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이 알려준 신뢰와 행복

함께 쓰고, 함께 채워가는 삶

by 이경화

늘 마음 한 편에서는 글을 쓰며 살고 싶었지만 생활고가 겁나 여태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앞으로는 스스로 허황된 꿈이라고 먼저 재단하거나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저 언제 끝날지 모를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채 아쉬움만 남기고 싶지 않아 졌다. 그래서 무작정 부딪혀 보자 하고 시작했다.

글을 쓰고 출간하는 방법은 이미 다양하고, 성공한 전업 작가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전업 작가로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성공의 기준이 지극히 개인적임을 깨달은 후에는 굳이 성공한 전업 작가라는 목표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나를 편안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기 위해 꾸준히 글을 쓰자 마음먹었다. 글쓰기는 나를 찾는 과정이면서 내 삶의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음을 느끼며 매일을 보낸다.

직업을 유지하면서 마음을 기록하며 사고력을 정돈하는 일. 그래서 첫 시작은 매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쓰이지만 즐거워진다. 컴퓨터를 앞에 둔 현재 내 주위를 빙 둘러싼 고양이들이 사주경계를 서는 호위병들 같아 재미있다.

경계심이라고는 전혀 없이 집사 뒤에서 1인용 전기장판을 만끽하며 잠든 해리와 눈만 마주쳐도 골골송을 부르며 오늘따라 푸진 눈인사로 인심 쓰는 행복이. 평소 혼자 있기를 즐기지만 지금은 집사의 바지에 턱을 문지르며 가끔 눈을 맞춰오는 채리. 채리의 눈치를 보면서도 자판에 집중하고 있는 집사의 손을 잡아채려 애쓰며 관심을 요구하는 노아. 해리에게 집사 뒷자리를 빼앗기고 바닥에 놓인 침대 스크래처에 들어가 다리를 쭉 뻗어 올린 채 그루밍하는 누리. 그들의 마음이 내 시선과 닿을 때마다 심장이 데워지는 기분을 만끽하며 행복에 겨워 내 얼굴의 여백마다 웃음의 형상을 가진 주름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순간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온전히 신뢰하고 행복하게 해 본 경험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떠오르는 사람은 몇 명 있지만 지금 내 곁에 그들은 없다. 세상과 대면한 후 익숙해지기도 전에 버려짐을 먼저 경험한 이 작은 생명들은 어떻게 이토록 순수한 신뢰를 간직하고 서슴없이 표현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해 기억 장치에 보호 필터가 있어 사냥 실패의 경험은 축척이 되지 않는 시스템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충격적인 경험은 평생 각인되어 남는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들은 새로운 오늘을 반기고, 갑작스럽게 합류한 새 식구도 시간과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익힌다. 끝내 친해지지 않더라도 경계는 허물어져 적당한 관계 맺기의 방법을 터득하고 함께 어울린다.

그들의 어울림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내 곁에 없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그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쌓으며 서로의 상황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신뢰를 쌓을고 나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관계에서 이유 없는 신뢰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관계 속에서 나는 상대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감을 표현하기도 전에 내가 해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일을 저질러 왔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의도치 않게 일방적인 상황 해결의 수혜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 섣부름은 그들에게 더 깊은 상처와 부담이 되어 쌓였을 것이다. 그 결과가 함께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 아닐까.

고양이들과 함께 10여 년이 지났다.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 정보를 찾고 일상에 적용하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그렇게 고양이들의 행동 방식, 상황 인식에 대해 알아갈수록 나의 사고방식이 새로워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함을 느낀다.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섣부른 오지랖을 부리기 전에 현재 상황과 진심을 먼저 살피게 되었다. 나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살고 싶다.

신뢰할 수 없는 관계는 억지로 유지될 수 없다. 앞으로 나의 대인관계가 어떻게 변화될지 혹은 지금 정도가 꾸준히 유지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인간관계 정도면 충분히 괜찮을 듯하다. 어쩌면 가끔 너무 단조롭다거나 아쉬워지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변화를 위해 무리하게 상황에 나를 맞추거나 변하고 싶지 않다. 무리하지 않고 주위에 나를 맞추기 전에 내 마음과 진심에 먼저 닿고 싶다.

지인의 수를 늘리기보다 마음에 충실하게 살다 보면 행복한 일상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충실한 진심을 활자로 춤추게 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작가가 되어 이루고 싶은 꿈이다. 나를 성장시키고 삶을 충만하게 만들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가로 나의 일상이 소소하고 완만한 행복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를 지켜주고 글을 쓰는 일상과 연결시켜 준 소중하고 어여쁜 나의 고양이들과의 인생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전업 작가로서의 성공이 경제적 성공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고 욕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욕심보다 꾸준한 행복이 목표가 되었다.

지금 내 힘만으로도 나와 고양이들 모두 먹고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식량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비바람을 피할 작은 공간도 있다.

무리하게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매달렸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서로 신뢰할 인연도 얻지 못했다.

그저 우연히 만나 곁에 두게 된 생명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살자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천천히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현실을 마주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면서 과거에 집착할 시간이 줄었다. 나를 점검하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잊어버린 꿈을 다시 살려낼 수 있었다.

마음의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 그저 돌봐야 할 대상이 관심과 사랑의 대상으로 변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었다.

주먹 쥔 손을 놓은 후에야 상자에서 손을 빼낼 수 있다. 스스로 무리하지 않고 내려놓았을 때 더 선명하게 반짝이는 소중함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만약 소중한 무엇을 찾았다면 어떻게 더 잘 다룰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 과거의 미숙함으로 잃어버린 것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외면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마음을 잘, 주의깊이 들여다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렇게 진심을 찾는 과정에서 나만의 꿈, 소중한 인연과도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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