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의 믿음? 옥상에서 생긴 일
빨래를 걷어놓고 옥상에서 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해리는 꼭 제 집 안방인 듯 옥상에서 한쪽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명당자리를 찾아 세상 팔자 좋은 한량처럼 숙면 중이었다.
언제 깼는지 모르는 사이 녀석은 열려있는 출입문을 향해 잔뜩 몸을 낮춘 채 아주 조심스레 다가가고 있었다.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건가? 호기심에 덩달아 조심히 다가가봤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슨 상황이지? 한참 후에야 계단을 올라와 현관문의 비번을 누르는 아랫집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새삼 고양이의 청력을 신기해하며 있던 곳을 바라보니 용감하게 계단 아래를 살피던 해리가 어느새 대각선 뒤 쪽에 앉아있었다. 소리도 없이 도대체 언제 갔지?
몇 발짝 떨어진 거리를 유지한 채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곧게 세운 자세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잠시 이 행동의 의미가 뭘까 궁금해졌다.
'내가 살펴보니 별거 아니었어. 안심해.'라는 뜻일까? 혹은 '네가 나를 보호할 수 없을 것 같아 내가 스스로 네 뒤로 왔어. 그러니까 위험한 일이 생기면 네가 먼저 막아줘'라는 뜻일까?
예전엔 무서우면 내 옆이나 다리에 찰싹 붙어 야옹야옹 울어대며 오버스럽게 수선을 피우던 녀석이 어쩌다 이렇게 의뭉스러워진 걸까?
인간과 살다 보니 해리는 자신이 인간의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큰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둘만 있는 공간에서 어리광쟁이가 되어 갈수록 뻔뻔해지는 해리는 눈치 보던 시기의 심란함 대신 집사로서 뿌듯함을 느끼게 하지만 가끔은 호랑이, 하이에나가 없는 도시에서 날카로운 상위 포식자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음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특히 집고양이로서 장난과 도발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공격하는 어린 고양이들에게 속수무책 도망치고 숨기 바쁜 해리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화가 날 때도 많다. 내가 없는 동안 혹시라도 공격을 당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스러울 정도로 쭈글이 모드라서 고민이 깊어진다. 차라리 본능을 따라 맞서 싸우거나 인간이라면 맏이라는 서열로 휘어잡기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언제부터 해리가 저렇게 약해졌을까 돌이켜보니 결국 내 탓 같아 미안함에 도망으로 회피하지 말고 강하게 휘어잡으라고 다그치기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세 번째로 고양이를 들인 후 해리가 셋째에게 심하게 하악질을 한 일이 있었다. 웬만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해리의 성격을 먼저 생각해 볼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해리가 공격이라도 하면 꼼짝없이 짜부가 될 것 같은 작고 약한 셋째의 웅크린 모습이 불쌍했다. 그리고 낯설고 사나운 모습에 놀라 반사적으로 큰 소리로 야단치며, 눈을 맞췄다. 그날 이후 눈에 띄게 기가 죽어버린 해리의 모습은 회복되는 일없이 기를 살려주려고 할 때마다 오히려 꽁무니를 빼며 도망치기 바쁘다.
다들 형제가 많았던 학창 시절. 친구들끼리 샌드위치의 설움에 대해 농담반진담반으로 했던 이야기가 자주 떠오른다. 삼 형제 중 둘째에게는 샌드위치의 설움이 있다고. 형제끼리의 다툼이 생기면 첫째는 첫째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쉽게 용서받는데 중간에 낀 아이만 매번 더 심하게 혼나야 끝난다고. 집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다음날 학교에서 서로 집 안내 위치가 비슷했던 친구들끼리 억울함과 서러움을 토로할 때 우리는 그렇게 표현했었다. 그저 클수록 맏이로서 기대를 받는 것이 좋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을 뿐 곧 잊어버렸었다. 그건 내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첫째들도 맏이의 억울함과 설움이 크고 힘들었겠다는 건 요즘 해리를 보면서야 와닿았다.
실컷 야단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해리에게 대장 고양이로서 멋진 책임감과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은 친구들과 함께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낀 자식으로서 부모형제를 성토하던 그때의 나와 다른 사람인 듯 괴리감이 크다.
그 자리에 가보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입장을 알 수 없어 쉽게 말하지만 누구도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에 존재할 수도 없다는 걸 쉽게 잊는다. 최근까지도 나는 참 많이 어리고 유치했다. 최근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니 달리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사고의 변화가 워낙 급격하고 충격적이다 보니 어지럼증과 심한 두통이 생기기도 했다.
상상력이 곧 배려심이고, 공감의 시작이었는데. 최근에야 이해한 일들을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다.
야단을 치고, 책임을 추궁하기는 쉽다. 단 한번 입은 마음의 상처는 회복이 어렵다.
간식도 기 살리기도 먹히지 않는 해리의 마음을 풀어주려면 당분간 좋아하는 옥상 산책과 간식을 병행하며 시간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더 자주 옥상에서 놀아주고 있다.
그날 그 순간 조금 더 지켜보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