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서 내가 배운 가장 큰 것

공짜로 주어지는 매일의 소중함

by 이경화

고양이들과 함께 하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감정을 쌓아두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일상에 대한 감사와 기도를 통해 나를 다잡는다. 그리고 제 때에, 제대로 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회피하고 돌아서 억울해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고 대화라는 것을 20여 년 가까이 회피하며 지내다 보니 이 기본적인 사회적 소통이 어려워졌기에 의미 있는 변화이다.

내가 고양이들을 지나치게 아낀다면서 자신에게 그 반만 잘해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을 그렇게 잘 챙겨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물에 집착하면서 사람에게 소홀하면 결국 고립되는 것 아니겠냐며 걱정인 듯 비아냥인 듯 조언을 하기도 한다. 개중에는 먹이 사냥을 하지 않는 반려 동물은 사는 게 참 편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고양이들도 의외로 점프 실수를 하고, 그 때문에 다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특히 사냥의 경우 확률적으로 성공보다 실패하는 횟수가 오히려 더 많다는 것을 모른다. 다묘 가정에서의 그들의 영역과 집사에 대한 관심 쟁탈이 과열되면 유혈사태로 번지기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모른다. 그 상황이 지속되면 식음을 전폐하거나 먹어도 소화를 시키지 못한 채 시들어버린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지 못하는 딴 세상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해하지도 못한다. 나를 변화시키고 몰입하게 만든 고양이들의 매력은 그들의 생김새만이 아니라는 것을.
실패의 경험을 쉽게 잊어버리고 머뭇거림 없이 다시 시도하여 끝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도전하는 집중력.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속사포 랩을 하듯 냥냥거리며 당당히 요구하기도 한다. 단순하게 보면 귀여움을 어필하는 것만으로 뭐든 쉽게 얻는다고 생각하겠지만 함께 지내며 관찰한 나의 결론은 고양이들이 집사의 성향, 상황에 맞춰 여러 방법을 사용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영리함과 고집스러움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무도 모르게 간식 통을 스스로 열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심지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문이나 서랍장을 열기도 하는 등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는 모습들이 있다. 그들의 그런 모습들이 인간인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노력하도록 일깨웠다.

해리는 고양이 특유의 수면 시간을 벗어나 오로지 나의 시간에 맞춰 하루를 공유하며, 퇴근한 나와 함께 옥상을 산책한다. 아깽이 시절 해리는 오로지 내가 함께 있을 때만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다. 주위 상황에 무관심하던 내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출근 전 챙겨 준 사료가 퇴근 후까지 그대로 있거나 손으로 주지 않으면 먹지 않던 어리광이나 사용 흔적이 없던 화장실의 상태, 발에 차이면서도 기어코 딱 붙어서 어디든 따라다니던 행동들이 2주일을 넘긴 후였다.
부랴부랴 병원에 가서야 고양이에게도 분리불안이라는 증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껏 데려와서 길냥이를 굶기지 않고 따뜻한 집 안에서 키운다는 이유로 스스로 아주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았던 그 2주가 해리에게는 바뀐 환경에 적응도 하지 못한 채 나만을 기다리며 다시 버려질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던 악몽 같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해리의 분리불안이라는 증상은 마치 모친과 식구들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공부도 해보고, 일부러 연락 없이 친구 집에서 외박을 해 보기도 하는 등 애정을 구걸하던 혼자만의 소극적인 몸부림과 다른 듯 닮아 있었다. 그런 감정의 동화가 해리를 내가 구조한 불쌍한 길냥이에서 내가 책임지고 돌보아야 할 식구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자연과 동물들과의 추억과 함께 멋모르고 살았고, 중학교 때는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억울함에 다투기도 하고, 매번 변하는 것 없는 상황에 속상해하며 지나갔다.

고등학교 때는 억울해하면서도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와 ‘아무리 잘못하는 게 있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를 반복하며 고민과 동시에 가끔은 억울한 꼬투리를 잡혀 형제자매들에게서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며 살았다. 그 최고봉에는 진실과 상관없이 내 탓을 하며 비웃던 모친이 있었다. 그렇게 집 안에서 나는 외톨이가 되어 살았고, 만만한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고민과 질문을 하다가 결국 ‘내가 살아있는 것이 잘못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애초에 태어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잖아?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하기만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고교 시절 하굣길에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면서 굳이 친구를 먼저 태워 보내던 나를 기억한다. 조금 전까지 웃고 까불던 모습과는 반대로 혼자 그 길에 남아 있던 나는 집으로 갈 생각은 전혀 없이 ‘이 차도에 뛰어들면 지긋지긋한 이 가면을 쓴 것 같은 삶을 끝낼 수 있을까? 혹시 심하게 다치기만 하고 신체적 장애까지 갖게 되면 그때는 죽으려고 해도 두 배로 힘들어질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깔끔한 방법이란 없다고, 죽는 것도 쉽지는 않다는 생각을 반복하기도 했다.

