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슬플예정 83

(군고구마와 공황장애)

날씨가 연일 맹추위다.

집 앞 마트에서 군고구마를 팔길래 3개를 샀다. 그것도 밤 9시에!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에 먹을 게 없는 겨울 밤에는 땅에 묻어놓은 무우를 썰어먹고는 했다.

무우의 하얀 부분은 쓴 맛이 제법 있다. 그래서 녹색부분을 먹겠다고 작은 형이랑 서로 실랑이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그 시절 시골에는 단 맛을 가진 것이 없는터라 (광에 있는 커다란 독에 넣어두었던 홍시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 기껏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무우!

무우를 먹는다고 배가 부르거나,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다만 씹는 행위 그 자체로 기나긴 배고픈 겨울의 밤을 넘겼으리라.

그렇게 배고픔은 공평했고, 어쩌면 씁쓸함도 공평했을지도..


지금은 집도 따듯하고, 먹을 것도 넘친다.

냉동실은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아이스크림, 돈까스, 치킨, 피자, 삼각김밥…

그래도 먹을 게 없다며, KFC에서 9시 넘으면 1+1 하는 치킨을 먹겠다고 배달의 민족 앱을 연다.

그래서인가? 뜬금없이 숨이 막힌다.

풍요로운데 왜 숨이 막히지? 풍요로워서 숨이 막히는건가?

이거 또?

뭔가 스물스물 숨쉬는 법을 잊어버린 듯, 심장이 나를 앞질러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영락없다. 딱 그 증상이다.

ㅎㅎㅎ

이젠 안다.

공황장애는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버텨야 하는 것임을! 지나가게 두어야 하는 것임을!

애써 부정하지 않아야 하며, 항전하지 않아야 하는 것임을!

오히려 받아들이고, 흘러가게 해야 하는 것임을!


숨을 고를 때에도, 깊게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길게 내쉬어야 한다. 억지로 삼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겨야 한다. 그래야 심장이 자연스레 리듬을 찾고, ‘괜찮다’라는 신호를 스스로 확인한다.


그렇게 공황이 지나가고 나면, ‘왜 또 이러지?’가 아니라, ‘아! 이번에도 잘 넘겼다. 무사히 흘려보냈다’라고 생각하면 끝이다.

잘 넘겼다. 무사히 흘려보냈다는 것은 강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쩌면 친절해지는 것일 수 있겠다.

내게 찾아오는 녀석에게 ‘어서와! 오랜만이야!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만나서 반가워!’라고 인사하며 맞아주어야 내게 상처를 남기지 않고, 그대로 곱게 떠날 일이다.


그제서야, 아직 식지 않은 군고구마의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문다.

숨을 내쉬니, 파도가 물러간다.


그제서야 아주 작은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 시절 무우가 썰리던 소리,

추운 밤을 견디며 날아가던 새소리,

밤 하늘을 밝히던 별빛 소리,

겨울을 가르던 바람소리,

그 바람이 찢어진 방문 틈새로 스며들어 이불을 끌어올리던 소리,

술 마시고 몇 시간 주정 부리다가 곯아 떨어진 아빠의 숨소리,

두 주먹 불끈 쥐고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던 어린 아이의 다짐소리,

내일은 오늘과 달랐으면 좋겠다고 되뇌이던 약속의 소리,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참아야한다’는 걸 알게 된 깨달음의 소리,


그 소리들이, 지금의 나를 떠 받치고, 그 소리들이 지금의 내가 공황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일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군고구마에서 시작된 겨울, 야식, 풍요함, 공황장애, 무우, 다짐….

공황장애는 이래서 좋다.

생각을 깊게 하게 해 준다.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하고, 배우게 해 준다.


그러니, 공황장애가 오면 두려워 할 일만은 아니다.

물론 이 단계까지 오려면, ‘죽을 것 같은, 차라리 죽고 싶은 순간’을 수 십번, 아니 수 백번은 지나야 한다는 것은 함정!


이제 입춘도 지났으니 슬슬 봄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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