤리, 과일까지 야무지게 넣으니 알록달록 예쁜 도시락이 되었다.

아이는 너무 행복해했고, 소풍날 남김없이 다 먹고 왔다. 그 모습만 보아도 많이 기뻤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 도시락을 싸는 동안 아이가 내 옆에서 ‘엄마 계란 하나 먹어도 돼요?’

‘햄 하나 먹어도 돼요?’ 하며 내내 손으로 주워 먹었다.

그 모습이 딱 내 어릴 때 모습이다.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이 마음에 드는지 신나서 가방에 챙기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등에 메고 간다.


아이를 챙겨 보내고 나니 정갈하게 싸준 도시락과 다르게 뒤죽박죽 어지럽혀진 부엌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엄마 생각이 나서 말이다.

엄마에게 소풍날 김밥 싸주셔서 고맙다고 연락을 했다.그런데 엄마는 또 맛있는 거 못싸줬다고 미안해한다.

늘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참 힘들었겠다. ’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었는데 오늘은 문득

‘우리 엄마 나를 키우면서 진짜 행복했겠다. ‘ 싶은거다.

내 자식이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옆에서 맛있게 먹고 도시락을 싸주니 신나게 가는 그 모습을 봤으니 엄마 진짜 행복했겠다.


딸아, 너는 정말 엄마에게 많은 사랑을 가르쳐주는구나. 너를 통해 알게 된 ‘엄마의 사랑’을 늦지 않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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