해리가 긴 잠에서 깨고 나서 막 적응하려던 시기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낯설어진 터전과 달라진 나의 생활 패턴이 해리를 다시 불안하게 만들었나 싶었다. 그렇게 서서히 내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사랑한다” 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눈치를 보면서도 무관심하고 무감각했던 나에게 챙김을 받지 못하고 귀찮다며 외면당해도 계속 다가오던 녀석에게 미안해졌고, 해리의 나에 대한 애정이 애틋하고 고마워 기죽지 말라는 의미에서 했던 격려의 표현으로 사용했던 그 한 마디가 나를 변화시켰다.

가족을 상대로는 단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어 퇴화해 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을 자연스럽게 내뱉기 전에는 만약 내가 정말 그 말을 내뱉게 되면 오글거림을 참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뱉고 난 후에 스스로 부끄러움이나 낯선 내 모습보다 점점 더 밝아지고, 꼬리를 한껏 치켜들고 으스대며 걷거나, 가끔 간식을 더 달라고 요구하며 고집을 부리는 등 당당해지는 해리의 모습을 보는 기쁨이 더 크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나의 감정 변화가 어색할지언정 싫지 않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힘이 아직 남아 있음을 느낀 큰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들이 말하듯 특이한 인간도 아니었고, 그 혹독한 상처의 시간 이후 ‘무색무취한 사람이 되고 싶다.’ 고 바랐던 것 역시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리는 나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고양이들은 내 손길과 관심 한 번을 위해 서로 하악질을 하기도 하고, 일부러 약한 척 다리를 절기도 하는 등 생각지도 못한 여러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애정 한가운데 있는 느낌은 나를 퍽 우쭐하게 만들어 아무리 우울한 기분도 순식간에 바람 빠진 고무 같은 웃음으로 바꾸어 주는 마법으로 작용한다.

그런 시간들은 살아있음에 행복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이런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어떤 경로로 만나게 되었든 결국은 나와 함께 살아가게 된 고양이들을 위해서라도 내 삶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시 찾아온 악몽 같은 기억들로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때, 고양이들이 어떻게 되든 모두 내보내 버리고 이 막장 잉여분 같은 인생을 그만 끝내려고 결심하고 실행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게 딱 붙어 안절부절못하던 해리와 평소와 달리 멀찍이 떨어진 채로 내게 집중하고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그 순간의 감정에 휘둘린 나 때문에 덩달아 불안해하고 있었다. 삶을 포기하는 것은 순간의 선택으로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나를 위한 그 선택이 고양이들에게는 어떤 결과가 될까? 무책임하고 공감할 줄 모르던 모친의 모습과 다를 게 없지 않나?
그날 그 순간의 기억은 사진처럼 각인되어 있다. 그 시간이 강하게 마음을 다잡는 큰 계기가 된 것 같다. 나의 일상과 삶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고양이들의 존재가, 그들의 약함이 나를 다시 살려준 것이라고 믿는다.

가끔은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을 차리게 해 준 건 역시 고양이들이다. 그들은 흔들리는 나를 이 세상에서 버틸 수 있도록 해 주는 내 인생의 닻과 같은 존재들이다.

시간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마음을 둘 것을 굳이 사람에게서만 찾으려 했던 내게 다른 방법으로 살아도 충분히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끼게 해 준 그들로 인해 나는 지금도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게 된 것이다.

학창 시절 모친의 무책임하고 냉혹하게 느껴지던 말과 행동들은 어쩌면 내가 그녀의 친자식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이어져 괴로워하기도 했고, 어떻게든 스스로 납득할 이유를 만들면서 미련이나 원망은 묻어버리고 어떻게든 계속 살아야 한다 마음을 다잡는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실을 무심코 인지하게 되거나 현재까지의 상황을 문득 떠올리게 될 때면 다시금 원망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올 때도 있다. 이해하지 못한 과거의 기억들이 마음을 심연으로 끌고 가 가라앉힐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습관화하려고 의식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된 것, 그것이 고양이와 함께 하면서 배운 가장 큰 가치라고 믿는다. 눈을 뜨면 새로운 매일을 당연해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오늘을, 내일을, 어제를 부족하다고 불평하고 싶지 않다. 과한 성취라고 부담스러워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저 일상을 지키고 싶다. 매일을 지키고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먼 훗날 꾸준히 모아둔 나의 매일을 소중히 추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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