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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캔두잇 Sep 04. 2024

우리 엄마는 중학생.

친정엄마, 순희


나 학교 다닐 때, 부모님 학력을 적는란이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엔 둘 다 고졸로 적어냈었고,

또 한 번은 아빠 고졸, 엄마 중졸로 적어냈었다.

그래서 지금껏 엄마가 중졸인 줄 알았는데,

나 서른 넘고 나서야 엄마가 초졸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가 학교를 초등학교까지밖에 못 다녔다는 사실보다 그 사실을 내가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어릴 적 몸집이 유난히 또래보다 작았던 엄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아버지가 1년 후에 중학교에 보내준다고 했단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학교를 보낼 시기를 놓쳤다고 한다.

나이 많은 오빠가 나중에라도 학교를 보내줬어야 했는데 안보내줬다며, 그 길로 서울공장에 돈을 벌러 갔단다. 그래서 학교에 못 갔다는 엄마의 스토리.


우리 오남매가 인적사항 서류를 각자 한 장씩 다섯 장, 해마다 한 장도 아닌 다섯 장의 서류를 써낼 때마다

우리 엄마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자식들한테 못 배웠다고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끙끙했을까.

짠함이 밀려온다.


환갑이 넘어 엄마는 학교에 간다.

큰딸과 함께 간 여행에서 배우고 싶다고,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마음을 비추고 나서는

속전속결 큰언니가 성인들이 다닐 수 있는 학력인정

중고등학교에 서류를 넣었다.  


올해 3월 2일, 나의 첫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날 우리 엄마도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첫 조카가 언제 커서 초등학생이 되었나 뭉클한 마음으로 축하를 건네고 울 엄마에게도 입학을 축하한다며

응원을 보냈다.

엄마가 같은 반 친구들이 나이가 많다고,

옆반에는 도시 중년들이 많다고 하며 투정을 부리길래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잘 지내라며 조언도 했다.


아침마다 출근할 때 옷방에 들어가면 바지도 여러 벌,

상의도 여러 벌 옷걸이가 모자라게 걸려있는데

입을 옷이 없다. 그러다 문득 울 엄마 맨날 학교 가는데 교복을 안 입고 다니니 뭘 입고 다니려나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갖고 싶은 것, 필요한 것들이 있어도 사달라고

말하는 엄마가 아니라서 이번에도 말 안 하겠지 했다.

‘엄마~ 학교 다니는데 뭐 필요한 거 없어?’ 그러니

한 3초간 아무 소리도 안 나더니 이내 엄마가 작은 소리로 말한다.

‘옷도 없고, 가방도 없어.. ’ 그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나 학교 다닐 때 엄마한테 옷 없다고 옷투정 부리면서 주말에 친구들이랑 옷 사러 간다고 3만 원만 주라고

했더니 엄마가 돈 없어서 못준다고 했고,

결국 친구들이랑 쇼핑 못 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서 말이다.


옷이 옷장을 넘쳐도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는데

엄마도 그랬겠지, 지난번 명절에 사드린 초록색 가디건이 마음에 쏙 든다더니 그 옷만 내내 입고 다니더라고. 그래서 엄마 옷 사주러 친정에 갔다.

금요일 이른 퇴근을 하고 하오랑 2시간 거리에 있는

친정에 갔더니 엄마는 학교에 가고 없다.

엄마는 낮에 아빠 일을 도와주고 나서 5시까지 학교에 가신다.

6시에 도착해서 허기가 졌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빠가 저녁을 차려주셨다. 아빠가 차려준 밥을 먹어보다니. 엄마가 학교에 가서 자리를 비우니 가능한 일이다. 엄마가 학교가길 참 잘했군.  


아빠 혼자 저녁시간을 보내야 해서 적적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빠도 혼자만의 시간을 잘 채우고 있었다. 저녁 열 시가 다 되어 하원한 엄마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쫑알쫑알 이야기하는데 그게 너무 재밌어서 아빠랑 한참 들으며 밤을 채웠다.


가방에서 초록색 오카리나를 꺼내어 너 이거 할 줄 아느냐며 뽐내고, 컴퓨터 타자연습을 배우는데 손가락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며 더듬더듬 타자를 쳐본다. 8자리 타자를 반복해서 연습했단다. 선생님이 다음 레벨로 넘어가자고 했는데 “좀만 더 연습할게요.” 그래놓고 니가나서('싫증이 난다' 의 전라도 사투리) 다음으로 넘어갔단다.  


엄마 노트에 적힌 글자들이 너무 귀엽고 애틋하다.

다가올 중간고사에 얼만큼의 성적을 받아올지 궁금하고 ,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성적이 좋아도, 나빠도 나는 다 좋을 것 같다. 수학여행은 또 어디로 가려나,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수학여행 가서 쓰라고 용돈을 챙겨줘야겠다. 얼마나 신이 날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서 미루고 미루다 환갑 넘어

채워지는 배움의 목마름이 얼마나 시원할까.

엄마가 졸업하는 날,

꼭 꽃다발을 들고 축하하러 가야지!

우리 엄마 정말 너무 귀여워.

엄마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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